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입니다.

재선에 실패했다가 다시 당선된

두 번째 징검다리 대통령입니다.

 

하여튼, 그의 이력과 성품이 보여주듯이

미국 역사에 없던 독특한 대통령임이 틀림없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측근들을 정부 주요 부서의 장관과 기관장에 앉히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파격적인 인사라고 우려 섞인 보도를 내놓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합니다.

 

엊그제는

미국에 있는 불법체류자(서류 미비자)들을 추방하는데

주 방위군을 동원할 것이라는 의중도 내비쳤습니다.

실제로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인사를 책임자로 내정했답니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정부에서도

불법 체류자는 물론 이민자에 대한 규제가 심했습니다.

영주권을 신청하신 분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시민권을 신청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어나는 일도 생겼습니다.

 

비슷한 일이 재발한다면,

미국 땅에 나그네로 살아가는 분들께는

혹독한 겨울이 찾아올 것 같습니다.

아슬아슬합니다.

 

2.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체하러

단골 정비소를 찾았더니 손님이 무척 많았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겠다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갑자기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부품값이 올해만 세 배가 올랐다고 푸념합니다.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 뽑힌 대통령이

물가를 꼭 잡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옆에 있던 여직원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거들었습니다.

 

단골 정비소 주인의 소원이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3.

어떤 비영리 단체에서 교회로 이-메일보냈습니다.

체류 신분을 갖추지 못한 채 미국에 거주하는

청년들의 추방을 유예하는 프로그램(DACA)이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폐지되지 않도록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기도 제목입니다.

체류신분을 갖추지 못하면 합법적 신분증이 없어서

심지어 비행기를 탈 수 없습니다.

받아주는 대학교만 가야 하고, 취업도 어렵습니다.

 

그나마 DACA(서류미비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으로

체류 신분을 연장해 가면서 미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그나마 취소된다면 살길이 막힙니다.

그들의 심정으로 기도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4.

지난 토요일 아침 기도회에서 시편 72편을 읽었습니다.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의 통치 덕목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공의로 다스리고

무엇보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손해를 입지 않도록

공평하게 재판하고 통치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때 산들까지 기뻐하고 풍성한 비를 내려 주시고

바르게 살려는 의인이 형통케 되는

샬롬(평화)이 임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사랑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 백성들의 소박한 꿈이 이뤄지고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기 원하는 청년들의 간절한 소원이 이뤄지길 기도합니다.

 

‘아슬아슬’이 ‘휴-안심’으로 바뀌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시편 72:5)

 

하나님,

이 땅의 약한 자들이

꿈과 소망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11. 21 이-메일 목회 서신)

데살로니가전서 1장 (3)

믿음의 역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으로 인사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감사의 글을 써 내려갑니다. 바울에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감사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께 항상 그리고 끊임없이 감사했습니다(1:2;2:13).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 한없이 기뻐서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습니다(3:10). 핍박을 피해서 아테네에 머물고 있는 바울에게 궁핍과 어려움이 몰아쳤습니다. 그때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 위로와 힘이 임했습니다(3:7).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에게 소망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자랑스러운 면류관이 될 것이라고 고백할 정도입니다(2:19).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을 세 가지 덕목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 믿음과 소망 사랑은 사도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신앙의 세 가지 덕목입니다(살전5:8; 롬5:2-5; 고전113:13; 갈5:5-6;엡4:2-5; 갈1:4-5). 히브리서와 베드로전서에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등장하니, 우리의 신앙을 바치는 기둥임이 틀림없습니다(히10:22-24; 벧전1:21-22).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세 가지 신앙의 덕목이 현저하게 나타났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은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인간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주도하셨습니다. 믿음을 더해 주셨고 그 결과 사랑과 소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개인의 신앙이 굳건해졌고 멋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4절).

 

오늘 우리가 살펴볼 덕목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 믿음을 성령께서 확증해 주십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교회 중간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 사람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도 바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전해준 복음을 받고 “큰 확신”(5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각처에 소문날 정도였습니다. 말로만 하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에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에는 행함이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핍박과 환난을 견뎠습니다. 삶이 변했습니다. 믿음으로 서로 사랑했고, 믿음으로 소망을 갖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믿음 안에서 신실했습니다.

