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110번째 맞는
UN이 정한 여성의 날입니다.
지금은 여성의 인권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110년 전 여성의 날을 제정할 때는
여성의 노동 착취는 물론 투표권도 보장되지 않을 때입니다.
그동안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편견과 불이익,
미투(Me too)운동에서 보듯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
학창시절 햄릿을 배울 때,
교수님은 한 문단을 외워서 쓰는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대부분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문단을 택했습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햄릿에 유명한 구절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가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과 차별하기 위해서 그즈음을 외워볼까 생각했지만,
그것은 햄릿이
아버지가 죽은 지 두 달 만에
숙부의 품에 안긴 자기 어머니를 두고 한 말이기에 얼른 포기했습니다.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 햄릿이 세상에 끼친 영향이 꽤 큽니다.
마치 모든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처럼 “약하다”는 편견을 심어주었다면
여성의 날을 맞아서 셰익스피어도 사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습니다.
중요한 사안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3.
성경은 하나님께서 여자와 남자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창세기 1장에서 선포합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하나님의 사랑도 “여성(레헴)”으로 설명하고,
잠언의 지혜도 여성명사이고,
심지어 히브리어의 성령도 여성명사입니다.
사사 시대에는 여성 사사 드보라가 있었고,
예수님도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요셉의 역할은 없지요)
열두제자들이 모두 예수님 곁을 떠났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현장과 무덤에 향료를 갖고 갔던 사람도 여성입니다.
종종 바울 서신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 등을 갖고
여성의 지위에 제동을 거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 본문을 문맥을 따라 자세히 읽고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서 올바로 해석해야 합니다.
4.
미국에 와서 구약 성경의 <아가서>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교수님은 아가서에서 한 문단을 정해서
자기 사무실에 와서 암송하라고 했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피부 색깔이 검은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이 남녀의 사랑만큼
친밀하고 은밀해야 함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때 저는 술람미 여인을 향한 솔로몬의 고백을 암송했습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아가서 2:10-12)
여성의 날 110주년을 맞아서
그동안 여성들 위에 드리웠던 겨울이 지나고 비도 그치고
꽃피는 봄날이 오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똑같이 봄날이 찾아오길 원하면서
오늘 새벽에 읽은 하박국 3장 19절 말씀을 나눕니다.
이 말씀에 등장하는 “사슴” 역시 여성명사입니다.
하나님은 여성들을 편애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3:19)
GOD, the Lord, is my strength; he makes my feet like the deer’s;
he makes me tread on my high places.(Habbakuk 3:19)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 8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