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기다리면서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보낼 때 마다 색다른 은혜를 체험하곤 합니다. 그래서 매년 맞는 부활절이지만 소홀히 하거나 관습적으로 지낼 수 없습니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에 마가복음을 묵상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네 개의 복음서 가운데 가장 짧고, 사건의 전개가 빠르고 역동적인 복음서입니다.
영국 런던대학의 킹즈 칼리지 학장이었던 리처드 버리지라는 분은 “네 편의 복음서, 한 분의 예수”라는 책에서 마가복음에 그려진 예수님을 “묶여진 사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첫 번째 장(章)에서 예수님은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표준새번역 막1:15)고 사자처럼 포효하십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속의 예수님은 참으로 외로우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귀머거리를 고쳐주면서 “에바다(열려라)”라고 외치시고, 소경의 눈을 띠어주시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을 “묶여진 사자”라고 묘사한 것은 외롭게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가르치셨던 제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깁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버려도 자신만은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던 베드로 역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빌라도의 법정에 모인 백성들은 극악무도한 강도 바라바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 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급기야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묶인 사자처럼 포효하십니다.:“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이처럼 ‘홀로이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저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속의 예수님은 의연하게 행동하십니다. 외로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임을 당당히 선언하면서 주어진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사명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제자들이 곁을 떠나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물론 로마의 군인들까지 얼굴에 침을 뱉으며 조롱을 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상황에 휩싸이지 않으시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마음뿐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 소리를 지르고 운명하실 때 성전 휘장이 두 폭으로 찢어지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옛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에 비하면 어림없지만 우리들 역시 신앙의 순례길을 걸어가면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세상 천지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영적고독의 순간들입니다. 앞으로 나가고 싶어도 손 발이 묶인 듯 꼼짝달싹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홀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손발이 묶인 사자처럼 인생의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 간다 하여도 예수님처럼 포효하면서 외로움 저 너머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꿋꿋하게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8.3.20 SF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