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대한 연속 설교를 마쳤습니다. 일곱 교회의 모습은 곧 우리 교회의 모습이었고, 우리들 각자가 그리스도의 성전이라고 했으니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께 칭찬받을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시에 질책을 받아서 마땅한 교회의 모습, 삶의 모습도 있습니다. 교회에 주신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약속은 “흰옷 입은 자”의 반열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자신을 돌아보는 회개와 주님을 찾는 열심”이 필요함도 깨달았습니다. 지난 겨울동안 함께 나눈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설교말씀 가운데 깊은 깨달음이 있었던 것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 신앙생활 가운데 실천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오늘부터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성경의 마지막 장이었는데, 성경 맨 처음인 창세기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이번 연속설교의 제목을 “웃음 가득한 인생”이라고 정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 그의 아들 이삭의 이름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이 웃었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와서 아내 사라가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의 사라가 천막 뒤편에서 듣고는 사라 역시 웃었습니다. 자신에게 생산능력이 모두 끊겼는데 어찌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듬해 사라가 아들을 낳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이름을 이삭(웃음)이라고 짓습니다.
창세기에 이삭에 대한 말씀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삭만을 위한 말씀은 한두 장 정도에 불과하고,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과 야곱에 대한 말씀 가운데 샌드위치처럼 위치해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여러 가지 일을 당하고, 야곱의 인생이 말 그대로 험악했던 것에 비해서 이삭은 그의 이름처럼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이삭의 어떤 점이 하나님 안에서 웃음 가득한 인생을 살게 하였을까요? 이번 연속 설교를 통해서 이삭이 웃음 가득하고 어려움 없는 인생을 살았던 비결을 발견하고 우리들 역시 이삭의 믿음을 닮기 원합니다.
이삭의 어머니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을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그냥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의 몸에서 아들이 낳을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습니다. 아내 사라의 태가 닫혔고 게다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이 지났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다른 방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로 그가 생각했던 것은 자기의 종 가운데 다메섹이라는 사람을 상속자로 삼아서 그를 통해서 큰 민족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네 씨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갈이라는 몸종을 통해서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상식과 이성을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의 복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태를 여셔서 아브라함의 아들을 낳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도 아내 사라도 그것을 듣고 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식을 초월해서 일하시는 분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새 해 첫 달을 보내는 요즘,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우리들 상식에 가둬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