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해설 (15):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마태복음 13장 44-46절
Author: 참빛
찬송가 해설 (15)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요즘 금과 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답니다. 전쟁 등 세상이 불안하니 안전 자산인 금과 은을 사 모으고, 거기에 왠지 귀금속을 갖고 있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포모(FOMO)까지 더해진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금이나 은이 실제 산업에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경우 대부분 희소성의 가치 때문에 금을 사 모읍니다. 온 세상이 금과 은으로 이뤄져 있고,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황금을 돌처럼 볼 텐데 말입니다.
연속 설교 중간에 찬송가에 깃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오늘 살펴볼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의 영어 가사 첫 구절은 “나는 은과 금보다 차라리 예수님을 선택하겠습니다”입니다. 너도나도 갖고 싶어 하는 금과 은보다 예수님이 더욱 귀하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예수님께서 천국을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모든 재산을 팔아 밭을 삽니다. 재산을 팔아서 밭을 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비아냥거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밭에 숨겨진 보화를 보았습니다. 천국에 예수님을 대입하면 오늘 우리가 배우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네”라는 찬송가 가사가 됩니다.
요즘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너무 좋은 것이 많습니다. 금과 은과 같은 보화들도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 가운데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면, 모든 것을 팔아서 밭을 산 사람처럼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찬송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두었던 밀러(Miller, 1894-1966)부인이 작사한 찬송입니다. 밀러 부인은 돈만 생기면 술을 사먹는 아버지가 하나님께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기도가 응답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아버지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로 시작하는 간증을 하였고, 앞에 앉아 있던 밀러 부인은 아버지의 간증을 정리해서 찬송시로 만들었습니다.
밀러 부인의 찬송시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찬양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아버지가 담임하는 교회에서 찬양으로 섬기던 조지 셰이(George Shea,1909-2013)는 그의 어머니가 손 글씨로 써 놓은 밀러 부인의 시를 발견하고 즉석에서 곡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 없네”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河-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
좋은 아침입니다.
1.
AI가 이끌어가는 세상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마주하면서
깜짝 놀라면서도 솔직히 두렵습니다.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편리한 것도 많습니다.
Chatgpt같은 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서
한 번도 불평하지 않는 훌륭한 조력자(비서)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10년여
권사님이 하시던 예배 통역을
지난 연말부터 애플 에어팟으로 바꿨습니다.
누구나 에어팟이 제공하는 언어로 들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 강림에서
제자들의 말을 각자의 언어로 들은 것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과학 이론이나 기계의 원리를 잘 모르는
저에게는 모든 것이 신비의 세계일 뿐입니다.
2.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커다란 아나콘다에 온몸이 칭칭 감긴 아기 코끼리가
뛰어가다가 결국 넘어지는 유튜브 쇼트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표범이 달려와서 아나콘다를 제압하고
코끼리는 달아났습니다.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알았는데,
표범의 생김새나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가짜였습니다.
깜짝 같이 속을 뻔했습니다.
분별해 내기가 어려울 정도의
진짜 같은 가짜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보이스 피싱은 물론
우리 생활 전반에 가짜가 침투해서
감쪽같이 속는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서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개인의 영역을 떠나서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가짜가 활동해서
세상을 교란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인간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인류에 재앙이 닥치는
공상 과학 영화에 나왔던 일들이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과학 문명이 올바른 길로 발전할 수 있는
기준, 규범, 때로는 제재가 필요해 보입니다.
