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아침에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삼일 째 되던 날. 평소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료를 바르고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간 줄 알았습니다. 서둘러 베드로와 제자들을 무덤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상대로 예수님의 시체는 무덤에 없었습니다. 대신에 흰옷 입은 천사들이 무덤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알렸습니다. 생전에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두고 제자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같아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어찌 보면 무력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신대로, 성경에 예언한 대로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것을 두고 사도바울은 로마서 6장 4절에서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함입니다. 우리들 안에 있는 죄와 사망의 세력을 없애고 새로운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상식과 지식의 범위를 초월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체험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했을 때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을 체험하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전 것이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2009년도 부활절을 맞았습니다. 어렵고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기에 부활절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부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죽음을 너머선 완전히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으로 들어가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삶 속에 죽음의 세력을 모두 몰아내고 새로운 생명을 힘입어야합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의 모든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묵묵히 골고다 언덕을 올랐듯이 우리 교회에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말없이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봐야합니다. 골고다 언덕 너머에 부활의 아침이 밝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능력이 우리 모두위에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망권세를 물리치신 예수님을 꼭 붙잡고 앞으로 나갑시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서! -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