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내 영혼이 은총 입어”(통495장)는 제가 즐겨 부르는 찬양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변합니다. 주의 얼굴을 뵙기 전에는 하늘나라가 참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가 마음 속에 이뤄졌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든지 거친 들을 걸어가든지 초막이나 궁궐에 살든지 예수님을 모신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로 변화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은 기독교인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이지만 막상 정의를 내리거나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궁색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릇된 설명도 종종 발견됩니다. 이를테면 하나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내세(來世)라고 단정짓거나, 천국을 저 하늘 어딘 가에 있을 좋은 곳 즉 공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일전에 젊은이들과 하늘나라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데 한 청년이 천국의 인구과밀을 걱정하는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또한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으로 오해한 나머지 이 세상에서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치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천국 또는 하늘 나라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우선 용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천국은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려 하지 않았던 유대교의 전통을 고려해서 주로 사용한 용어입니다. 마태복음 외에 다른 성경말씀에서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이 더 많이 쓰입니다. 예전에는 “천당(天堂)”이라는 말도 사용했는데 이것은 기복주의가 가미된 정제불명의 한국식 번역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곳은 찬송가 그대로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7:20-21). 우리의 마음, 삶, 학업, 직장, 가정, 인간관계 등등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 한 개와 누룩 서 말에 비유하셨습니다 (눅13:18-21). 겨자씨는 매우 작은 씨지만 그것이 자라면 새들이 깃드는 커다란 나무가 됩니다. 누룩은 떡 반죽을 부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우리의 마음과 삶에 뿌려집니다. 신앙 성장은 그 씨앗이 점점 자라서 열매도 맺고 다른 이들의 쉼터를 제공하는 과정(process)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갑자기 가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을 마음 속에 주님으로 모신 그 순간부터 우리 안에 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미 그러나 아직 (already but not yet)”이라는 시간적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씨앗이 심겨진 곳에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 나라(롬14;17)는 완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릴 뿐만 아니라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 중에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을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믿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고 지금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비밀” (눅8:1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밀을 깨닫고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권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알고 있는 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신앙은 앎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세상 속에 하나님의 통치, 즉 하나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해야겠습니다. (2012년 9월 28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