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걸어간 신앙 여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에 순종하면서 고기를 많이 잡고 심지어 바다 위를 걷는 기적까지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면서 그의 이름 뜻에 걸맞게 천국의 열쇠까지 예수님으로부터 약속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사탄아”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차근차근 훈련시키십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그의 갈릴리 친구들이자 동업자였던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제자들 가운데 특별히 세 사람에게 주목하셨습니다. 훗날 베드로는 수제자로 교회의 터전을 세우는 반석이 되고, 요한은 90넘게 살면서 요한복음은 물론 요한 계시록까지 기록하는 영광을 누립니다. 야고보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고 예루살렘에 박해가 닥쳤을 때 일찍 순교하면서 한 알의 밀알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 명이 담당해야 할 사역을 미리 아시고 특별히 훈련을 시키신 것입니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십니다. 얼굴에 광채가 나고 옷까지 희게 빛이 납니다. 예수님께서 그동안 말씀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면, 이번에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세 명의 제자들에게 확실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변화되신 예수님의 양 옆에는 엘리야와 모세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한 인물입니다. 고통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모세는 죄의 지배를 받던 우리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유케하시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신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신 구약의 인물입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 선지자입니다.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승리했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큰 능력을 행사했던 특별한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좌우에 모세와 엘리야를 두고 계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실체를 본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또 나섭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17:4) 성급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머무실 의도가 없으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보여주시고 싶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베드로를 신비로운 체험으로 부르십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경험하게 하십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본 것과 같은 영광스러운 장면을 베드로가 목격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체험이 중요합니다. 신앙이 머리에 머물러 있으면 힘이 없고 딱딱합니다. 가슴에 머문 신앙은 감정의 기복에 따라서 변화무쌍합니다. 체험은 신앙을 하나님께로 연결시킵니다. 우리의 신앙 고백에 확신을 더해 줍니다. 우리 모두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찾아오십니다. 하지만 체험만 추구하는 것도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세상으로 내려가셨듯이 우리도 빛으로 소금으로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한 신앙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