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문호 괴테는 38년에 걸쳐서 파우스트를 집필했습니다. 21세에 시작해서 59세에 끝을 맺었으니 그의 인생 전체를 한 작품에 바친 셈입니다. 젊었을 때 집필한 부분은 자신감과 열정이 넘칩니다. 반면에 노년으로 갈 수록 인생을 관조하는 대작가의 신중함이 발견됩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한 밤중에 잿빛을 한 여인 네 명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여인은 결핍이고, 둘째는 죄악, 셋째는 근심 그리고 마지막 여인은 가난입니다. 네 여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이 닫혀있습니다. 그 집은 남부러울 것이 없는 파우스트가 사는 집입니다. 가난은 서둘러 발길을 돌렸습니다. 죄악도 일찌감치 집안으로 들어가길 포기합니다. 결핍은 혹시 주인이 가난해 지면 그때 들어가겠다고 말하면서 그림자처럼 홀연히 사라집니다. 네 명의 여인가운데 남은 사람은 근심뿐입니다. 근심이 친구들에게 말한 대목이 눈에 보이듯이 실감나게 읽혀집니다.:”당신네들은 들어갈 수도, 발을 들여놓지도 않는군요. 나 근심은 열쇠 구멍으로 숨어 들어갑니다.”
열쇠구멍을 통해서 집안으로 들어간 근심이 그 집의 주인인 파우스트에게 말을 겁니다. 파우스트는 세상에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근심은 집요하게 파우스트에게 엉겨 붙습니다. 물러가라는 파우스트의 명령에 자신은 와야 할 곳에 왔을 뿐이라고 비아냥거립니다. 급기야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제 목소리는 귀에는 안 들려도 가슴 속엔 틀림없이 울릴 거예요. 저는 모습을 바꾸어가며 무서운 힘을 휘두릅니다. 육로에서건 바다에서건 영원히 불안을 자아내는 길동무로서 요청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나타납니다.” 어쩌면 이렇게 근심을 잘 표현해 놓았는지요!
근심에 대한 국어사전의 뜻은 “해결되지 않은 일 때문에 속을 태우거나 우울해 함”입니다. 일이 해결되면 근심도 사라집니다. 젊었을 때는 해결되지 않았어도 패기와 자신감으로 모든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만,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음을 느낍니다. 그때마다 우리들 마음의 열쇠구멍을 통해서 근심이 들어옵니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 무서운 힘을 휘두릅니다. 불안을 자아냅니다. 결코 길동무를 삼고 싶지 않은데도 불쑥불쑥 나타나서 앞길을 막아섭니다. 다루기가 참 까다롭습니다.
2012년 한 해가 아쉬움과 감사가 교차하는 가운데 저물어갑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마지막 한 달을 열심히 살았지만 인간만사는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디 하나를 딱 잘라서 정리할 수 없고 미완(未完)의 상태에서 새해를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일이야 마무리가 되지 않았어도 희망차게 새해로 이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길을 가로막는 어려움들은 마음 한 켠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습니다. 그것이 곧 열쇠 구멍 사이로 들어온 근심거리가 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근심 상자를 하나씩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 해가 가기 전에 마음 속에 있는 근심거리, 해결되지 않아서 속을 태우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서 근심 상자에 차곡차곡 담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상자가 꽤 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근심걱정을 달고 살기 때문입니다. 근심 상자의 뚜껑을 꼭 닫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를 무척 사랑하셔서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근심상자를 얼른 받으실 겁니다. 예수님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똑 같은 삶을 사셨기에 우리들이 겪는 염려와 근심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남겨두신 제자들을 향해서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쇠구멍으로 들어올 만큼 교활하고 변화무쌍한 근심이라도 예수님 앞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꼭 붙잡는 믿음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우리들 각자의 근심 상자를 예수님께 넘겨드리고 힘차게 새해를 맞이합시다. (2012년 12월 28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