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지난 번 한국 방문길에 보고 싶은 책들을 구입해 왔습니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을 주문하다가<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목만 보고 얼른 카트에 담았습니다. 충동구매를 한 셈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철학적 이유!” 기대를 갖고 책의 목차를 살폈건만 찾고자 하는 내용은 한 장(chapter)뿐이었고 나머지는 일반적인 통념들을 철학적으로(?) 뒤 짚어보는 식입니다. 기대했던 내용이 많지 않아서 조금은 실망했지만 흥미로운 내용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독일어 <샤덴프로이데(Shadenfreude)>를 소개합니다. 샤덴프로이데는 “남의 불행을 보고 고소하다고 느끼는 심술궂은 마음”을 뜻합니다.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못된 마음씨입니다. 샤덴프로이데를 설명하는 짧은 예가 나옵니다. 고급 양복을 입고 빙글빙글 지팡이를 돌리면서 산책을 하는 신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하늘을 날던 비둘기가 실례한 것이 그만 신사의 고급 양복 위에 떨어집니다.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들은 대개 키득거리면서 웃는답니다.신사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운이 없어서 그런 것인데도 사람들은 고소해 한다는 것이지요.

위키피디아에서 샤덴프로이데를 검색해 보니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더 많이 있었습니다. 여성들보다 남성들에게서 샤덴프로이데가 심하게 나타난답니다. 남성들이 성취지향적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자아 존중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남의 불행에 고소한 맛을 더 많이 느낀답니다. 국가간의 운동경기에서도 샤덴프로이데가 작동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이 시합에서 이기면 괜히 속이 쓰립니다. 반면에 우리 팀과 상관이 없는데도 일본이 지면 고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제 36년의 잔재일 것입니다.

샤덴프로이데가 남의 불행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라면, 우리말 속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남의 성공을 놓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말은 ‘사촌’입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이 땅을 사면 전혀 배가 아프지 않습니다. 빌 게이츠가 미국 전체를 산다고 해도 배가 아프기는커녕 그를 존경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가까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살살 아파옵니다. 경쟁상대로 여겼던 사촌이 땅을 샀다는 소식에 그 놈의 질투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가까운 사촌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뛰어나야 한다는 얄궂은 자존심 일 수도 있습니다.

한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고급 양복을 버린 신사의 불운을 보고 웃기보다 그에게 다가가서 손수건을 내밀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불행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촌이 땅을 샀다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아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도 어려울 때 누군가 도움을 줄 것이고,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누군가 다가와서 자기 일처럼 축하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각박해져 갑니다. 어려움을 함께 나누거나 좋은 일에 진심으로 기뻐해 줄 이웃을 찾아보기 힘들어서 마음이 씁쓸합니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로부터 크게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들 자신이 따뜻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솔직히 쉽지 않아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는 성경 말씀이 샤덴프로이데는 물론 사촌이 땅을 사더라도 그대로 실천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12년 5월 25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