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과 같은 우리들 안에 보배가 담김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무엇보다 가치상승입니다. 질그릇에 보배가 담기면서 보배를 품은 그릇이 되었습니다.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깨지고 쉽게 사라질 질그릇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치가 급상승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힘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죄인이요, 불의한 종으로 의로우신 하나님께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의롭게 되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권속(family)이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보배를 품은 질그릇에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 네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주시고, 종종 하나님께서 직접 구해주시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번역을 통해서 싸이지 않는다는 말씀 속에는 1) 부서지지 않는다, 2) 찌부러들지 않는다,3) 움츠러들지 않는다, 그리고 4) 꺾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두루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보배를 품은 그리스도인의 능력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능력을 살펴봅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답답한 일은 어떤 일이 갑자기 닥쳐서 당황스러운 경우입니다. 세상만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예측불허의 돌발 상황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때는 마음이 내려앉고 심히 당황됩니다. 밀 그대로 낙심(落心)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은 사람들은 어떤 일이 갑작스레 닥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일을 풀어나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혜와 용기를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매우 황당한 일을 겪으셨습니다. 3년 동안 동거동락하던 제자인 가룟유다가 자신을 팔아먹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음으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사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팔아서 십자가에 달게 할 사람이 자신이 사랑하던 제자라는 사실 앞에서 예수님도 적지 않게 당황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마지막까지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동요하지 않으시고 차분하게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에 영원한 생명이 임하고, 무엇보다 죽음 너머에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답답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당황스러운 일 한복판에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