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는 여러 가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하나님 사랑의 절정입니다. 흘러넘치는 은혜라는 주제로 말씀을 듣는 세 번째인 오늘은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위로’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 가운데‘위로의 하나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아니 타락한 세상에 사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나함”입니다. 나함이라는 히브리어에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사랑,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해 주려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 어떤 사람에게 유감의 뜻을 표하지만 결국 관계를 회복한다는 의미가 두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사정을 모두 공감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 놓으십니다. 자신의 백성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들에게 위로로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다짐하지만 우리는 매 순간 넘어지고 죄를 짓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죄를 내려놓으면 붉은 죄가 흰 눈처럼 깨끗하게 사해집니다.
죄의 용서를 받으면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죄로 인해서 막혀 있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 불의한 모습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죄를 없애시고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지나서 살아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덮어주시고 막혔던 담을 헐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커다란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나간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고, 신하마저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런데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하나님께서 데려가십니다. 다윗이 범한 죄값을 그렇게 물으신 것입니다. 다윗은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죄의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다윗과 밧세바사이에 또 다른 아기를 주셨는데 그가 바로 다윗에 이어서 왕이 된 솔로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을 “여디디야”라고 부릅니다. 여디디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커다란 죄를 짓고, 죄의 값을 치루면서 매우 힘들어했을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다윗은 여디디야를 안고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시는지 실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가 범하는 죄보다 훨씬 크고 깊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임했을 때 우리의 삶이 회복되고 그 은혜가 흘러넘칩니다. 할렐루야.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