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1.
인류가 큰 역병을 거치고 나면
세상을 지배하는 사상과 종교, 가치관이 바뀌곤 했습니다.
중세 시대 페스트가 지나간 자리에
신(神)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신본주의 사상이 뒷전에 밀리고
인간이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인본주의가 태동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에는
기후 위기까지 겹치면서
예측불허의 어지러운 세상이 찾아왔습니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고, 100년 만에 지진이 나고
극한의 더위 또는 한파가 발생합니다.
우선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
분노와 불만이 사람들 마음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에 버금가는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가 이어집니다.
“불안”이라는 두 글자가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를 차지한 느낌입니다.
2.
한국에서는
학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와 괴롭힘에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말은 그만두고
학생은 물론 학부모도 선생님을 향한 예의가 각별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 다녔던 시골 국민(초등)학교에는
농사일 중간에 학교를 찾아오신 어머니들께서 “선상님”하고 부르면서
자기 자식들을 부탁하시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선생님들의 학생 폭력이 도가 지나친 적이 많았습니다.
일제와 군사 독재의 잔재인 것처럼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심하게 구타하고 인격을 모독했었습니다.
그래도 스승과 제자의 예의범절은 깍듯했는데,
요즘 한국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은
갈피를 잡기 힘들 정도로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책임을 지려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쉬쉬”하면서 덮기에 급급합니다.
3.
언젠가 “내 탓입니다”는 표어가 유행해서
자동차 범퍼에 달고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선 내 탓이라고 말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자는 캠페인이었습니다.
남의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손수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고,
책임감을 갖고 세상을 이끄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자기편을 챙기는 것을 넘어서,
공공선(公共善common good)을 추구하는 어른들도 보고 싶습니다.
교회가 앞장서면 어떨까요?
예수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신앙, 기복적인 신앙,
방어하기에 급급한 자기중심의 편협한 신앙을 극복하고
세상을 품을 정도의 관대함, 어지러운 세상을 살리는 책임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나를 넘어서는 공적인 신앙이 꼭 필요한 요즘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지금도 각박한 세상에서 간신히 살아가시는 분들을
주님께서 꼭 붙들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도 함께 울고,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마5:13)
하나님,
신실한 주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3. 9. 1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