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게 되는 날

최근에 마음을 활짝 열고 화통하게 웃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이민생활에 늘 이마가 찌푸려있지는 않으십니까?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왠지 모르게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것처럼 느끼십니까? 인간관계도 원만치 못하고, 세상살이도 늘 흐림이었고, 재미있는 일들도 자주 일어나지 않는 지지부진한 인생을 사셨습니까?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얘기요 하소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읽어가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말씀을 만나셨을 겁니다. 바로 사도행전 3장 19절의“유쾌하게 되는 날”이라는 표현입니다. 어찌 보면 개역 성경이 아주 멋지게 번역했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어 본문의 뜻은 “새롭게 되는 때(refreshing time)”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나프스크시스“라는 헬라어 속에는“영적인 힘(spiritual strength)”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 의미를 모두 합치면 이런 뜻이 됩니다. 새롭게 되는 날은 유쾌한 날입니다. 바로 영적인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3:1-8:3절까지는 예루살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대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권능을 받은 제자들이 제일 먼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유대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여전히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종교지도자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그 한 가운데 성령이 임했고, 그곳에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예루살렘의 전도가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가 나은 것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고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보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합니다. 성전 밖에 있던 앉은뱅이는 걷고 뛰면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것을 보고 모여든 군중들 앞에서 다시 한 번 설교합니다. 그때 베드로의 설교 가운데 등장한 말이 바로“유쾌하게 되는 날”“새롭게 되는 날”“영적인 힘을 얻는 날”입니다. 이것은 앉은뱅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었듯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임할 때 유쾌함이 임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늘의 힘과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앉은뱅이는 당시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들은 비록 걷고 뛰었지만 영적으로 앉은뱅이였습니다. 유쾌함이 없었고 늘 이마를 찌푸리고 살았습니다. 앉은뱅이에게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임했을 때 걷고 뛰었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듯이 예수님을 믿을 때 유쾌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누리는 비결이 19절 앞에 나와 있습니다.:“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예수님 안에서 유쾌함을 누리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