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복음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는 설교를 듣고“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라며 회개하면서 성령을 선물로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복음에 대해서 저항하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는 훼방꾼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나 초대교회 때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언제나 복음에 대해서 적대적이었습니다. 자기들이 구축해 놓은 기득권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들이 믿는 신념에 꽁꽁 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이 모든 상황을 멀찍이 떨어져서 관망하는 구경꾼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기에 무관심할 뿐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구경꾼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증인”들입니다. 지난 번 설교에서 증인은 1)“마르투스”라는 헬라어 의미 그대로 순교의 각오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라고 했습니다. 2) 예수님의 증인이기에 예수님만을 전하지 자신의 뜻이나 생각을 전하지 않습니다. 3) 재판정에 증인이 서듯이 이들은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변호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체험하고 권능을 받고 난 후에 아주 훌륭한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면서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변호한 것이 대표적인 증인의 모습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에 전해지면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훼방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권력을 갖고 있었기에 앉은뱅이를 고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지 심문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한 베드로는 담대하게 답변합니다.:“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10).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종교 지도자들의 위협에 베드로와 요한은 더욱 담대하게 답변합니다.:“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행4:19). 불과 두어 달 전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이런 용기가 생긴 것이 의아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잡혀있는 동안에 다른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졸이면서 기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감옥에 갇히면 복음도 갇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풀려났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교회에 닥친 첫 번째 위기를 넘긴 것입니다. 그때 모든 사람들이 일심으로 소리를 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서 복음은 더욱 빠르고 강하게 예루살렘에 전파됩니다. 이렇게 주님의 교회는 그 생명력을 이어갔고 더욱 크게 부흥해 갔습니다. 할렐루야!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