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에서 회자되고 있는 “요코 이야기 (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본국 교단지의 요청으로 책을 사려고 미국서점에 들렸습니다. 곧바로 고객센터를 찾아서 책 제목을 직원에게 건넸습니다. 은근히 책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잠깐 기다리는 말을 남긴 직원이 직접 찾아서 책을 건네줍니다. 직원의 친절이 그 날은 그리 달갑지 않고 도리어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그동안 동부의 몇몇 중학교에서는 이 책이 필수 독서목록에 들어 있었답니다. 한 한인 학생이 그 책을 읽고 학교에 문제를 제기함으로 세간의 이슈가 된 것입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은 일본인들에게는 전쟁에서 패한 국치일입니다. 요코 이야기는 당시에 함경도 나남(청진)에 살던 요코라는 일본인 소녀가 가족과 함께 한반도를 떠나서 일본에 도착하기까지의 힘겨운 여정을 그린 일종의 수기와 같은 소설입니다. 이들이 원산과 서울을 거쳐서 부산까지 내려가는 여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사연들,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는데 요코가 오빠의 말을 듣고 책에 기록했다는 공산당의 만행, 일본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동안 여자 셋이 넘겨야 했던 힘겨운 순간들을 열한 살 소녀의 눈으로 기록했습니다.
책 서두에 있는 지도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부터 눈에 거슬렸습니다. 아무리 개인적인 경험이라지만, 우리 민족이36년간 일제 강점기에 겪은 수모는 온데간데없습니다. 대신에 한 가족이 한국을 떠나면서 겪은 단지 몇달 동안의 어려움을 마치 유대인의 아우슈비츠 탈출기인양 기록하였습니다. 현재 73세가 된 저자 요코는 보스턴 근교의 학교들을 순회하면서 이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니 더욱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책을 모두 읽고 책에서 손을 떼고나니, 책의 내용보다 우리의 모습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눈물로 호소하다가 한을 품고 생을 마감하는 정신대 할머니들을 보면서 그저 동정만 했고 나라 안에서만 야단법석을 떨었지 세상에 알리려는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대학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과목과 전공들이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엘리 위젤이라는 작가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문고판100여 쪽에 불과한 책(“Night”)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기독교 신앙에서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물론2천년 교회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사람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진 초창기에 한국교회는 훌륭한 신앙의 지도자들과 민족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그때는 교회가 사회를 선도했었습니다.
요코 이야기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를 세계에 알릴 인재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무엇보다 교회가 사람을 키워야겠습니다. 교회의 재정에서 선교비를 책정하듯이 장학기금도 빠짐없이 책정해야겠습니다.특별히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조국과 한민족의 우수함을 세상에 알릴 동량(棟梁)들을 키우는데 교회가 더욱 힘써야겠습니다. (SF한국일보종교칼럼, 2007.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