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나름

예전에 인디애나에서 목회할 때, 여름이 되면 교인들과 근처에 있는 유적지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습니다. 미국의 중서부는 한 두 시간만 운전해서 나가면 허허벌판에 옥수수 밭이 펼쳐질 뿐 딱히 기념할 만한 유적지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유적지 탐사를 담당하는 자매가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하고 여기저기 알아본 덕택에 유명한 곳은 물론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들을 방문하는 뜻 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디애나를 비롯한 중서부에는 헛간처럼 지붕을 덮은 다리(covered bridge)가 곳곳에 있습니다. 그 해 여름에는 근처에 있는 오래된 다리 세 군데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도시락을 싸서 교인들과 함께 다리구경을 떠납니다. 첫 번째 다리에 도착했는데 모두들 실망한 눈치입니다. 자동차 하나가 다닐만한 다리에 지붕이 씌어 있는 것이 다입니다.길이도 짧아서 걸어서5분이면 건너갈 수 있습니다. 남은 두 다리는 근사할 것이라고 내심 기대하면서 다같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다음 번 다리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두 다리들도 허름하니 페인트도 벗겨져 있고 볼품이 없습니다.유적지 탐사를 주선한 자매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결국 근처 공원에 가서 점심을 먹는 시간이 훨씬 즐거웠습니다.

문제는 그날 저녁입니다. 유적지 탐사가 끝나면 교회 홈페이지에 소감문을 게시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리 세 개를 보고 온 날은 아무것도 쓸 것이 없는 것입니다. 헛간처럼 지붕을 얹어놓은 다리가 유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다리에서 찍은 성도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흐뭇해 집니다. 초라한 다리였지만 함께 갔던 성도들은 서로서로 이어져서 한 마음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다리는 끊어진 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리가 없으면 길은 중간에 끊어집니다. 우리 교인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길 기도했습니다. 왜

다리에 지붕이 있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중서부에는 여름에 갑자기 소낙비가 내립니다. 다리에 헛간 같은 지붕을 만들어 놓아서 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길가는 나그네들이 잠시 비를 피하면서 오순도순 얘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리가 건설되던 1800년대에는 말을 타고 여행을 했습니다. 말들이 하천을 만나면 밑을 내려다보면서 겁을 먹곤 했기에 지붕을 만들어서 말들이 안심하고 건너게 했답니다. 다리에는 유리창을 만들어 놓아서 요즘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처럼 뒤에 오는 마차들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리를 건너던 연인들은 지붕으로 덮인 다리에서 잠시 사랑을 나누곤 해서 “입맞춤 다리(kissing bridge)”라고 불렀다니 왠지 가슴이 설렜습니다.

볼품없는 다리였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사연을 찾아내서 돌아보니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종종 거창하고 자랑할만한 것들을 쫓아 다닐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면 시시하다면서 지나치곤 합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면 소중한 것으로 변합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도 그냥 지나치면 지루하고 실망스럽지만 그 속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 하루 하루가 은혜요 축복입니다. 한 집에 사는 가족들이 세상에서 최고로 위대한 분들입니다. 만나면 티격태격 다투고 어디 새로운 인연이 없을까 두리번거리지만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이웃들이 가장 귀한 분들입니다. 인생의 참 뜻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장 평범한 일들 속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구약성경의 시편 기자는 매일같이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에는 해가 상하지 않도록 밤에는 달이 해치 않도록 자신을 보호해 주신다고 고백했습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기적이었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 수 있음이 감사였습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시편3:5).

하나님 백성인 우리들에게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도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인도해주신 결과이기에 감사할 뿐입니다.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인생길 여기저기에 축복이 숨겨져 있습니다. 만사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꼭 맞습니다. 하찮은 것도 쉽게 넘기지 말고,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주님께서 숨겨놓으신 보물들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이 ‘싫증’이 아니라 ‘감탄’이 되는 행복한 인생길을 걷기 원합니다. (2014년 3월27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