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어느덧 미국에 온지 열두 해가 다가옵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커네티컷의 한 형제께서
이민목회를 하실 생각은 없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셨습니다.
그때 저는 단호하게 공부 끝내고 한국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람이 한 치 앞길을 알 수 없듯이
그때부터 1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고
저는 지금 이민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오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제는 좋아하던 실내축구도 내려놓고
젊었다고 생각하면서 지고 다니던 가방도 내려놓을 때가 되는가 봅니다.
앞 일을 두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제 스스로의 인생을 통해서 배웁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동안(童顔)이라는 얘기를 줄곧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한편으로는 좋고,
또 한 편으로는 제 나이가 있는데 은근히 무시당하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 나이를 그대로 알아봅니다.
머리에 염색을 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10년을 위로 볼 것 같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제 모습을 보아도
올해 들어서 바짝- 얼굴이 망가진(?) 듯 합니다.
탄력을 잃었습니다.
머리 숫자도 줄어들고 이마가 반들반들 해지면서 넓어집니다.
이것이 인생임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그래도 우리 권사님들은 제가 젊어서 좋답니다.
저에게 청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청춘예찬(靑春禮讚)을 외치면서 살 생각입니다.
2.
사도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주는 교훈을 하면서
우리의 외모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베드로서가 쓰여질 초대교회 당시에도
외모를 꾸미는 일들이 꽤 많았나 봅니다.
이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숨은 사람(the hidden person)”을 꾸미라고 가르쳐줍니다.
외모를 꾸미는 것은 겉 사람을 장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겉 사람은 급격하게 아름다움을 잃어갑니다.
반면에 숨은 사람을 꾸미는 것은
겉 사람과 상관없이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precious in sight of God)”입니다.
숨은 사람을 꾸미는 비결도 가르쳐줍니다.
첫째로, “온유함”입니다.
온유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우스”는
“넉넉함” “부드러움”과 더불어 “겸손함”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둘째로, “안정된 심령(quiet spirit)”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매우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온유함이나 평온함 모두
삶의 깊이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모신 그리스도인들의 온전한 모습입니다.
온유하고 평온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아름다움(imperishable beauty)이랍니다.
내적인 아름다움이기에
얼핏 봐서 드러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귀면 사귈수록
그윽한 인간미와 신앙의 향기가 드러나는 아름다움입니다.
3.
사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얼마든지 겉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10년 젊어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숨은 사람”입니다.
동시에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점점 아름다워지는 것이 있습니다.
“온유함”과 “평온함”으로 가꾸어지는 “숨은 사람”입니다.
사순절의 막바지를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 무엇보다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남은 사순절 기간 동안
“숨은 사람”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가꾸기 원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서머나 식구들은
겉모습도 아름다우십니다.
젊은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연세 드신 성도님들도 모두 10년은 젊어 보이십니다.
그런데 오늘아침 저는
서머나 성도님들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렵니다.:
“하나님,
우리 서머나 성도님들은
내면이 아름다우신 그리스도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임을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3월 18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