3.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될수록
진리(眞理)를 설파하는 종교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생각, 마음, 하신 일을 따를 때,
길을 잃고, 거짓에 휩싸이고, 죽음의 세력에 지배되는
세상을 지키고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리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매우 큽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진리 가운데 붙들어 주시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언 3:3)
하나님,
진리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2 5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2월 1주 말씀
요나서의 반전 (호서대 안근조 교수): 요나서 3장 3-5절
우리 교회는…
오늘은 그동안 교회를 섬기며 수고해 주신 은퇴 권사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 교회는 집사나 권사라는 직위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직책 때문에 더 대우하거나, 직책이 없다고 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를 섬기기 위한 역할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지난 수년 동안 권사님으로 교회를 섬겨 주신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원로 권사님으로 무엇보다 기도로 교회를 더 많이 섬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무쪼록 영육 간에 강건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세 분의 집사님을 새로 세웁니다. 입교(등록) 후 2년이 지나면 신천집사로, 다른 교회에서 집사로 섬기셨다면 1년 후 이명 집사로 임명합니다. 집사가 되기 위한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집사님으로 해야 할 의무도 특별히 강조하지 않습니다. 다만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힘닿는 대로 교회를 섬겨 주시길 부탁드릴 뿐입니다. 올해 임명되신 세 분 집사님을 통해 우리 교회가 더욱 근사하게 세워 지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교회는 은혜로 여기까지 왔지만, 팬데믹 이후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작은 교회가 더욱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럴수록 교회를 섬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귀합니다. 함께 교회를 세워 가시는 임원들이 계시고, 참빛 식구들이 계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교회의 사역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고, 사역의 조건과 환경도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과거에 머물러 있기보다,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고 필요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무리한 교회 사역이나 활동은 자제하겠습니다. 자원하는 손길이 있을 때,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겠습니다. 자칫, 교회가 조용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우리 교회의 특징이 된다면, ‘일상을 사는 교회’로 근사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교회에 시간과 에너지를 과도하게 쏟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일에 함께 교제하면서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하나님 사랑이라면, 성도의 교제는 이웃 사랑입니다. 주일마다 우리 안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온전히 실천되기를 바랍니다. 그 힘으로 천국과 같은 가정을 세우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물론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섬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행사와 활동을 자제해도 기본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이 있습니다. 각자의 은사대로 교회를 섬기지만, 그 섬김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보람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한마음과 한뜻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멋진 교회를 세워갑시다.-河-
여백
좋은 아침입니다.
1.
나이가 들다 보니 옛날 일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설교 시간에 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중학교 때 아주 무서운 미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외모는 물론 말투까지 무서웠습니다.
잘못 보이면 체벌도 가하셨습니다.
미술 시간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겁을 먹고 잔뜩 긴장했습니다.
숨을 죽인 채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시키시는 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동양화 국전에
응모하실 정도의 실력자셨습니다.
하루는 수묵화 난초를 그리게 하셨습니다.
대충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난초 하나하나 순서대로 그려야 했습니다.
숨을 죽이고 난초 몇 가닥을 그리고 났더니,
선생님께서 갑자기 크게 웃으시면서,
난초 그림에는 “여백”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어리둥절했고,
화를 내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2.
무서우셨던 미술 선생님이 생각나서
사군자 난초 그림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지금 보니 시골 아이들에게
사군자 기초를 정확히 연습시키셨습니다.
난초 줄기가 5개 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큰 화선지가 모두 여백입니다.
저희는 난초를 그리는 데 온 정신을 쏟았지만,
선생님은 우리가 그린 그림 속에서
여백을 먼저 보셨던 것입니다.
미술 선생님처럼 우리 조상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종이를 가득 채우기보다 ‘여백’을 남겨 놓았습니다.
수양버들처럼 멋있게 그린 난초도 중요하지만,
난초보다 훨씬 넓은 여백을 보고 즐긴 것입니다.
3.
어느덧 1월이 모두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도 새해 첫 달이 지나간 것처럼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 삶은 더 빠르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누가 당기는 것 같고
뒤에서는 누군가 밀고 있는 느낌으로
쫓기듯이 살아갑니다.
많은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쉬면 안 될 것 같은 압박 속에서의 쉴 틈 없는 삶입니다.
‘여백’을 말하는 것이 사치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새해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여백’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립니다.
난초 다섯 줄기가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다섯 개여서 더 넓어진 여백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2026년의 한 달이 지나갔을 뿐입니다.
