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우리가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여긴다면 두 가지를 꼭 인정해야 합니다.

첫째는 히브리서 11장 6절에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반드시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의 삶과 세상사에 간섭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연속 설교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섭리는 참새 한 마리까지 기억하실 정도임을 인정하고 믿는 것이지요.

둘째로, 우리가 찬양하듯이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의로우신 분인데 우리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가기 위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죄가 십자가의 보혈로 모두 용서함 받게 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인정하고 믿을 때 우리들은 비로소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믿은 후에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머리로 믿어도 그것이 마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신앙이 냉랭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진실된 기도가 그대로 응답된다면 그리고 이런 경험이 반복된다면 우리들은 비로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임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없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인생길에서 염려와 근심이 밀려올 때 기도해야합니다. 염려와 근심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분산되었을 때 염려가 생기고 근심이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또한 염려와 근심은 우리들이 두 마음을 품었을 때 생깁니다.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보면 마음에 혼란이 찾아오고 그것이 깊어지면 염려와 근심으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두 마음을 품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오늘 본문은 산상수훈에 속한 말씀으로 산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거듭 부탁하십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믿기로 따라나선 제자들이라면 염려하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들의 백합화도 공중에 나는 새들도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이신데 자신을 믿는 기독교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지 않겠느냐는 반어법적 교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근심이 밀려오면 입히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염려하는 대신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먼저”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고 먼저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서 먹물처럼 올라오는 염려와 근심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하심이 참빛 교회 식구들 신앙과 삶 속에 임하고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나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