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예배자(7): 이삭/ 창세기 26장 1-25절
Author: 참빛
성경 속 예배자 (7)
이삭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자녀입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났습니다. 이삭의 탄생은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첫 약속이 현실이 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삭은 평범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구김살 없이 컸습니다. 이집트 출신 하갈에게 태어난 이복형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장면도 나옵니다. “웃음”이라는 그의 이름을 갖고 조롱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아들 이삭도 모리아 산에서 경험한 여호와 이례 하나님은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을 것입니다. 이삭이 제사에 쓸 장작을 지고 가는 것으로 보아서 그의 나이는 10대 어간이었을 것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해서 제물로 드릴 때, 이삭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했습니다. 힘이 없는 노인 아브라함이 청소년 이삭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제물로 바쳐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이삭도 정말 대단합니다.
“포기”와 “기대”를 통해서 믿음이 도약한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삭은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아브라함의 말 대로 하나님께서 양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잃기 바로 직전에 살아난 이삭은 평생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모리아 산의 사건이 아브라함 믿음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면, 이삭에게는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엄청난 경험을 하면서 믿음의 길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이삭의 인생은 예전에 설교했던 제목 그대로 “웃음 가득한 인생”이었습니다. 아내 리브가 얻는 과정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타지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들 야곱에 비하면 평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창세기에서 이삭에 대한 본문은 비교적 짧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은 창세기에 한 번 나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흉년이 들어서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그랄이라는 곳에 정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두 번째 속인 곳인데, 이삭도 똑같이 그랄에서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랄에서 이삭에게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떠나달라는 그랄 왕의 요청으로 그랄 골짜기로 이주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합니다. 우물을 파면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훼방을 놓았습니다. 그때마다 이삭은 다툼보다 양보를 택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머물던 브엘세바에 정착하고, 우물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河-
두려움과 떨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는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 뿐인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인신제사를 금지하는 성경 전체의 흐름,
오늘날의 상식과 윤리로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명령입니다.
그런데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두말없이 길을 떠났습니다.
아들을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멈추시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제물로 드릴 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이레(예비하시는 하나님)”가 나왔습니다.
2.
키에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 Fear and Trembling>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기사(knight of faith)”로 부르면서,
그의 믿음은 보편적인 윤리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상식이나 도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개별자”의 결단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교훈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매우 고유한 사명입니다.
이를 보편화하여 모든 신앙인에게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도
쉽게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을 근거로 하나님을 시험하시는 분으로 규정하면,
신앙이 “두려움과 떨림”에 매일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잘못 형성될 가능성도 큽니다.
이처럼 키에르케고르는 이 사건을
하나님의 일반적인 방식으로 확대하기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특별한 믿음의 사건으로
신중하게 이해할 것을 제안합니다.
3.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까요?
첫째, 이 말씀을 서둘러 결론 내리지 말고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야 합니다.
모리아 산을 향하는 두렵고 떨렸을 여정,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이삭을 묶고(아케다, 결박)
칼을 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성경 본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두렵고 떨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아브라함 믿음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시험을 일반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시는 분이 아닙니다.
설령, 우리에게 시험과 시련을 주셔도
아브라함에서 보듯이 분명한 목적을 이루십니다.
셋째, 믿음의 힘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상식과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를 경험하게 합니다.
신비의 세계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던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을 이루기 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한 걸음 더 뛰어오르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하나님,
온전한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3 26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3월 4주 말씀
성경 속 예배자 (6): 아브라함/ 창세기 22장 1-19절
성경 속 예배자 (6)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다섯 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가나안 땅에 도착한 세겜에서, 벧엘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가뭄을 피하려고 이집트에 내려갔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회개와 새로운 삶을 위한 결단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네 번째는 조카 롯과 결별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걸어보고 헤브론에 정착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창세기 15장에도 아브라함이 제물을 준비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주도하신 예배였기에 이번 성경 속 예배자에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아브라함의 예배는 매우 독특합니다. 아브라함 믿음의 절정에서 드린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하나뿐인 아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셨고, 아브라함은 멋지게 통과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처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고향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라고 하신 것과 비슷합니다. 자세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시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12:2)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 가나안 땅으로 내려올 때도 하나님 약속만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이번에도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곧바로 아들 이삭을 바치기 위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순종, 절대적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공포와 전율, fear and trembling, 1984>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을 자세히 다룹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바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윤리적인 기준을 정지시키고 아들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리아 산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두렵고 떨렸을 것입니다.
케에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전사>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역설입니다.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다시 주실 것도 믿었다고 키에르케고르는 보았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다시 얻었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제물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河-
기쁜 날
좋은 아침입니다.
1.
전쟁이 점점 격화되는 요즘입니다.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주유소의 일반 개스(휘발류)값이
갤런당 5불 후반대를 찍은 곳도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샌프란 기름값이 5불 가까이 올랐습니다.
제가 처음 샌프란에 왔던 2005년보다 두 배나 오른 것입니다.
