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서 3장을 살펴보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역사의 격동기에 살았던 스바냐 선지자는 하나님의 관심을, 현미경을 통해서 관찰하듯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에게로 차츰차츰 좁혀 옵니다. 3장의 전반부에서(1-7절) 하나님께서는 패역과 더러움과 포학으로 대표되는 예루살렘에 거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아침마다 끊임없이 공의를 선포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두 번째 문단에서(8-13절),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남은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이들은 도시 전체가 하나님을 떠나는 죄를 범했음에도 남아서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곤고함과 가난함”입니다. 이들은 세상에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보호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루살렘 가운데 남겨놓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죄의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거짓을 말하거나 남들을 속이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서로 속고 속이는 패역한 예루살렘에서 이처럼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신 자들은 세상 한 복판에서 거룩함을 유지했습니다. 이것이 남은자의 신앙입니다.
이제 오늘과 다음 시간에 살펴볼 스바냐 3장의 마지막 부분은(14-20절)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찬양과 기쁨의 축제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거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을 목도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들입니다. “시온의 딸”과 “예루살렘의 딸”이라는 표현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14절에 등장하는 명령형 동사들은 축제가 시작되었음을 가리킵니다.:“노래할찌어다”“기쁘게 부를찌어다”“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말씀을 읽고만 있어도 저절로 기쁨이 밀려오고 찬양하게 됩니다. 노래하고 기쁘게 부르는 것은 승리의 팡파르입니다. 승리의 종을 치고 승전가를 외쳐 부르는 것입니다. 반면에“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적 기쁨입니다. 그러고 보니 안과 밖이 모두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찬양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의 누리는 하늘나라의 삶입니다.
이렇게 소리쳐 외치며 마음으로 기뻐할 이유가 15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들 가운데 계십니다. 형벌을 제해 주셨고 원수를 쫓아내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죽음이라는 형벌을 면제받았고, 사망의 세력을 모두 이기신 것을 연상시킵니다. 다시는 화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우리들이 누려야 할 자유의 삶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얻은 우리들은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 죽음의 세력이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6절에서 다시 한 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두려움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살아 있으면 삶에 대한 공포가 있고, 죽음이 임박하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두려움이 밀려오면 삶에 의욕을 잃고 손을 늘어뜨리게 됩니다. 절망과 낙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백성들은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손을 늘어뜨려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