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3년간의 공생애를 마무리하십니다. 이제 십자가에 달려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돌아가실 때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일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다고 해도 모든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지고 돌아가시는 것이 쉬울 수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꿋꿋하게 그 길을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의 배반으로 인해서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시던 날 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따라 나섰던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하시고, 웃옷을 벗으시고 대야에 물을 떠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섬김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이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알려주십니다. 베드로에게는 그날 밤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베드로는 펄쩍 뜁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맹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 말이 없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3년을 함께 지내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고, 예수님의 능력에 몸소 참여했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여전히 예수님의 실체를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능력이 크신 예수님께서 로마를 무너뜨리고 그곳에 새로운 메시야 왕국을 세우실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예수님을 세 번 씩이나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을 쉽게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심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날 밤 예수님께서 무력하게 로마 군병에게 잡히셔서 밤새도록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십니다. 베드로나 제자들이 기대하던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셨지만 현재의 초라한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면 자신도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까봐 겁이 났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는 장면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하길 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조심하길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마지막 세 번째로 부인할 때는 예수님께서 돌이켜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 마음에 예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베드로의 믿음과 그동안의 행보가 모두 무너져 내린 것 같습니다. 그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밤에 믿음을 모두 털어 버린 듯 합니다. 가장 훌륭한 고백을 했던 베드로,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되신 모습을 보았던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베드로의 실체입니다. 아무리 베드로가 위대해도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늘 넘어지고 무너집니다.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물론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