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질그릇에 비교했습니다. 바울이 살던 로마시대에 질그릇은 당시의 귀족들이나 부자들이 사용하던 구리그릇이나 금은 그릇에 비해서 평민들이 사용했습니다. 질그릇은 구리그릇에 비해서 쉽게 깨졌습니다. 또한 질그릇을 만드는 원료인 진흙을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만드는 과정도 간단해서 가격이 저렴했습니다. 따라서 질그릇에 보화를 비롯한 귀한 물건을 담아놓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우리들을 질그릇에 비유한 것은 매우 적합한 표현입니다. 우리들은 실제로 흙으로 빚어졌고 흙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사소한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는 말 그대로 질그릇들입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질그릇처럼 투박하고 때로는 부서지고 깨지면서 힘겹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그릇의 가치는 무엇으로 만들어져있느냐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도바울은 질그릇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화가 담겨져 있다고 선포합니다. 보화를 담을 수 없는 질그릇이지만 보화를 담는 그릇으로 하나님께서 그릇의 용도를 바꿔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담겨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질그릇으로 높아졌습니다. 이것이 은혜요 그리스도인들이 제일 먼저 감사해야 할 고백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창세기 20장 속의 아브라함은 영락없는 질그릇입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체험했고, 하나님을 만나서 대화도 나눴고, 이삭을 낳게 될 것이라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차근차근 견고하게 빚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입니까? 아브라함은 처음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서 이집트로 피신 갔을 때처럼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잘못을 범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도루묵이 되는 듯해서 본문을 읽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도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브라함이든 우리들이든 질그릇 인생의 한계입니다. 질그릇이 아무리 뛰어나도 구리그릇이 될 수 없듯이, 우리들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수준에 올라갈 수 없음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질그릇은 말 그대로 질그릇입니다. 아브라함도 같은 실수를 범하는데 우린들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들 자신이 질그릇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접어야 합니다. 대신에 우리 안에 담겨진 보화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한 가운데 와 있습니다. 비록 질그릇 인생들이지만 우리 안에 예수그리스도께서 편안히 거하실 수 있도록 정결한 마음을 준비하고 각자의 삶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