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2)

로마 제국의 수도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로마 제국이 정복하는 곳마다 평화가 이뤄진다고 해서 <로마의 평화, Pax Romana>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로마 황제는 신의 경지에 올랐고, 모든 사람이 황제를 “주(主)”로 부르며 섬겼습니다. 세상의 문명이 최고 절정에 이르렀으니, 로마 제국의 백성이 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곳에 로마가 황제가 아닌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무래도 메시아에 대한 정보를 알고 구약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이 우선 개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이방인들도 교회에 많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유대인들의 선민의식 때문에 교회가 어지러울 때가 있었기에, 교회의 주축은 이방인 가운데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족들도 로마 교회에 있었습니다. 로마서 마지막 16장에 보면 이처럼 바울의 지인들이 많이 있었기에 로마를 방문해서 교제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길이 열리지 않자, 로마에서 가장 가까운 고린도에서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리스 철학은 물론 세상 학문과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던 로마입니다. 예수님을 믿었지만, 세상의 유혹이 거셌고, 복음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 제국 한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고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복음을 자세히 알려주어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을 갖게 하길 원했습니다. 로마서 1장 16-17절은 로마서의 서론이면서 로마서 전체의 주제 구절입니다:”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왜 필요한지 1장 18절-3장20절까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망가졌습니다. 스스로 회복할 능력도 상실했습니다. 외부의 도움이 아니면, 절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외부에서 세상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이시기에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언한 구세주, 메시아가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河-

배움

좋은 아침입니다.

 

1.

5월은

미국 대학들의 졸업 시즌입니다.

 

방송에서는 유명인들이 어느 대학에서

졸업 연설을 했는지가 소개되고

훌륭한 연설은 두고두고 회자됩니다.

 

2년 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눈길을 끄는 분이 계셨습니다.

 

당시 105세의 나이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으신

버지니아 히스롭(Virginia Hislop)여사입니다.

 

히스롭 여사는

1936년에 스탠퍼드 교육학과에 입학했고

1940년에는 교육 대학원에 진학해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논문만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교육자 집안 출신이던 히스롭 여사도

학업을 마친 뒤

교육자로 살아가길 꿈꾸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1941년,

남자 친구가2차 세계 대전 중 군대에 소집되면서

갑작스럽게 결혼하느라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히스롭 여사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이 그랬듯이

자신의 커리어를 쫓기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지역 교육은 물론 교육 관련 법을 고치는 데 동참하면서

평생 교육을 향한 열정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손자가 스탠퍼드 대학에 할머니의 상황을 알렸고

혹시 졸업이 가능한지 문의한 것입니다.

 

히스롭 여사가 공부할 때는

교육 대학원 졸업을 위해서 논문이 필요했는데,

현재는 논문이 필수 요건에서 제외되면서

1940년대 이수한 학점이 인정되었습니다.

 

그렇게 히스롭 여사는

2024년,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83년 만에 받은 학위였습니다.

 

히스롭 여사는

생각지도 못한 학위를 받게 되었다고 감격했습니다.

졸업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105세에 석사 학위를 받으셨으니 말입니다.

 

2.

요즘은 너도나도 “100세 시대”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 동네 샌프란시스코 노인회에

100세가 넘으신 어르신이 몇 분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의학이 더 발달하고,

건강 관리에 힘을 쏟으면

100세 시대가 활짝 열릴 가능성도 큽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사느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105세에 그것도 83년 만에

석사 졸업장을 받으신 히스롭 여사가

더욱 대단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오늘 하루도

감사함으로, 그리고 의미 있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인생길 굽이굽이 마다

깜짝 놀랄 선물과 기쁨을 준비해 두시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16:31)

 

하나님,

특별히 우리 교회 권사님들을 축복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5. 21이-메일 목회 서신)

그리스도의 복음 (1)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해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그리스도교(기독교) 가운데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시작한 개신교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개인의 신앙이나 교회의 사역 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도 기독교회도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끔찍하게 사랑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거역해서 에덴에서 쫓겨난 후에도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그들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시도하셨지만, 열방의 빛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이 선민의식에 빠지면서 하나님께 실망만 안겨드렸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3년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신 말씀, 치유와 기적, 사랑으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백성이 되는 장치를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한없이 망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과 사람의 양심에 하나님의 흔적과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안에 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율법을 주셨는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겉치레로 여겼습니다. 율법을 갖고 자신을 돌아보는 데 적용하지 않고, 남을 판단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던 유대인이 망가질 정도이니, 다른 민족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율법 대신에 양심의 법을 갖고 있지만, 양심을 동원해서 선한 길을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자신을 높이는 자만심에 빠져서 양심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죄의 길로 갔습니다:“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1-12).

 

우리가 앞으로 공부할 로마서 본문(롬3;21-32) 앞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이고 세상의 모습입니다. 모두 치우쳐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河-

극복

좋은 아침입니다.

 

1.

은행에 갔는데 창구에

앞을 보지 못하는 축구선수이자 코치

안토니 크레이그(Antonie Craig)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데 축구를 한다는 것이 신기해서

은행 직원에게 물어보니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안토니 크레이그는 시각장애인 미국 대표팀 선수였고,

시각장애인 청소년 축구팀 코치였습니다.

