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4)

올 해 우리 교회 표어대로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회도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속에 거하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전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고전3:16) 우리들이 쓰임 받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께서 쓰심으로 일어나는 외적인 변화 또는 열매들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쓰셨다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니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이것이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들에 있었던 “행위”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적인 성품의 변화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있었던 사랑, 믿음, 섬김과 인내의 네 가지 덕목이 성품 속에 배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행위와 성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이 드러나 보일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아보게 되고 그들도 하나님께로 올 것입니다.

저는 위의 두 가지 표시들 가운데 특별히 성품의 변화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행위는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서 하나님께서 쓰심을 한결같이 드러내 보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리의 성품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고‘예수 믿는 사람답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신다는 증거가 됩니다. 신앙과 삶의 통합이 이루어진 행위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을 닮은 성품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 원합니다.

오늘 살펴볼 서머나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마찬가지로 책망 없이 칭찬만 받았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고난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겪고 있는“환난과 궁핍”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환난이라고 하면 밖에서 오는 핍박을 가리킬 것입니다. 궁핍은 물질적인 빈곤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라오디게아 교회와 반대로 서머나 교회는 가난했습니다. 자랑할 것이 없는 초라한 교회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실상이 제각각인데 그 가운데 서머나 교회의 상황이 가장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를 두고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칭찬하십니다. 라오디게아의 책망과 정반대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믿음이 부요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목숨 걸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앞으로도 고난이 계속 닥칠 것이라니 이들의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시는 당부의 말씀이 “죽도록 충성하라”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환난의 기간이 열흘로 정해져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이들 앞에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늘 좋을 수 없습니다. 환난과 핍박이 수시로 밀려옵니다. 그때도 죽도록 충성하면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고난의 끝에 생명의 면류관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