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낫세라는 아주 못된 왕의 55년 통치는 이스라엘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우상숭배는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다른 신을 섬기는 혼합주의와 신앙자체에 대한 무관심에 빠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신 스바냐 선지자가 나타나서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강력히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숨어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등을 돌리고 있었음을 지적하면서 회개를 촉구합니다.:“수치를 모르는 백성들아 모일찌어다.”(습2:1). 하지만 백성들은 자신들의 수치를 깨닫지 못하는 또 다른 죄를 범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는 스바냐 3장에 나타난 예루살렘의 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3장 1절에 있는 “패역, 더러움, 포학”이 당시 예루살렘에 만연한 죄악이었습니다. 세상이 그토록 망가졌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세상에 거하셨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더럽고 패역한 세상에서 아침마다 끊임없이 바른 길(공의)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 백성들의 영적감각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우리도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예루살렘과 온 세상을 벌하기로 결정하십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질투의 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스바냐와 다른 선지자를 보내셔서 어떻게든 죄에 빠진 세상을 구하려 애쓰셨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고, 거룩한 백성들이 더럽고 패역한 악한 영에게 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떠나서 다른 사람에게 갔을 때 느끼는 것이 질투심이듯이 하나님도 자신의 백성을 향해서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셨고 그것은 곧 심판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목적은 새로운 세상을 다시 만드시려는 또 하나의 창조행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산자의 하나님이십니다. 9절은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쌓으려는 인간들을 벌하셨습니다. 언어를 다르게 만드셨고 인류를 흩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런데 스바냐서에서는 바벨탑 심판과 반대되는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세상 열국이 깨끗한 입술로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로 모입니다. 9절에 보면 지면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모여듭니다. 옛 것이 모두 지나고 새로운 세상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에 여전히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높은 자리에 앉으려는 것입니다. 12절에는 새로운 세상의 주역이 될 사람들이 나옵니다.“곤고한 자”들은 세상 삶에 지쳐서 몸과 마음이 낮아진 사람들입니다.“가난한 자”들은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악에서 떠나고, 더 이상 속이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먹고 누우면서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끝가지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만을 의지했던“남은 자”들에게 임하는 복입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남은자의 하나님을 만나시고 그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