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전에 목회하던
인디애나 교회에서는
수요예배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저는
수요일마다
교회 홈페이지에
“수요단상”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요일 저녁 이-메일 서신을 준비해서
보내는 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인디애나 교회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올렸던 수요단상의 제목이
“무례한 기독교”였습니다.
풀러 신학교 총장님이신
리처드 마우께서 쓰신 책을 소개한 글이었습니다.
개척해서 5년동안 애지중지했던
교회와 그곳의 청년들이
멋진 그리스도인들로 세상에 나가기를 기도하면서
글을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에,
생각이나 삶이 매력적이어야 할 기독교인들이
자꾸만 창피하고 무례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서
속이 많이 상합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너무 교만해 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지난 번 설교처럼
상처를 받아서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인지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말 그대로 예수님을 닮은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노력하기 원합니다.
2.
오늘은 5년 전에 써 놓았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보냅니다.
조금 길지만, 끝까지 읽어보시고
행여나 우리 안에 추한(ugly) 모습이 있다면 회개하고
멋진(attractive) 모습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합시다.
“무례한 기독교”
이 책의 영문 제목은 “uncommon decency”입니다.
Common decency는 “일상적인 예의”로 번역되는
흔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uncommon decency“라니요?
직역하면 “특별한(비일상적인) 예의범절/품위“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적 교양과 예의 범절에 관한 책입니다.
믿음이 너무 좋으면
세상 속에 작 섞이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자신만이 천국백성이고,
세상 사람들은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정죄하곤 합니다.
말 그대로 “무례함” 입니다.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나 신실함은 뒤로하고
세상 속에서 단지 “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인지 종종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예의범절은 지켰는지 모르지만
기독교인의 정체성인 “특이함”을 잃어버렸습니다.
세 번째 경우는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에서 전혀 구별됨 없이 두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큰 일입니다.
얼른 회개하셔야 한다고 매번 말씀 드립니다.
이에 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믿음과 교양을 두루 갖춘 근사한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uncommon decency”라는 책 제목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무례하게 행해서는 안됩니다.
친절과 온유함에서 우러나온
예의 범절을 갖추고 이웃을 대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던…안 믿던…
우리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친절해야 할 이유는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예술작품이다. 그분이 우리 각자를 정교하게 만드셨으므로 우리는 모두 ‘특별한 피조물’이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그분의 작품을 망가뜨렸을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무례한 기독교-, 31쪽)
3.
세상 사람들은 종종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무례하다고 합니다.
배타적이라고 합니다.
이기적이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사람들 앞에 서 계셨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도 그렇게 말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자기를 낮춰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님!
죄인들의 친구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급기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누구도 예수님을 향해서 “무례하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핀잔을 들어야 할까요?
마우 총장께서 지적하셨듯이,
우리들에게 기독교적 소양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신앙을 잃지 않고
뭔가 다르게 사는 특별함,
거기에 온유함과 친절 그리고 너그러움으로 대표되는 예의범절 –
이런 소양들이 우리들의 신앙인격에 베어있다면,
세상 사람들 입에서
“무례한 기독교”라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세상 속에 우리를 있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서머나 식구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다운 거룩함을 잃지 않고
세상 속에서 예의범절을 갖춘
멋지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 (마 5:16)
하나님
신앙과 삶이 하나가 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알고 있지만 자꾸만 넘어지고
세상살이가 힘겹기에
적당히 믿고 싶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서머나 식구들이 꿋꿋하게
예수님을 닮는 신앙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멋지고 근사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세상을 놀래키게 하옵소서.
하나님
순간순간 실패하고 넘어져도
예수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매 순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목사 올림
(2010.10.28 이-메일 목회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