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새벽송

제가 어릴적 자랐던 시골마을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최고의 절기였습니다. 성탄절 이브 저녁에는 연극을 하면서 배우의 꿈도 키워보고, 캐롤송을 부르면서 가수의 꿈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밤새워서 대본을 외우고 노래 가사를 외우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무엇보다 성탄절 날 교회에서 주는 과자와 사탕은 왜 그렇게도 맛이있었던지…

중학생이 되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새벽송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처음에는 새벽송 자체보다 교회에서 밤새도록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새벽 서너 시가 되면 목사님께서 사시는 주택에서부터 새벽송이 시작되었습니다. 등치가 큰 청년이 커다란 자루를 어깨에 메고 앞서 갑니다. 집집마다 준비해 놓은 과자며 사탕을 담을 자루입니다. 대열을 인도하시는 집사님은 잡담은 물론 발걸음도 살금살금 걸으라고 주의를 주십니다. 그런데 장난꾸러기 아이들에게 그 말이 통하나요? 뒤에서 여학생들을 놀래 키고 남들이 찬양을 할 때는 추녀 끝의 고드름을 따서 피리 부는 시늉을 하면서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성탄절 날 새벽에 눈이 하얗게 내리면 정말 장관입니다. 산 넘어 동네로 통하는 오솔길의 소나무들은 눈꽃으로 덮여 있습니다.하얀 눈이 덮인 들판에 달빛이 비추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금방이라도 다시 나타나실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기온이 너무 떨어져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새벽송을 돌곤 했습니다. 마음이 넉넉한 집사님들께서 중간 중간에 떡국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추위에 꽁꽁 언 몸을 녹이면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먹던 떡국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도시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말만 해도 도시 교회들도 새벽송에 열심을 냈었습니다.그런데 도시의 새벽송은 영—불편했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교회 새벽송 대원들과 만납니다. 왁자지껄입니다.때로는 서로 타려고 경쟁을 합니다. 아파트 복도에서 노래를 부르면 반대편 집의 문이 열리기 일쑤입니다. 시골에서 살금살금 걸어가던 낭만도, 천사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려고 생 달걀을 한 개씩 먹고 출발하던 열심도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대신에 먼거리를 차를 타고 가야하는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슬며시 새벽송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한인교회들도 새벽송을 돌았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새벽거리를 다니는 위험과 도시의 복잡함,무엇보다 성탄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려는 미국문화에 새벽송은 점차 자취를 갖춘 듯 합니다.

새벽송이 사라진 것은 괜찮은데, 새벽송을 돌면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 새해의 복을 빌어주던 정겨운 마음까지 사라진 듯 해서 아쉽습니다. 어디 새벽송뿐입니까? 매일같이 날아드는 세일 전단들과 TV광고를 보면서 성탄절을 세상에 송두리째 빼앗긴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시대에 탄생하신다고 해도 여관을 잡기는 매우 어려우실 것 같습니다.

매년 맞는 성탄절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릴 적 성탄절이 생각나는 것은 옛날에 대한 좋은 추억 때문만은 아닙니다. 교회도 많고 그리스도인들도 많고 온 세상이 성탄절인 줄 알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의 탄생을 알릴 천사들의 발걸음과 목소리가 그립기 때문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SF한국일보 종교칼럼 2006.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