 

“믿음의 역사(the works of faith)”- 우리도 믿음이 신앙과 삶을 통제하도록 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행함으로 나타나길 기대합니다. -河-

데살로니가전서 (2)

은혜와 평강 (2)

대부분 바울 서신의 서두에 “은혜와 평강”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도 예외가 아닙니다:“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1절). 데살로니가전서와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갈라디아서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1:3)고 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바울이나 기독교인들만 사용하던 용어가 아니라 당시 편지를 쓸 때 자주 사용하는 관용표현이었습니다. 대신, 로마나 그리스의 신들이 은혜를 베풀어준다고 생각했고, 평강은 로마의 평화(“팍스 로마나”)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 황제가 주는 평화였습니다. 로마라는 세상 제국이 주는 은혜와 평강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바울은 은혜와 평강의 근원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았습니다. 세상이 주는 은혜와 평강과 구분한 것입니다.

 

은혜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족함이 없고 영원한 선물입니다. 자격이나 조건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말 그대로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킨다고 했습니다. 은혜에 깃든 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은혜에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가운데 으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은혜(카리스)가 헬라어 개념에 가깝다면, 오늘 배울 평강(에이레네)은 샬롬이라는 히브리어와 연결되는 구약의 개념입니다. 히브리어 샬롬은 범위가 무척 넓습니다. 개인적인 평안, 형통,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모두 포괄합니다. 동시에 가족은 물론 국가 공동체에 임하는 평화를 가리킵니다. 갈등이나 다툼없이 하나 된 상태입니다. 이처럼 히브리어 샬롬은 모든 상황 개인의 마음과 몸까지 완벽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모습이 곧 샬롬입니다.

 

바울이 평안으로 인사할 때는 “관계의 회복”이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담을 쌓고 살 때 마음의 갈등과 미움이 가득 찼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했을 때, 우리 존재 깊은 곳에 자리 잡았던 문제들이 해결되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로마 시대 당시의 평화는 제국의 힘을 키워서 전쟁에서 이기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힘을 통한 평화였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 행복함,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삶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입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14:27)이라고 하셨듯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평안입니다.-河-

데살로니가전서 (1)

은혜와 평강 (1)

 

매년 하반기에는 신약성경 가운데 한 책(冊)이나 장(章)을 선택해서 공부했습니다. 올해는 지난 8월에 아침마다 함께 읽었던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차근차근 공부할 예정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는 사도 바울이 당시 마케도니아 지방의 수도에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갈라디아서와 함께 신약성경 가운데 초기(주전 50년 무렵)에 쓰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선교를 마치고 로마 제국이 만든 하이웨이를 따라서 데살로니가에 도착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 국제 무역이 성행했습니다. 그곳에는 유대인들의 회당도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3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7:1-10).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메시아)가 바울이 전하는 나사렛 예수임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사야 53장을 비롯한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고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온 세상의 구주가 되셨다고 전파했습니다. 바울의 전도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력한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의 시기가 시작되었고, 바울과 예수님을 믿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배들을 사주해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바울 일행(데살로니가 전서 서두에 등장하는 실라와 디모데)은 몸을 피했지만, 예수님을 믿게 된 야손과 형제들을 잡아서 데살로니가를 다스리는 총독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는 로마 제국에서 일정한 자유를 누리는 자치 도시였습니다. 세상을 뒤흔드는(upside down)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로마 황제 대신에 예수님을 주(主)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결국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지만, 바울은 밤중에 피신해서 남쪽의 베뢰아로 떠나야 했습니다. 나중에 베뢰아에 바울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내려와서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바울은 남쪽 아가야 지방 아테네로 몸을 피합니다.

 

이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어려움 속에서 세운 교회였습니다. 1년 반 동안 머물렀던 고린도나 3년을 머물던 에베소에 비하면 짧은 기간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 복음의 씨앗이 확고하게 심어졌고, 그것이 매우 멋진 교회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바울은 편지의 서두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극찬합니다. 손색이 없는 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함께 공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은혜와 능력을 깊이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든든하게 서게 하소서”라는 올해 우리 교회 표어에 맞춰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자랑스러운 신앙 공동체의 모습을 배우고 우리도 멋진 교회를 세우기를 원합니다. -河-

 

감사

좋은 아침입니다.

