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수요예배에서는
창세기를 1년 가까이 읽고 있습니다.
어제 46장까지 읽었으니 앞으로 한 달이면 창세기를 마칩니다.
창세기 요셉에 대한 말씀은
1) 창세기 전체에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극심한 가뭄에도 요셉을 미리 이집트로 보내셔서
아브라함 후손의 생존을 보호하셨음을 알려줍니다.
2) 이어지는 출애굽기와 연결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 가서 살게 된 경위를 알려줍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에 관한 말씀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잇는 다리입니다.
3) 요셉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제국 이집트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가능성을 제시하고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확신시켜 줍니다.
2.
그동안 주일예배에서 살펴보았던
탕자의 비유는 집을 나갔던 아들을 아버지가 맞아주는 말씀이었는데,
요셉에 관한 말씀은 가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는 아버지와 가족을
요셉(아들)이 맞아주었습니다.
하지만,
탕자의 비유와 요셉의 말씀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것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모두 없앤 둘째 아들을 용서했고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에 팔아먹은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아버지는
빈털터리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안아주고, 입을 맞추며 울었습니다.
요셉은
먹을 것이 없어서 양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안고 입을 맞추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초청으로 이집트에 온 아버지 야곱을 만났을 때
요셉은 아버지와 목을 어긋 맞추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허랑방탕 모든 재산을 없앤 실패자 둘째 아들이나
이집트에 팔려와서 소위 성공한 요셉이나
아버지 품에 안겨서 울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 품이 그렇게 좋습니다.
잘못해서 돌아온 탕자나
최고의 인생을 사는 요셉이나 똑같이 아버지 품이 필요했습니다.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한없이 울 수 있다면 행복한 아들입니다.
3.
우리도 살면서
아버지 품에 안겨서 한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긴장을 풀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흐느껴 울고 싶을 때입니다.
우리 예배가 그러길 바랍니다.
참빛 식구들의 골방 기도 시간도 아버지 품이길 원합니다.
아니, 설거지하든지 쉼을 갖든지 일을 하든지
아버지 품에 안겨있는 “그 순간”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느끼는 귀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맛보아 아는 신비롭고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편 34:8-9)
Oh,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Blessed is the man who takes refuge in him!
Oh, fear the LORD, you his saints,
for those who fear him have no lack! (Psalms 34:8-9, ESV)
하나님 아버지
주를 찾는 참빛 식구들을
꼭 만나 주시고 안아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9.10.17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