장애인 단거리 육상선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유전성 망막 질환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다가

2010년에는 거의 앞을 못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육상팀에 도전해 메달을 땄고,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습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무슨 일이든 도전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이미 그것을 해낸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멘토로 삼아 도전하라고 말했습니다.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2.

세상에는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우리에게 힘과 희망을 주시는 분들입니다.

 

시각장애인 축구 경기가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기에 검색해 보았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장애인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었습니다.

 

2024년 프랑스 올림픽에서는

프랑스가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

축구공 안에는 방울이 들어 있습니다.

선수들은 상대에게 다가가며

“내가 간다”는 뜻의 스페인어“보이(Voy)”를 외칩니다.

경기 중에는 관중들도 조용해야 합니다.

선수들이 공 소리와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경기를 보니

선수들은 일반 선수들 못지않게

멋지게 공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요?

존경스러웠습니다.

 

3.

생각해 보면

우리도 저마다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문제,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도

문득 그 문제와 마주하면

좌절과 절망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 순간, 눈을 돌려보면

이미 그것을 극복한 분들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데 공을 찰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절대 주저앉거나 물러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 짐이라 (고후12:9)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2Cor 12:9)

 

하나님,

극복할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5. 14이-메일 목회 서신)

찬송가 해설 (16)

주 안에 있는 나에게(370장)

 

오늘은 한국식으로 어버이 주일(Mother’s Day)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버이 주일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하는 <어머님 마음>을 칠십이 넘으신 권사님들께 불러 드립니다. 우리를 기르시느라 수고하시고 희생하신 어머님의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말없이 묵묵히 우리 뒤에서 큰 힘이 되신 아버지의 은혜도 잊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보내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들은 물론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찬송 가운데 하나가 <주 안에 있는 나에게>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1절)로 시작하는 가사가 좋습니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로 끝나는 후렴은 신바람이 나는 가사와 곡조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작사한 엘리자 휴잇(Eliza Hewitt, 1851-1920)여사는 동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선생님이 됩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자기를 야단쳤다는 것에 앙심을 품고 무거운 합판(슬레이트)으로 휴잇 여사의 허리를 내리쳤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6개월 동안 허리에 깁스를 하고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았습니다.

 

휴잇 여사는 길고 긴 회복과 재활기간 동안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회복한 후에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회에서 주일학교를 가르쳤고, 주일학교 교사를 평생의 천직으로 여겼습니다. 평생 척추 장애인으로 살았던 휴잇 여사가 남긴 작품이 우리 찬송가에 여섯 곡이나 실렸습니다.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지난주에 불렀던 453장 < 예수 더 알기 원하네>,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는 우리 교회에서도 자주 부르는 찬송입니다.

 

휴잇 여사는 역시 어린 나이에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으로 8천곡 이상의 찬송가를 작사한 크로스비(Fanny Crosby) 여사와 친하게 교제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크로스비 여사가 지은 13곡의  찬송이 들어있습니다. 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에 관한 해설에서 크로스비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동병상련의 두 분은 서로 섬기는 교회를 방문할 정도로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를 작곡한 윌리엄 커크패트릭(William Kirkpatrick, 1838-1921)은 수많은 찬송가를 작곡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필라델피아로 이민을 왔습니다. 목수로 일했지만,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복음성가와 찬송가를 만드는 작곡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그가 작사 작곡한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를 비롯해서 14곡의 찬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河-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1.

히브리어 <샬롬 shalom>을

우리말로 “평화(peace)”라고 번역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넓고 깊습니다.

 

샬롬은,

개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 관계, 생각, 하는 일 등

삶 전체가 부족함 없이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세상)에

완전한 평화, 질서, 형통이 임해서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 샬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하늘을 향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개인의 삶과 세상 속에서 성취된 상태가 샬롬입니다.

 

성경의 <샬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샬롬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갈 때

하나님의 선물, 샬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교회의 역사에서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분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세상의 이치를

자연법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자연법을 준수할 때

구약의 샬롬과 같은 온전한 질서와 조화를

누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연법(Natural Law)”이라는 용어 그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깃든 질서입니다.

자연, 세상, 인간의 양심과 이성에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을

설정해 놓으셨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모든 인류가 자연의 질서와 조화,

양심과 상식을 따르면 될 일입니다.

 

3.

요즘 세상이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구약의 사사시대처럼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또는 우리 편만’ 옳은 것입니다.

 

샬롬이 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주셨는데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주범입니다: 소유욕, 권력욕, 명예욕.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행복할 수 있는

질서(자연법), 자원, 능력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것을 지키고 누리면 되는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샬롬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세상에 영원한 샬롬이 임했건만,

예수님을 향한 믿음도 힘을 쓰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새 날을 맞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우리 마음은 물론 세상에 “샬롬”이 임하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시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장애물이 없으리로다 (시편 119:165)

Great peace have those who love your law;

nothing can make them stumble. (Ps 119:165)

 

하나님,

어지러운 세상에 주님의 샬롬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5. 7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