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4주 동안 함께 나눌 말씀은 소경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여섯 구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말씀이지만 바디메오가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시점은 갈릴리 사역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던 때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십니다.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의연하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여리고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여리고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여서 사막을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상인들이 꼭 지나가는 곳입니다. 종려나무로 유명했던 여리고에 커다란 세관이 있었는데 그곳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것도 성경에 나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15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쫓는 허다한 무리들이 여리고성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졌기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예수님께서 어떤 기적을 베푸실 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늘 말씀하시던 대로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실 줄 알고 예수님을 추종하던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이나 무리들은 개선장군처럼 여리고를 떠나서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아셨던 예수님의 마음은 무거우셨을 겁니다. 그때 여리고 어귀에 한 소경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디메오라는 사람의 아들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유명했든지 아니면 당시의 풍습대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불렸을 것입니다. 바디메오의 직업은 거지입니다. 길 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소경으로 태어난 것을 두고 자신이 죄를 지었든지 아니면 부모가 죄를 지어서 그랬다고 믿었습니다. 바디메오의 경우 날 때부터 소경이었는지 아니면 중간에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하여튼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 가에 앉아 있지만 외로운 인생입니다. 남의 손을 바라보면서 구걸하면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바디메오는 타인 의존적인 삶을 살면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리고 도시의 한 켠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는 바디메오의 모습 속에는 우리의 모습이 거울처럼 들어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바디메오에 비할 데 없이 훌륭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들 역시 사람들이 오가는 길가에 앉아 있는 소경 바디메오처럼 세상에 털썩 주저앉아서 사람들의 처분을 기다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은 궁극적인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바쁘고 흥청거리는 세상 속에 살지만 혼자서 외로움을 곱씹기도 합니다.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정작 하늘의 진리를 분별하는 영적인 눈이 감겨 있을 때도 있습니다.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채 필요 없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헛된 꿈을 꿉니다. 어쩌면 소경 바디메오보다 더 불쌍해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늘 갈증을 느낍니다. 영적 목마름입니다. 예수님께 나가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때 궁극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의 도움의 손길이 꼭 필요합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