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베이 지역은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지 않지만 여기저기 떨어져서 뒹구는 낙옆을 보면서 어느덧 늦가을로 접어 들었음을 느낍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불립니다. 가을이 되면 날씨가 선선해져서 책을 읽기 좋고 또한 수확의 계절 가을에 책 읽기를 통해서 마음의 수확까지 거두라는 뜻에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책을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자랐고 부모님께서 연로하셨기에 저를 위해서 책을 사 주실 여유가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70년대에는 자유교양경시대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매년 주최측에서 선정한 책을 읽고 군이나 도대회에 나가서 독후감을 비롯한 독서 시험을 치는 대회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골 학교의 대표가 되어서 선정된 도서들을 샅샅이 읽는 훈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회에 나가서 시험을 치러야 했기에 방과후에는 학교에 남아서 선정된 도서들의 내용을 정리하고 선생님께서 미리 내주신 예상 문제를 풀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 우연찮게 독서훈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지금도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러고 보니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맞는 듯 합니다.
여러 권의 책을 빨리 읽는 다독(多讀)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다독을 통해서 많은 지식을 두루 섭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 읽기의 정석은 뭐니 뭐니 해도 정독(精讀)에 있습니다. 줄을 치고 여백에 메모를 해 가면서 한 줄 한 줄 치밀하게 읽어가는 정독은 책 속에 빠져드는 독서 삼매경의 기쁨을 만끽 할 수 있게 만듭니다. 정독에 해당하는 적절한 영어 표현을 찾는다면 “close reading(자세히 읽기)”일 것입니다. 책과의 간격을 최대한 줄이고 책 속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독서를 즐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도 한 단어, 한 표현, 한 구절까지 놓치지 않고 자세히 정독해야 합니다. 그때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사를 통해 보면 이미 중세시대부터 성경을 자세히 읽는 거룩한 독서법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렉치오 디비나”라고 불리는 독서법인데 여기에는 적어도 네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차근차근 읽는 것입니다 (렉치오). 성경을 꼼꼼히 읽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연애편지라고 생각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읽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읽은 말씀을 마음으로 곱씹는 묵상 (메디타티오)입니다. 성경 읽기에 묵상이 빠지면 마치 한 귀로 들은 것이 한 귀로 나가듯이 읽은 말씀이 어디론가 빠져나갑니다.묵상은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작업입니다. 말씀을 마음 속에 꼭 붙들어놓으려는 노력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읽고 묵상한 말씀을 붙들고 입술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라티오).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길 기도하는 것입니다.말씀을 갖고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상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말씀을 받았으니 이제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말씀 안에서 쉼을 얻는 안식입니다 (콘템플라티오).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 동안 자신이 말씀을 읽었다면 이제부터는 말씀이 자신을 읽도록 말씀 앞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집착이나 이기심을 내려놓고 온전히 말씀 앞에서 평온함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어지럽고 복잡한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한 독서는 꼭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단독자로 서서 자신을 깊이 돌아보고 말씀 속에서 힘과 지혜를 얻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안에서 쉼을 얻는 귀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놓고, 말씀의 깊이에 푹- 빠져 드는 거룩한 독서를 통해서 우리의 내면이 부요해지고 하루 하루의 삶에 말씀의 은혜가 넘치길 원합니다. (2011년 10월 28일 SF한국일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