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2011년은 토끼해였습니다. 올 한 해를 보내려니 뜬금없이 이솝 우화에 나오는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보고 느림보라고 놀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거북이가 토끼에게 도전장을 냈습니다. 토끼는 여유 있게 거북이의 도전을 받아 줍니다. 심판은 여우가 맡았습니다. 여우가 정해준 코스에서 토기와 거북이가 경주를 시작했습니다. 토끼는 빠르게 출발해서 저만치 앞서 갔습니다. 한참을 달린 토끼는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잠시 누웠는데 그만 잠이 들어 버립니다. 거북이는 뒤에서 느릿느릿 기어옵니다. 그리고 잠을 자고 있던 토끼를 지나서 결승점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한참을 자고 난 토끼가 잠에서 깨어나서 서둘러 결승점에 갔지만 거북이가 승리한 뒤였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토끼는 시간당 56킬로미터(35마일)을 달릴 수 있고, 거북이는 아무리 빨리 기어도 시간당 300미터(328야드)밖에 갈 수 없답니다. 그러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거북이가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솝 우화 속에서는 거북이가 승리합니다. 불가능한 일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거북이가 갑자기 힘이 생겨서 빨리 달렸거나 축지법을 쓰는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거북이는 평소의 속도대로 기어서 경주에 임했습니다. 문제는 토끼에게 있었습니다. 토끼는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아니 거북이를 무시해서 중간에 쉬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방심하다가 쉽게 이길 수 있는 경주에서 패한 것입니다.

올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들도 토끼처럼 사뿐사뿐 뛰면서 한 해를 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런데 한 해를 돌아보니 방심하다가 찾아온 기회를 놓친 경우가 꽤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해서 큰 코를 다친 경우도 있습니다. 끝까지 달려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만 중간에 잠시 쉰 것이 일을 그르치기도 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과신과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인생의 경주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이솝 우화는 물론 우리들 인생 경험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

학창시절 선생님들께서는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끝까지 달려가라”는 말씀을 주시곤 했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 50여 년 살다 보니 인생이 마라톤인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인생의 승부가 생각보다 금방 나지 않습니다. 조금 빨리 갔다고 자만해도 안되고, 빨리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자기에게 맞는 속도로 걸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거북이처럼 기어가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승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솝은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였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경주에게 이긴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이쯤 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짙게 밀려옵니다. 잠을 자다가 경주에서 진 토끼에게 밀려왔을 아쉬움입니다. “…하지 말걸” 하는 식의 후회들입니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세네카는 “인생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후회”라고 했습니다. 후회는 결국 마음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또한 거북이처럼 태생이 느린 것을 두고 자책할 수도 있습니다. 남과 비교해서 느린 것이지 거북이 자신의 발걸음은 결코 느린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만하지 않고 “천천히 꾸준히” 주어진 인생길을 끝까지 걷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계속되는 불경기 속에서 2011년 365일을 살아낸 우리 모두는 승자들입니다. 밀려오는 세파와 어려움 속에서도 올 해의 결승점까지 달려오신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2011년 12월 30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