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도가가 기름이 필요해서 올리브 묘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 연약한 뿌리가 자랄 수 있는 비가 필요하니, 단비를 내려 주십시오.’주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단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수도사가 다시 기도했습니다.‘주여, 나무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해를 주십시오.’ 그러자 먹구름이 사라지고 해가 떴습니다. 수도사는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이 나무를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서리가 필요합니다.’그랬더니 작은 나무에 서리가 앉아 반짝거렸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무를 보러 나온 수도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올리브 나무가 완전히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수도사는 동료 수도사를 찾아가 그의 경험을 털어 놓았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일일이 알리고 응답을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의아해했습니다. 한참 듣고 있던 동료 수도사가 말했습니다.‘나 역시 작은 나무 한 그루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은 제가 나무를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나무를 만드신 하나님께 말이지요. 하나님은 나무에게 필요한 것을 저보다 훨씬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나는 나무를 심고 기도할 때 ‘주여! 이 나무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시오. 강풍이든, 햇빛이든, 바람이든, 비든, 서리든 주님이 때를 따라 주십시오. 주님이 나무를 만드셨기에 가장 잘 아십니다.’라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짧은 예화지만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믿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복잡해졌습니다. 더불어 우리들은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을 요청합니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을 듣고 난 다음부터 아주 세세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그것이 응답되기를 기다립니다. 물론 우리들은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객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우리들의 마음을 빠짐없이 드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기 위함입니다. 대화가 많은 부부가 친밀하고 서로 의좋게 한 평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화가 많다고 남편이나 아내가 상대방에게 매일같이 세세한 것을 요청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질력이 나서 나중에는 관계까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맡기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 많은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채워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믿음에는‘나 자신’은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감사’가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면 세상살이에서 낙오할 것만 같습니다. 불안하니까 자꾸만‘주세요! 주세요!”라고 또 다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부족입니다.
교회도 믿음이 부족하면 혼란스러워집니다. 반면에 온전한 믿음으로 무장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찾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 믿음이 요청됩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 그리고 교회의 주인으로 삼고 힘차게 앞으로 나갑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