남겨진 여백을 이용해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삶 속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여백도 남겨 놓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삶은 물론 신앙의 여백을 즐깁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하나님,
여백이 있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1. 29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1월 4주 말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4): 사도행전 10장 1-2절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4)
올해 표어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는 익숙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하나님 사랑이 없는 이웃 사랑은 박애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 사랑이 첫째가는 계명이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이해됩니다.
지난주에 배웠듯이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웃 사랑이 하나님 사랑을 증명하고 완성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비해서 이웃 사랑을 생각하면 부담이 밀려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경건의 실천들입니다. 왠지 거룩해 보입니다. 기도와 말씀 읽기, 예배 참석과 같은 하나님 사랑은 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만, 이웃 사랑은 상대가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넘어서는 행함입니다. 그러니 부담감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파견된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고넬료가 ‘경건’하였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었던 유대교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할례받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구별해서, 유대교에 입문한 이방인들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God-fearer)’라고 불렀습니다. 로마 신들과 황제를 섬겼던 고넬료가 이스라엘에 파견 나와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만 잘 믿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였습니다. 로마 군대의 장교라면 식민지에 있는 백성들을 압제하고 다스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자기가 다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춥고 배고팠습니다. 힘겹게 살았습니다. 지난주에 함께 살펴본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마저 힘겹게 사는 백성들을 무시하고 그들을 이용하였는데,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백성들을 도왔습니다. 구약 성경의 이웃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으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온전히 실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각각 환상을 보여주셔서, 공식적으로 예수님을 믿은 첫 번째 이방인이 되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고넬료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한 것에 감동을 받습니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합시다.-河-
분별력
좋은 아침입니다.
1.
1980년대 미국에 이민 와서
정착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미나리>(2020년)는
초기 이민 선배들의 강인한 삶을 잔잔히 소개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 부모님의 직업이
병아리 감별사입니다.
병아리가 부화되자마자
수컷과 암컷을 구분해 내는 일로,
이 분야에는 우리나라가 탁월하답니다.
매우 세밀하고 빠른 판단이 요구되는 직업인데,
한국인 특유의 꼼꼼함과 신속함을 따라올
병아리 감별사가 세계에 없는 셈입니다.
알을 낳는 암컷 병아리만 남기고
수컷 병아리를 감별해서 제거한다는 점에서
동물학대 논란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영화에 나오듯이
1980년대 이민오신 분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지금도 비교적 높은 소득이 보장된답니다.
2.
갓 부화한 병아리의 암수를 구별해 내는 일은
손끝의 섬세한 감각과 순간적인 판단이 필수입니다.
병아리를 감별하는 일만큼은 아니지만,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무엇이 옳은 지 분별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흐려졌습니다.
자기 생각은 옳고 남의 생각은 틀리다는 식입니다.
내 편은 옳고 남의 편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객관적인 기준은 사라지고
각자의 이익과 관심에 맞춰서 판단합니다.
세상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유튜브에 보면 설교들이 넘쳐나고,
같은 성경 본문을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교회 강단에서 전하는 설교는 나은 편입니다.
신앙이나 성경 해석을 다룬 유튜브들을 보면,
마치 자신만이 옳다는 듯한 제목을 내걸었습니다.
알고리즘으로 독자의 관심에 맞춰서
자동적으로 영상을 배열을 해주기에,
자칫 잘못된 것을 계속 듣고 보면서
그릇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일 위험성도 큽니다.
3.
이제는 더욱 세심한 분별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옳은 정보와 잘못된 정보,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구별(감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내용도
세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자신이 이해하고 해석한 것을
‘성경적’이라는 말로 포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도 세상의 정보는 물론,
신앙에 관련된 수많은 정보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입니다.
헷갈려서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이민 선배들이
병아리의 암컷과 수컷으로 세심하게 감별했듯이,
수많은 정보 가운데
올바른 정보를 감별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빌1:10)
하나님,
분별의 지혜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1. 22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1월 3주 말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3): 요한일서 4장 20-21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