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쯤에 교단 목회자들의 수련회가 있어서 몬트레이에 다녀올 때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사정이 있어서 수련회 첫날만 참석하고 밤늦게 돌아와야 했습니다. 자동차에 타서 계기판을 보니 개스가 한 눈금 남짓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원래 미리 미리 개스를 넣는 편인데 그 날은 무심코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내와 둘이 교회에 대한 이야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야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즈음, 갑자기 개스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그래도 20여 마일은 문제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눈금이 생각보다 아주 빨리 떨어집니다. 앞으로 몇 마일을 더 갈 수 있는 지 계기판을 점검해 보니 7마일 가면 개스가 모두 소진된답니다. 깜짝 놀라서 고속도로 출구를 찾았지만 좀처럼 나오질 않았습니다. 280 하이웨이는 자주 다니던 곳인데 스탠포드를 지나서부터 깜깜한 산길이 연속인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결국 1마일 남았다는 표시등이 들어왔습니다. 등줄기에 땀이 흐릅니다. 아내는 옆에서 기도를 합니다. 여행길도 아니고 산길도 아니고 우리 동네에서 그것도 밤 12시에 개스가 떨어지면 이거 무슨 창피입니까? 앞에 92번 하이웨이 출구가 보입니다. 개스를 아끼려고 기아를 중립에 넣고 내리막길을 따라 갔습니다. 주유소가 보였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요! 기름을 넣고 나니 제 배가 다 부른 듯 했습니다. 이제는 대륙횡단도 할 수 있을 만큼 기분이 홀가분했습니다.
개스를 넣고 집으로 향하는데 슬그머니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1마일 남았어도 그곳에 주유소가 있었는데 너무 초조해한 것 같았습니다. 개스가 떨어지면 AAA를 부르면 되고, 아내가 옆에서 열심히 기도했으니 하나님이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우리 길을 인도하실 텐데 지나치게 안달을 떨었던 것 같았습니다. 산골도 아니고 도시에서 개스가 떨어졌다고 큰 일이 생길 것도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위기상황이 닥쳐오자 조급증이 발동했던 것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다급한 상황 앞에서 조급해 지기 마련입니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물을 찾았습니다. 광야 길을 걷다 보면 갈증이 났을 것입니다. 또 언제 오아시스가 나올지 모르기에 더욱 초조했을 것입니다. 기껏 샘을 만났는데 물이 써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모세가 기도하고 나뭇잎을 물에 던지니 쓴 물이 단 물로 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증을 해소하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이것이 왠 일입니까? 그들 앞에 엘림이라고 하는 커다란 오아시스가 나타났습니다. 눈 앞에 오아시스가 있었는데, 조급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개스 경고등에 1마일이 나왔지만 개스가 떨어지기 전에 주유소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느긋하게 그 위기의 순간을 도리어 즐겼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열 두 개의 샘물이 있는 오아시스가 있는 것을 알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중간에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서 불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앞을 훤-하게 내다보는 투시력은 없습니다. 그래서 조급해 하고 안달하면서 살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로 돌려봅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앞을 내다보신다”)라고 소개합니다. 우리들의 앞을 내다보시고,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믿는다면 개스가 떨어져가더라도, 갈증에 쓰러질 것 같더라도 조급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보다 앞서 가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생길을 가다 보면 끝이 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힘들 때가 있습니다. 어려움이 연속해서 밀려오고, 이대로 추락하는 것이 아닌지 초조한 순간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보다 앞서가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너무 조급해 하거나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인생의 오아시스를 향해서 나가기 원합니다.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엘림을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고 침착하고 꿋꿋하게 앞으로 나가는 것이 조급증을 벗어나는 비결입니다. (2011년 8월 26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