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수요예배에서는 신약 속에 나타난 아브라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작년 연말까지 연속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서 설교했고 새해 들어서 신약 속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살펴 본 것입니다. 구약만 생각하면 아브라함은 영락없는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신약에서 비로소 아브라함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인물로 재해석하면서 아브라함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조상이 되고 우리들 역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3장 6-7절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라고 분명히 가르쳐줍니다. 아브라함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 등장한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를 통해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지금 우리 안에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또한 야고보서 2장에서는 아브라함이 단순히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할례를 행하고, 하나뿐인 아들이삭을 바친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그의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고 가르쳐줍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걸맞은 행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야말로 신행(信行)이 일치했던 인물이었고 결국 하나님의 벗(God’s friend)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수요예배에서 말씀드렸듯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후에 지나치게 믿음이 강조되었습니다. 물론 로마서의 말씀대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율법의 행위나 각자의 행동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믿음”속에 행함이 포함되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점에서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과 삶 속에 믿음의 행위가 없는 것은 야고보의 말대로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 뒤에는 반드시 신앙의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행위를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한 주간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기사가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장식했습니다. 종교와 신분, 당파와 성별을 떠나서 40만에 이르는 추모객은 물론 국내외의 모든 국민들이 그 분의 소천을 추모했습니다. 그것은 그 분께서 신앙과 삶을 통해서 성직자의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개신교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릅니다. 이기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런 세간의 비판에 일일이 변명하기보다 삶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세상에 보일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확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선한행실로 신앙과 삶 속에 선명히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임 꼭 기억합시다.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