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제가 골몰히 생각하는 단어가
“자리”라는 말입니다.
“자리를 잡다”라는 말은
우리들이 어디엔가 있을 곳에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은
욕심을 부리거나 미련을 갖지 않고
마음을 비운다는 뜻입니다.
하여튼
우리들은 “자리”가 필요합니다.
일 자리, 쉴 자리, 놀 자리, 잠자리 등등.
히브리어로 “자리”는 말은
“앉다” “머무르다” “거주하다”라는 뜻의 “야샤브”라는
동사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거주지” “집” “정착”
이민비자를 갖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영어
“resident alien”이라는 말도 히브리어 명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자리”는 우리가 현재 거하는 곳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어떤 자리에든지 있어야 합니다.
공간을 초월할 수 없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2,
구약성경 창세기의 요셉을 생각해 봅니다.
요셉의 처음 자리는 꽤 괜찮았습니다.
형들의 시기를 받으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형들이 그를 팔아버리면서
그의 자리가 외국으로 옮겨집니다.
경호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팔립니다.
요셉은 노예라는 신분으로 전락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을 책임 맡은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모함을 받고
다시 감옥에 갇힙니다.
그의 자리는 점점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하면서
감옥의 제반 사무를 처리하는 총무가 됩니다.
요셉이 이처럼 아버지 집에서,
이집트의 노예로,
감옥의 죄수로
그의 자리가 바뀌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늘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끌어올려져서
이집트의 총리라는 자리까지 올라갑니다.
나중에는 자신을 판 형제들과 아버지 야곱을
이집트로 불러서
화해의 잔치자리를 마련합니다.
3.
우리는 요셉에 대한 말씀을 읽으면서
그가 이집트의 총리가 된 모습에 초점을 맞춥니다.
온 가족과 화해한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출세지향적인 세상의 관점으로,
섣불리 결론부터 내리고 성경을 읽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셉에 대한 말씀에서 중요한 키워드(key word)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창 39:2)
그의 자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려가는 자리든지, 올라간 자리든지,
웅덩이에 빠진 자리든지, 꿈을 해몽하는 왕궁이든지…
요셉이 어디에 있든지
요셉의 모든 삶의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이
요셉의 진정한 영성입니다.
우리들도 때로는 자리에 연연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자리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자리가 사람들이 보기에 초라하다면
기가 죽고 손을 축– 늘어뜨리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향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신뢰하면
어떤 자리에 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생각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온전한 신앙입니다.
엊그제 수요예배에서도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주 크게 들렸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학개 1:13)
오늘 하루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그 자리에서 감사와 기쁨의 찬양을 드리는
서머나 식구들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자리가 너무 복에 겨워서 하나님을 잊을 수도 있고
우리의 자리가 초라해 보여서 기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서머나 식구들이 자신들이 거하는 자리를 바라보지 않고
지금 여기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년 5월 20일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