2026 종교개혁 주일에

선구자: 얀 후스 (Jan Hus)

 

진리를 찾으라.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배우라. 진리를 사랑하라. 진리를 말하라. 진리를 붙잡으라. 그리고 죽기까지 진리를 지키라( Seek the truth, hear the truth, learn the truth, love the truth, speak the truth, hold the truth, and defend the truth until death) –얀 후스, Jan Hus–

 

오늘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의 반박문을 게시한 이후 불길처럼 타오른 개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종교 개혁 주일입니다.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였던 마틴 루터는 당시의 타락한 가톨릭의 비리를 낱낱이 고발하고 새로운 신앙이 무엇인지 논의하고자 반박문을 준비했지만, 마틴 루터의 처음 의도와 달리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톨릭 사제의 신분에서 파면되었고, 핍박과 박해를 피해서 바르트부르크성에 숨어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 성의 조그만 방에서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고, 이것은 종교개혁의 커다란 불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가진 개신교(protestant)가 탄생한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터보다 150년 전 존 위클리프(1320-1384)라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사제들이 독점하던 라틴어 성경을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과 맥을 같이 합니다.

 

위클리프가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50여 년 후, 체코 프라하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얀 후스(1369-1415)는 체코어 성경을 완성했고, 체코어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찬에서 성도는 떡만 먹고 포도주는 사제가 독점하였는데, 후스와 그의 동료들은 예수님의 피인 포도주도 성도들과 함께 나눴습니다. 그러자 체코 프라하에는 얀 후스를 따르는 신도들이 많아졌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얀 후스를 콘스탄츠 종교회의(1415년)에 소환했고, 그를 불에 태워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위클리프의 무덤을 파헤쳐서 그의 유골을 불에 태우고 강에 버렸습니다. 하지만, 얀 후스를 따르는 후스파 개신교회는 지속적으로 가톨릭교회에 저항했습니다. 200여 년 후에는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전쟁인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습니다.

 

체코의 모라비아 지방에 살던 후스파 기독교인들은 모라비아 형제단을 조직했고, 박해가 닥치자, 독일로 이주해서 모라비안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훗날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리는 모라비안들의 확신과 하늘나라 소망에 도전받고 새롭게 회심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자신이 후스의 후예라고 말했답니다. 얀 후스가 그의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채 순교했지만, 진리를 찾고 진리를 배우고 따르려는 그의 신앙은 100여 년 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놀라운 결실을 맺은 한 알의 밀알이 된 것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