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함께 나눴듯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아기를 낳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사라가 가진 딜레마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때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나타나셔서 같은 약속을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합니다. 처음에는 자기 집에서 태어나서 자란 충직한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15:4)고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사라의 아이디어로 이집트에서 온 여종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음과 같이 재차 약속하십니다: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창17:19).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나서 사라는 실제로 아기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첫째로,“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as he said) 사라를 권고하사”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는 “평상시에 하는 말”을 뜻합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을 찾아온 천사들이 평상적인 언어로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 말을 엿들은 사라가 장막 뒤에서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의 일상적인 말 그대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라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둘째로 1절 후반부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as he spoke/promised)”라는 같은 표현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는 앞에 쓰인 표현보다 의미가 깊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서는 단순히 ”말하다“는 번역보다 ”약속하신대로“라고 번역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녀가 아이를 갖도록 하셨습니다.
2절에 있듯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때가 되니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이 정확히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말실수를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23:19).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예사롭게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주신 말씀, 깊은 기도 가운데 마음에 주신 약속을 꼭 간직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1년 전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브라함과 사라 모두 속으로 웃었고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이삭(웃음)”으로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얻은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진정한 웃음을 주신 것입니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비로소 자신을 웃게 하셨다고 기뻐합니다. 사라의 웃음은 아브라함은 물론 온 세상을 웃음 짓게 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졌기에 기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정확히 이루어졌기에 기쁨의 웃음을 지은 것입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