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티 네스트 신드롬(empty nest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90년 중반까지 10년 가까이 방송된 “엠티 네스트”라는시트콤의 제목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 말로는 ‘빈 둥지 증후군’이라고 옮길 수 있겠지요. 자녀들이 대학에 가고 결혼을하면서 하나 둘 집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부부만 덩그러니 남게 됩니다. 엠티 네스트 신드롬은 자식들이 떠난 가정, 즉 빈 보금자리에서 부모들이 느끼는 외로움을 일컫는 말입니다.
가족이나 상담에 대한 책을 읽으면 종종 등장하는 이 말이 남의 일로 알았는데 어느덧 저희 부부에게 닥쳤습니다. 이제내일이면 첫째 아이에 이어서 둘째 마저 대학 기숙사에 들어갑니다. 멀리 있는 학교에 가지 않아서 주말마다 집에 오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섭섭합니다. 아이가 신이 나서 자기 방을 정리하고, 옷가지를 가방에 쌉니다. 아내도 크고 작은 물건을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 참에 집을 떠나면 다시 오지 않을 작정인지 짐이 꽤 많습니다. 제 아무리 열심히짐을 싸도 아빠의 손길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컴퓨터를 연결할 전선줄이 없습니다. 밤이 늦었지만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월그린에 가서 전선줄을 사다가 가방에 슬쩍 넣어 줍니다. 모두 잠이 든 늦은 밤, 거실에 나가서 아이의 짐을 하나하나 다시 확인해 봅니다. 늘 어린아이 같고 언제나 덜렁대던 둘째인데 자기 짐을 꽤 잘 챙겨놓았습니다.
둘째 마저 떠나는 것이 허전한 지 아내는 며칠 전부터 아이가 집에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수시로 되뇌곤 했습니다. 하긴 둘째 마저 없으면 아내의 일이 훨씬 줄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라고 아이와 씨름하지 않아도 됩니다. 심방하면서 아이 점심이나 저녁을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들만 둘인 우리 집에서 둘째는 종종 딸처럼 애교를 부리고어리광도 부렸기에 아내는 더 허전함을 느낄 것 같습니다. 아내는 앞으로 며칠 동안 아이들이 집에 없어서 허전하다고귀가 아프도록 얘기할 것입니다. 잘 생긴 남편이 곁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솔직히 아내만 허전한 것은 아닙니다. 아빠인 저도 아이들이 없으면 꽤나 허전할 것 같습니다. 지난 20여년을 밤마다 아이들이 제게 와서 “아빠 잘게요”라고 말하면 저는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꼬마일 때는 제 품에 꼭 안고기도해 주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되면서는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는데, 저 보다 등치가 커지면서 아이들의 등에 제 손을 대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큰 아이는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밤 10시가 되면 학교에서 전화를 합니다. 그러면전화로 기도해 줍니다. 둘째는 어떻게 할 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아빠의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부터 스스로 자신들의 인생을 설계하고 개척해 나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밤 10시가되면 둘째의 전화도 기다릴 것 같습니다.
우리 이민1세들에게 자식에 대한 기대와 애정은 각별합니다. 때로는 자식을 부모의 분신처럼 생각해서 자녀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장성한 자녀들이 부모 곁을 떠나고 가정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그 동안 부모가 자녀들의 지킴이(가디언)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부모의조언이 필요할 때 삶의 지혜를 나눠주는 멘토가 되어야 합니다.
저 역시 이렇게 이론적으로 잘 무장되어있지만, 자식들이 떠난 빈 보금자리는 꽤 허전할 것 같습니다. 순간순간 아이들이 보고 싶어 질것 같습니다. 이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겠지요!
(2010.8.27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