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 가족은 맥도날드에 가서 더블 치즈버거를 즐겨 먹었습니다. 유학생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니 더블 치즈버거를 시켜서 여덟 개의 치즈버거를 아이들 중심으로 네 식구가 배불리 나눠 먹었습니다. 지금도 맥도날드를 보면 그때 기억이 되살아나고 가끔 들려서 치즈버거를 시켜 먹곤 합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온 후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인앤아웃 햄버거에 매료되었습니다. 매장이 집 가까이 있어서 여차하면 인앤아웃 치즈버거를 시켜서 집으로 가져옵니다. 아이들에게 배운 대로 토스트와 양파를 추가로 살짝 구워 달라고 자신 있게 주문할 정도입니다.
인앤아웃의 반열에 들지 못해도 그 다음으로 자주 찾는 곳은 써브웨이입니다. 써브웨이는 인앤아웃과 달리 긴 샌드위치 하나만 시켜도 아내와 넉넉히 나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샌드위치 안에 들어갈 갖가지 내용물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채소까지 많아서 왠지 건강식처럼 느껴집니다.
지난 두 주 동안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신앙과 생활의 조화입니다. 신앙만 좋다고 거룩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거룩함을 떠올리면 위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나 신앙 행위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은 아래를 향합니다. 야고보서에서 알려주듯이 어려움 가운데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돕는 것이 참된 신앙이고 거룩입니다. 교회에서의 예배와 헌신을 통해서 거룩함이 시작된다면, 삶의 현장에서 거룩이 실천되고 완성됩니다. 거룩에 삶이 동반되지 않으면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처럼 위선적인 신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얼마 전에 먹었던 써브웨이 샌드위치가 생각났습니다. 샌드위치를 주문하려면 먼저 샌드위치를 감싸줄 빵을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대개 윗트(wheat) 브레드를 즐겨 먹습니다. 진열대를 쭉 지나가면서 샌드위치 안에 들어갈 내용물을 고릅니다. 미식가가 아니어서 무엇을 선택해도 맛있지만, 채소 위주로 내용물을 채웁니다. 그러면 상냥한 직원이 눈인사를 하고는 밀로 만든 빵에 제가 선택한 내용물을 모두 넣고 돌돌 말아서 건네줍니다.
그러고 보니 내용물을 감싸주는 빵이 매우 중요합니다. 빵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선택했어도 담을 수 없고 모두 흘러내려서 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빵이 내용물을 꼭 잡아 줍니다. 샌드위치를 감싸는 빵을 신앙으로 본다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을 붙잡아 주고 지탱하는 기둥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처음과 끝입니다.
빵 안에 들어갈 내용물도 중요합니다. 겉을 감싸는 빵만 있고 내용물이 하나도 없다면 샌드위치로서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행여나 내용물이 부실하다면, 샌드위치를 먹는 내내 아쉬움이 찾아오고 본전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샌드위치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샌드위치를 시킬 때,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내용물을 선택하듯이 삶의 모습 자체가 샌드위치 내용물만큼이나 다채롭고 가지각색입니다. 그것을 선택하고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신앙과 더불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그만큼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처럼 신앙이 세상 속에서 각자의 삶으로 알차게 채워진다면 말 그대로 신앙과 생활의 일치 즉 거룩함의 길을 걷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서 예배합니다. 공동체 예배는 다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각자의 삶을 하나님 말씀으로 재정비하는 시간입니다. 주유소와 같아서 영적인 기름을 가득 채우는 시간입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다음 주일에 다시 모일 때까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힘차게 살아갑니다. 주일이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잡아주는 빵이라면, 6일간의 삶은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거룩함은 일상 속에서 채워지고 완성됩니다. 말투와 행동이 신사적이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매사에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임해야 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정도가 된다면 최고의 신앙입니다. 거룩함이 신앙과 삶의 통합인 것을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습니다.(2017년 6월 22일SF한국일보 종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