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시카고에서 인디애나폴리스로 향하는 비행기안에 있습니다. 인디애나대학교 기독학생회 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러 가는 길입니다. 비행기 여행을 할 때는 긴장하게 마련입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손과 발에 힘을 줍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까지는 큰 여객기를 타고 왔는데, 인디애나로 내려가는 비행기는 좌석이 두줄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비행기입니다.
조종사 한 명을 포함해서 승무원이 세 명뿐입니다. 평상복과 다름없는 바지를 입고 있는 여승무원들도 왠지 모르게 촌티(?)가 납니다. 승객들을 기다리면서 조종사와 여승무원이 농담을 하는 모습이나, 먼저 탑승한 승객들이 옹기종기 떠드는 모습이 꼭 한국의 시외버스를 연상케 합니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방향을 바꿀 때는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하늘 높이 올라가면 큰 비행기나 작은 비행기나 커다란 차이 없이 상공을 날아갑니다.
비행기 여행을 할 때면 의례히 하는 일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는 차분히 눈을 감고 하나님께 여정을 온전히 맡기는 기도를 합니다. 이번 여행은 젊은 청년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길이기에 더욱 기대가 됩니다. 또한 저의 첫 단독 목회지를 방문하는 길이어서 마치 친정 집을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5년여 뵙지 못했던 권사님들을 뵐 생각을 하니 꼭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아들 심정입니다. 이번 여정에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을 마음껏 축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연초에 받았던 성도님들의 1년 기도제목 묶음을 가방에서 꺼냅니다. 어느덧 비행기는 고도를 잡고 상공에 올라와서 안정되게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하늘 꼭대기에서 성도님들의 모습을 눈에 그리며 기도제목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기도합니다. 하늘에서 기도를 하니 마치 기도가 하나님께 더욱 빨리 올리어질 것 같습니다. 물론 느낌입니다.아니 잘못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놓고 비행기안에서 기도하는 특권을 포기할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시카고까지 오는 동안 창가를 통해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대부분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고, 수만 피트 상공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평지나 다름없습니다. 로키산맥을 비롯해서 높은 산간지역을 지나고 있지만, 하늘 위에서는 높고 낮음을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시구(詩句)가 생각났습니다. 그 옛날에는 비행기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하늘아래 뫼”라는 사실을 알아냈는지 선조들의 혜안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십여 분만 하늘로 올라가도 세상이 평평해 보입니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높은 산이나 깊은 골짜기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높아지기 위해서 아등바등 서로 경쟁하며 살아갑니다.까치발을 하면서 1-2인치라도 조금 더 높아지고 조금이라도 더 큰 것을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하늘 위에서 보면 이십 보 백 보일 뿐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내려다보시면, 인간들이 하는 행동과 모습이 얼마나 우스워 보일까요? 비행기 창에 비친 제 얼굴이 겸연쩍게 빨개집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창가에 펼쳐진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비행기가 고도를 낮춥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입니다. 비행기 창가로 도시의 수많은 불빛과 하이웨이를 달리는 자동차의 행렬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수 분 후면 또 다시 아등바등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으로 내려갑니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가졌던 여유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겸손한 마음을 간직하기로 다짐하면서, 이번 집회에서 만날 새벽이슬과 같은 젊은이들을 눈에 그려봅니다.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2010년 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