 

1.

1998년에 미국에 왔고

그동안 한국을 방문했지만,

가을에 한국을 찾은 것은 26년 만에 처음입니다.

 

올여름 한국이 무척 더웠다고 하는데

추석이 지나고 10월이 가까워지니 많이 선선해졌답니다.

그래도 한낮에는 무척 덥고 습합니다.

 

이번 한국 방문은

저희를 지원한 재단의 안식년 취지에 맞게

친지를 만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보다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을 여행하면서 쉼을 가질 계획입니다.

 

시간이 있으면 재정이 부족하고,

재정이 충분하면 시간이 부족하다는데

올해 우리 부부에게는 시간과 재정이 동시에 주어진 셈입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2.

9월 한 달 동안

<햇볕 같은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시편의 감사시 네 편을 공부했습니다.

 

봄에 공부한 탄식시에서는 탄식이 기도로 표출되었다면

감사시에서는 감사가 찬양으로 이어졌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지만,

어려움이 닥쳐야 무릎을 꿇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지만,

좋은 일이 생길 때 감사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입니다.

 

그렇게라도 기도하고 감사할 수 있음이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3.

성경 공부에서는

세상의 감사와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감사를 비교했습니다.

 

세상의 감사는 잘될 때 감사합니다. 행복할 때 감사합니다.

감사가 ‘자기중심’입니다.

나 혼자 좋은 것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범사에 감사합니다.

감사 한가운데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보다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찾습니다.

형제자매와 더불어 감사합니다.

 

감사를 말로 표현하고, 잔치를 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감사의 끝에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있음을

시편 감사시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세상의 감사에는 자랑이 섞여 있습니다.

우리 감사의 특징은 겸손입니다.

내가 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예배이기에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4.

올 한 해도 4분의 1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봅시다.

그 답이 하나님 앞에서의 감사이길 원합니다.

 

우리 삶 이곳저곳에 흩뿌려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원합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편100편 2절)

Serve the Lord with gladness!

Come into his presence with singing (Ps 110:2)

 

 

하나님,

모든 일에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4. 9. 26 이-메일 목회 서신)

믿음은 (5)

지난 다섯 주에 걸쳐서 우리의 믿음을 다시 돌아봤습니다. “든든히 서게 하소서”라는 올해 표어에 맞춰서 나눈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믿음을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놓고 공부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매주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따라서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확실하기를 바랍니다.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우리 신앙의 뿌리요 터전입니다.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믿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는 믿음은 은혜이고 선물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믿음이 좋으면 교만해질 수 있고 행여나 믿음이 부족하면 자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 같아도 결국 돌아보면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믿음은 신비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믿을 수 없습니다. 신비로움이라는 여백(room)을 남기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갖는 겸손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백에서 일하실 가능성이 큽니다. 믿음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신비로움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또한, 믿음은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말 그대로 능력과 힘, 장애물을 뛰어넘는 위력, 일을 끝까지 해내는 끈기와 성취력을 경험합니다. 이처럼 믿음이 실제로 우리 삶에 효력이 있음을 배웠습니다.

 

세 번째 시간에는 믿음은 다림줄이라고 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파편처럼 흩어진 신앙과 삶을 하나님께서 내리신 다림줄 아래로 모으기로 결심했습니다.

 

네 번째 시간에는 믿음을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독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는다는 말씀도 기억합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도 세상에 복이 되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고인 물이 아니라 365일 흐르는 생수와 같은 믿음을 갖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동행입니다. 창세기의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에녹과 함께 하셨고, 에녹도 하나님 편에 서서 걸었습니다. 하나님과 에녹의 마음과 생각이 같았습니다. 좋은 일만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힘들고 외롭고 절망 가운데 있었을 때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때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에녹의 목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십니다.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복을 누린 것입니다. 에녹은 그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했습니다. 우리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더불어 믿음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신앙과 인생의 여정을 힘차게 걸어갑시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