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위로의 하나님 세 번째 시간으로 야곱의 첫 번째 아내인 레아를 위로해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뜻대로 야곱의 아내가 된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살았습니다. 세 번째 아들을 낳기까지 레아의 마음을 오직 남편뿐이었습니다.
레아는 아들을 낳을 때 마다 아들의 이름을 르우벤(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시므온(주님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또 이렇게 아들을 주셨구나), 레위(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도 별수 없이 나에게 단단히 매이겠지)라고 지으면서 남편의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하지만 레아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네 번째 아들을 낳고 “유다(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오매불망 남편만을 바라보던 레아가 네 번째 유다를 낳고 “이제는”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레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아들을 주시는데, 레아는 그동안 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얻기보다 아들 낳은 것을 갖고 남편의 마음을 얻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레아의 마음이 남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할 때 까지 기다리시고 네 번째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까지 한결같이 임한다는 사실을 레아를 통해서 배웁니다.
오늘 본문속의 주인공은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나인성에 사는 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아들 하나를 바라보면서 남편 없이 살던 과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뿐인 아들이 죽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들의 시신을 메고 동구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과 많은 사람들은 나인성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마을 어귀에서 장례행렬과 마주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불쌍히 여기사”라고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여인을 보시고 마음이 아프셨다는 뜻입니다. 여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실 만큼 측은하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가가셔서 여인의 아들을 살려내십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여인의 슬픔을 보시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시면서 위로하시고 그녀의 아들을 살려주셨듯이, 예수님께서 우리들 마음속에도 그대로 임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위로해 주시고, 우리의 아픔을 치유해 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구약성경에서는“헤세드”라는 히브리어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변함없고, 공평하고, 아주 애절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시편 103편 1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김”은 어머니가 자식을 품에 안고 보호하는 것과 같은 모성적인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는 상처를 갖고 삽니다. 아주 오래전에 받은 상처부터 최근의 것까지, 무심코 한두 번 만난 사람들로 받은 상처부터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 받은 상처까지 우리들의 마음은 상처투성이입니다. 우리들의 상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치료되고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서머나 식구들의 아픈 마음위에 포근하게 임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