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 자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주일에는 <돌보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연속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와 같은 약한 자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공부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을 무조건 돌보십니다.

약자의 편에 서십니다.

약자를 보시면 하나님의 측은지심(惻隱之心 )이 발동합니다.

 

2.

마태복음 25장은

마지막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관한 비유입니다.

전반부 달란트 비유는

맡겨 주신 달란트를 갖고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께 받을 칭찬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했기에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받습니다.

 

후반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오른편(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 도와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면, 왼편(염소)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돕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기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것이

내게 것이니라 (마 25:40)”

 

3.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우리가 예수님이고

어려운 이웃은 우리가 도울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비유 속에서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놀라운 반전입니다.

 

4.

주일 말씀에도 언급했듯이

이 지점에서 고민이 생깁니다.

 

과연 우리의 도움이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돕는다고 해서 이들이 변화되거나 세상이 좋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섞인 고민입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돕는 심정으로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은 커다란 전제입니다. 달리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대입해서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하면 됩니다.

지속적이지 않고 한번만 도울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만 도울 수도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예수님”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그때는 꼭 도와야 합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5.

거리의 노숙자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같은

절대적 약자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는 도움이 필요한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이 언제나 있습니다.

우리가 도와야 할 예수님입니다.

 

힘껏 도웁시다.

 

너희가 여기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것이

내게 것이니라 (마태 25:40)

 

 

하나님,

도움을 주는 인생,

돕는 손과 발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8. 8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