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폰 이야기

지난 달에 우리 가족 모두 셀폰을 바꿨습니다. 그 동안 큰애와 저만 셀폰을 갖고 있었는데 새롭게 계약을 하면서 아내와 둘째도 셀폰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큰 애와 똑 같은 모델을, 아내는 둘째와 같은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집에 와서 그 동안 사용했던 셀폰을 모아둔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6년 전 처음으로 사용했던 셀폰의 모습이 촌스럽고 투박해 보였습니다. 한 쪽 머리에는 수신 안테나가 뿔처럼 달려있습니다. 표면이 지나치게 미끄러워서 떨어뜨리기 일쑤였습니다. 살펴보니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입니다.

지금은 골동품처럼 보이는 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예전 생각이 납니다. 처음에는 길을 가다가 괜히 집에 전화를 걸곤 했었습니다. 한 동안 전화가 오지 않아서 교인들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가 나중에는 통화한도를 관리하느라 월말이 되면 쩔쩔매곤 했습니다. 긴급한 연락 받고 신속히 달려갔던 일, 길을 가다가 교인들의 기쁜 소식을 전해 듣고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다가 옆에 있던 사람들을 보고 머쓱해 했던 일 등등 투박한 셀폰이지만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셀폰은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지 6개월여 만에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국산 전화기였습니다. 빨간색이 중간에 들어가서 왠지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머리에 있던 뿔도 없어졌습니다. 신호음도 바꿔보고, 초기화면도 바꿔보면서 고성능 셀폰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무엇보다 두 번째 셀폰의 압권은 전화기에 장착된 카메라였습니다. 드디어 저도 셀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혼자서 또는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어봅니다. 웃는 표정, 찡그린 표정, 기쁜 표정, 교인들이 보면 깜짝 놀랄 화난 표정…. 젊은이들처럼 표정을 지어보지만 화면 안에는 영락없는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들어있었습니다. 어떻게 해도 표정과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습니다.그래도 요즘 세대를 따라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격려하면서 셀폰에 추억을 담아 놓았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갖게 된 셀폰은 뿔도 달리지 않고 두툼하지도 않은 슬림형입니다. 와이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불편함이 없을 만큼 가볍습니다. 새로운 셀폰을 구입할 때 아내는 서로 헷갈린다고 말렸지만,  함께 갔던 큰 아이가 저와 같은 모델을 선택하기를 은근히 바랬습니다.

이제 큰 아이는 올 여름에 대학에 갑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에 와서 가족이 똘똘 뭉쳐서 살았는데 큰 아이가 집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표현은 못해도 섭섭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같은 전화기를 갖고 있으면 이심전심 마음이 통해서 부자지간에 자주 연락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큰 애가 아빠의 마음을 알았는지 저와 똑 같은 점잖은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휴- 역시 저 놈 속에 내 피가 흐르고 있구나. 고맙다 아들아!”

자녀들이 커가면서 왠지 작아지는 아버지의 모습, 그렇지만 아이들이 조금만 생각해줘도 마음 속에서 울컥할 만큼 기뻐하고 감동하는 부모의 마음은 세대를 초월해서 똑같음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셀폰의 모델과 기능은 해가 다르게 바뀌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롭게 장만한 셀폰을 통해서 나누게 될 하늘나라 이야기 그리고 아로새겨질 추억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흐뭇해 집니다. (2008 5.1 SF한국일보 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