그때는 도로에 차가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미국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심각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은 반으로 떨어지고,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은퇴 계좌의 주식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기감을 함께 느끼며
함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3-4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경제는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미국의 저력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코비드 팬데믹을 지나며
많은 것이 왜곡되었습니다.
빈부 격차는 K자형으로
사회 전반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전쟁까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간신히 유지되던 세계 평화와 질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물가는 계속 치솟고 있습니다.
K자의 아래쪽에 계신 분들의 어려움은 심각합니다.
그래도 좋은 날은 올 것입니다.
당장은 멍이 들고, 심한 경우 피가 흐르는 상처를 입더라도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질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 힘겹게 살아가게 될까 염려됩니다.
2.
세상이 혼란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몇일,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날”을
계속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기쁜 날 기쁜 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뜬금없어 보일 수 있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를 씻어 주시고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능력이 온 세상에 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구속(redemption), 구원(salvation)의 은혜와 능력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실제로’ 임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정말 기쁜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모두에게 기쁜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15:13)
하나님,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함께 기뻐할 날이
속히 오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3 19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3월 3주 말씀
성경 속 예배자 (5): 아브라함/ 창세기 13장 1-18절
성경 속 예배자 (5)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당시 이름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세겜 땅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12:7)고 약속하신 직후입니다.
세겜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벧엘에 이르렀을 때 두 번째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12:8).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가뭄이 찾아오자 이집트로 피난을 갑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는 실수를 범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이집트 바로에게 보상받은 재산을 갖고 부자가 되어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던 벧엘에 정착합니다. 그곳에서 다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창13:3-4).
이집트에서의 실수를 회개하면서,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정착할 것을 다짐하는 결단의 제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재산이 많아지면서, 두 가정에 불화가 생깁니다. 협소한 곳에 두 가정이 살면서 생긴 다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러서 평화롭게 서로 갈라서기를 제안하였습니다.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줍니다:“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13:9). 가인이 동생 아벨에게 폭력을 사용해서 죽인 것과 대조됩니다. 아브라함은 동생도 아닌 조카 롯을 배려했고 지켜주었습니다.
가뭄을 겪었던 롯은 눈을 들어서 둘러 본 다음에 물이 넉넉한 요단 지역을 선택합니다. 그곳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지경을 넘어서는 곳인데, 당장 먹고살 것이 풍족한 곳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롯은 죄악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까지 이르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멸망할 때, 롯은 두 딸과 함께 간신히 살아남아서 모압과 암몬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조카 롯에게 땅을 양보한 아브라함은 가나안 지역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사방을 둘러보고,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다녀보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후손에게 영원히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이 있는 헤브론 지역으로 이주해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河-
쓴 나물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한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지만,
냄새를 맡는 후각과 맛을 보는 미각은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숍에 가득한
커피 향기를 좋아합니다.
한국에서는 한의원 약재 냄새도 좋아했습니다.ㅎㅎ
제가 좋아하는 냄새와 맛 가운데 하나가
‘쓴맛’입니다.
쓴맛이 나는 베이비 아루굴라(arugula)를 아주 좋아합니다.
신기하게도 먹고 나면 뒷맛이 깔끔합니다.
한번은 아마존에서
민들레 뿌리를 말린 차를 발견했습니다.
유기농(organic) 루마니아 산이라고 했습니다.
민들레 뿌리의 쓴맛이 우러난 차라니,
‘유레카’를 외치며 서둘러 주문했습니다.
배달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봉지를 뜯어 차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쓴맛을 기대했건만, 그냥 풀 맛입니다.
나뭇가지를 말려 놓은 맛입니다.
알고 보니
반품도 되지 않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래도 억울해서 아마존에 항의했더니
그냥 갖고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라면서
전부 환불해 주었습니다.
2.
성경에도
“쓴(bitter)” 것과 관련된 구절이 등장합니다.
잘못하여 받는 벌을
성경은 종종 “쓴 쑥”에 비유합니다.
고통스러운 형벌을 뜻합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에게 자신을 “마라(쓴, 고통)”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금의환향이 아니라, 쓴맛을 보고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는 유월절에
양을 잡은 고기와 함께 “쓴 나물”을 먹었습니다.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고생하던 때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3.
솔직히, 쓴맛을 즐기는 제 개인적인 취향이
특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쓴맛에는
단맛이 주지 못하는 특별한 풍미가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달콤한 인생을 기대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쓴맛을 보았던 순간들입니다.
유월절에 쓴 나물을 먹게 하신 것은
고통스러웠던 때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
그리고 지금의 삶에 감사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나온 ‘쓴 나물’의 시간을 기억할 때
현재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정말 힘들었던 때를 떠올리면
지금의 삶에 더욱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출애굽기 12:8)
하나님,
쓴 나물 속에 깃든 은혜를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3 12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3월 2주 말씀
성경 속 예배자 (4): 노아/ 창세기 8장 20-22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