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옛날 로마시대에는 지금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가을 새에 대한 설교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비둘기를 비롯한 동물들이 통신수단에 동원되기도 했고, 산 위에서 연기를 지피거나 소리를 내는 것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정확한 통신수단은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달리기를 잘하는 병사로 하여금 왕에게 승전보를 알립니다. 전쟁에 나갔던 병사가 전해주는 승전보가 바로 기쁜 소식, 유앙겔리온이었습니다.
유앙겔리온이라는 단어에는 새로운 왕이 등극했다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새로운 왕이 세워지면 백성들은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것을 기대합니다.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메시야가 올 것을 예언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메시야가 세상에 왕으로 오신다는 것이 곧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3년간의 공생애 기간 동안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귀신들린 사람들을 온전케 해주시고, 굶주린 사람들을 오병이어로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하나님 말씀 자체가 무엇보다 가장 귀한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은 최고의 복된 소식입니다.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으니 그 어떤 승전보에 비할 것이 없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도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은 복음 안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복되고 기쁜 소식 – 복음의 능력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특별히 이번에는 로마서를 비롯한 사도바울이 기록한 바울서신에 나타난 복음의 능력에 초점을 맞춰서 말씀을 전할 생각입니다. 오늘 본문에 있듯이 복음은 능력입니다. 능력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나미스”는 영어의 다이나마이트를 연상시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따라 사는 우리들에게 능력이 임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그 능력을 힘입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복음이 주는 능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이 주는 능력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복음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힘입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쁜 소식을 받고 그 소식을 누리기 원합니다.
복음이 주는 최고의 능력은(은혜는) 구원(salvation)입니다. 죄를 사함 받은 능력,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는 능력이 구원에 깃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의 지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를 건져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이 우리 모두 위에 임하기를 바랍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