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에게 주일 저녁은 달콤한 휴식의 시간입니다. 심방이나 다른 약속이 잡힐 수도 있지만, 주일예배를 마친 후의 모든 일들은 한결 부담이 없습니다. 아마 목사처럼 월요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주일 저녁의 자유함과 한가로움을 나름대로 즐기는 편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피곤해도 주일 밤 늦게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 일입니다. 저는 그 시간이 무척 행복합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30여분은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우리 부자만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대개 아들이 운전을 하고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옆 자리에 앉습니다. 조심스럽게 운전하라고 잔소리도 하지만, 그 때만큼은 좋은 얘기만 하려고 노력합니다. 여자친구가 있는지도 슬쩍 떠봅니다. 아들이 얘기하기 전까지 시험성적은 묻지 않습니다. 센스가 있는 아빠라면 그 정도 예의는 지켜줘야 합니다. 그러면 아들도 허물없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어떤 때는 오바마 대통령까지 들먹이면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눕니다. 그때마다 아들이 어느덧 의젓한 청년으로 커있음을 발견합니다.
처음에는 주일 저녁에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이 무척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이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앞으로 아이가 진학이나 직장을 찾아서 멀리 떠나거나 가정을 꾸미면 부자지간에 이런 시간을 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고 보니 이 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부자를 위해서 숨겨놓으신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들의 신앙이 너무 한탕주의가 되었습니다. 축복도 양적인 개념으로 바뀌어서 웬만큼 큰 일이 생기지 않으면 축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기저기 간증집회를 다니시는 분들이 워낙 큰 축복을 받고 극적인 인생을 살다 보니 우리 같은 범인들은 어디에 명함도 내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십니까? 하나님은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입니다. 작은 자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은 형제들 가운데 막내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흔쾌히 받아서 축사하시고 그것으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은 작은 것에도 숨겨져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도 바로 여기에 맥이 닿아있습니다. 소위 큰 축복을 받고 감사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아주 작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으로 여깁니다. 매일 아침에 건강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부터 축복입니다. 한 낮에 머리 위를 비추는 태양을 볼 수 있는 것도 축복입니다. 밤이 되어서 평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축복입니다. 또한 아무리 어려운 일을 겪어도 그 안에 숨겨진 축복을 찾아내는 사람만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숨겨진 축복을 찾아내서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번 한 주간은 우리 삶 속에 숨겨진 축복을 매일매일 열심히 찾아봅시다. 어릴 적에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숨겨놓으신 축복을 찾아보는 겁니다. 그러면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고 삶 속에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내일은 또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을 숨겨놓으실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2009년 5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