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우리 가족이 미국에 왔을 때 아이들 사이에서 “포켓몬”이라는 게임이 한창 유행했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이었던 두 아이는 학교에서 오면 포켓몬 카드를 갖고 놀았습니다. 게임 뿐만 아니라 만화영화는 물론 아이들 옷이나 문방구에 온통 포켓몬 캐릭터들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포켓몬은 닌텐도라는 게임회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 다양한 상품을 일컫는 말입니다. 실제로는 “포켓 몬스터”의 약자로 “주머니 속의 괴물”이란 뜻입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 괴물들을 훈련시키는 트레이너가 되어서 몬스터 볼로 불리는 가상의 상자에 괴물들을 데리고 다닐 수 있고 키울 수도 있습니다. 피카츄라는 십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쥐 형상의 캐릭터가 가장 유명합니다. 캐릭터들이 자라고 진화하면서 아이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게임입니다.
최근에 포켓몬 열풍이 우리가 사는 샌프란시스코를 필두로 다시 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게임과 현실을 혼합시킨 증강현실(AR)에 “포켓몬 고(go)”라는 신종 게임을 장착시켰습니다. 미국에서만 하루 사용자가 3천만 명에 육박하고, 전 세계에 포켓몬고 돌풍이 불고 있습니다. 거리에서도 휴대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가로수에 부딪히거나 도로로 뛰어들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범죄에 사용된다는 끔찍한 소식도 있습니다.
요즘 세대를 따라잡고 싶어서 저도 휴대폰에 포켓몬고 게임을 설치해보았습니다. 설치를 끝내자마자 우리 집 거실 텔레비전 앞에 포켓몬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괴물이라고 부르기에는 매우 귀여운 모습입니다. 우리 집에 포켓몬이 사는 것 같아서 놀랍고 또 신기했습니다. 포켓몬 볼을 던져서 잡으니 또 한 마리가 책꽂이에 나타납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두 마리 모두 잡았더니 2단계로 진입했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이번에는 집 밖으로 나가보았습니다. 웬걸 남의 집 안에 포켓몬이 있습니다. 도서관에도 나타나고 이러 저리 동네를 헤매고 다니게 생겼습니다. 저의 포켓몬고 체험은 거기까지 였습니다. 자칫 목사가 게임에 빠져서 예배시간에도 포켓몬이 눈앞에서 왔다갔다 한다면 큰일 날 일입니다. 얼른 게임을 지웠습니다.
포켓몬고 게임 뒤에 붙은 “고(go)”를 보면서 “걷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할락크>가 생각났습니다. 히브리어 할락크에는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멈춰 있지 않고 발을 떼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모리아 땅으로 길을 떠날 때도 할락크라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길을 떠난 것입니다.
히브리어 할락크에는 길 위를 걷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길 위를 걷는 것은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여정, 즉 여행길입니다. 인생길을 걷는 것도 할락크입니다. 우리 모두 길을 걷는 나그네입니다. 존 번연의 소설 천로역정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걸어가는 순례자들입니다. 그것도 할랄크라는 동사로 표현되는 길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신앙의 길을 걷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것도 할락크입니다. 유대교에서는 그들이 지켜야할 율법을 할락크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형을 써서 <할락카>라고 부릅니다. 율법은 발로 걸어가면서 지켜야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말씀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 할락크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은 멈춰있는 명사나, 화려한 형용사가 아니라 움직이는 동사입니다. 교회에 모이는 것을 넘어서 복음을 들고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그리고 거리로 흩어지는 것이 할락크 즉 걸어가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날을 <할락크> 걸어갑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고 포켓몬 (주머니 속의 괴물)을 찾아서 걷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진리를 향해서 걷습니다. 생명 길을 걷습니다. 우리가 걷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인생길 고비고비에서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예수님도 만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우리 주 예수님과 함께 걷고 또 걷기 원합니다. (2016년 7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