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추수감사절을 맞는 우리들의 마음이 그리 편치 않습니다. 좀처럼 흔들릴 것 같지 않던 미국경제가 불안감에 휩싸여있습니다. 월가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는 우리네 서민들의 삶 속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가운데 추수감사절을 맞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400여년 전 유럽에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신대륙에서의 새로운 삶을 향한 커다란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순례자들(Pilgrims)”이라고 불렀습니다. 우선, 영국 성공회에 반대해서 네덜란드의 레이든이라는 지역에 살고 있던 일단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가기 위해 “스피드웰”이라는 배로 영국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메이플라워”라는 무역 선을 하나 더 빌려서 두 대의 배로 대서양을 건널 예정이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는 물론 생사가 걸린 순례길이였으니 얼마나 철저히 준비하였겠습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우선 스피드웰이라는 배에 문제가 생겨서 대서양을 건널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할 수 없이 메이플라워호에 짐과 102명의 순례자들이 옮겨 타고 한대의 배로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대서양을 절반쯤 건넜을 때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102명의 승객 가운데 한 명은 거친 폭풍에 바닷속으로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노약자들은 심한 뱃멀미로 고생을 했습니다.
항해 도중에 임신부 가운데 한 사람이 아이를 낳아서 102명으로 시작된 순례길이 새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103명으로 마칠 것 같은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대륙에 도착하기 5일 전에 한 명이 목숨을 잃고 102명의 숫자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들은 원래 계획한대로 뉴욕의 허드슨강에 도착하려 했지만 북쪽 보스턴 근교의 케이프 코드에 닻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을 비좁은 배 안에서 보내면서 순례자들 가운데 절반이 폐렴과 전염병 등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의 유래 속에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나선 순례자들의 아픔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들은 66일 동안 대서양의 거친 파도와 싸웠습니다. 죽어가는 신앙의 동지들을 가슴에 묻으면서 어떻게든 신앙의 꿈을 펼치려 사력을 다했습니다. 원주민의 도움을 받는 행운도 있었지만 낯선 환경을 개척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보내는 순례자들의 마음은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에 왔던 순례자들의 계획이 조금씩 어긋나고 목적지까지 변경된 것을 보면, 신앙의 순례길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절반이 목숨을 잃은 것을 보면서 신앙을 찾아 떠나는 순례길의 험난함과 아픔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걷는 신앙의 순례길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400년 전 신대륙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모진 역경을 이겨내고 첫 번째 추수감사절을 지켰듯이, 우리들 역시 어떤 어려움과 희생이 닥쳐와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다면 감사의 축제를 벌일 날이 우리 앞에 분명히 찾아 올 것입니다.
2008년 추수감사절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아로새겨 놓았으면 좋겠습니다.(2008. 11. 20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