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기도

Happy New Year!!!

 

1.

말띠 해인 병오년(丙午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성경에서 “말(horse)”이 종종 등장합니다.

힘이 있는 동물로 묘사됩니다.

말이 끄는 전차가 대표적입니다.

구약 성경 스가랴에 나오는 네 가지 색깔의 말들은

요한 계시록에 그대로 등장하는데

세상을 정찰하고 심판하는 군대입니다.

 

‘말을 의지하지 말라’는 시편 말씀도 있습니다.

기마부대가 있는 이집트를 비롯한 제국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권면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과 시합해서 이길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갖출 것을 요청했습니다: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렘12:5)

 

올 한 해

하나님 안에서 말과 경주할 수 있는

믿음과 힘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지난 주일,

예수님의 손과 발 마지막 연속 설교에서

예수님의 가상칠언(架上七言)을 소개했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능한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렇게 정리한 예수님의 가상칠언은

신기하게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속옷을 제비 뽑아 나누는 군병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자기를 해치는 군병들을 위한 기도이기에 더욱 고귀합니다.

이처럼 가상칠언 첫 번째는 <용서의 기도>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에서 예수님은

자기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依託)하십니다:

아버지,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인간의 몸을 입고 33년 동안, 세상에 사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드리신 마지막

그러나 가장 고요하고 고귀한 ‘맡김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 평안(peace)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께 갈 때, 예수님처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는

<맡김의 기도>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3.

2026년 한 해를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기도를 실천하면서2026년을 살아갑시다.

 

미움, 분노, 원망, 복수하려는 마음 등을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용서의 기도’).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맡김의 기도’)

예수님의 손을 꼭 붙잡고 한 해를 살기 원합니다.

 

용서하고 맡기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행복할 것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우리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시작합시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22)

 

주님

2026년을 주님께 맡깁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1. 1 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님의 손과 발 (6)

릴리 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안식월 여행을 다녀온 지 일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감사가 나옵니다. 초행길인 유럽 여행 40일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마친 것은 하나님의 돌봄과 교회의 기도 덕분이었습니다. 저나 아내나 건강한 편이 아닌데, 영국 런던에서 이태리 로마까지 큰 여행 가방 두 개를 들고 배낭을 메고 기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중간에 감기에 걸린 적은 있어도 저의 어지럼증이나 아내의 갑작스러운 기운 빠짐없이 여행을 끝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계획한 여행을 거의 모두 실행했습니다. 재단에 지원서를 신청할 때부터 계획했던 여정입니다. 선발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에, 마음으로 가고 싶은 곳을 쭉- 열거했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에 가지 못했지만, 하고 싶었던 빽빽한 여정을 모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 인생 여행이 된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유럽 여행을 마치고 런던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모든 것이 잘 끝났습니다”라는 감사의 마음만 남았습니다. 후회 없는 여정이었습니다. 하고 싶고 일을 다 했고, 가고 싶은 곳도 모두 방문했습니다. 기간이 더 길었어도 지칠 뻔했습니다. 저희에게는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앞으로 가는 목회와 인생 여정이 지난 유럽 여행 같기를 기도했습니다. 목회의 길을 마무리할 때도 “모든 것이 잘 끝났습니다”고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로 “다 끝났습니다”고 고백하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저희에게 유럽 여행은 매우 훌륭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그동안 두 달여 함께 살펴보았던 예수님의 생각(“생명”), 마음(“긍휼”), 손과 발(“평화”)에 관한 말씀을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연말과 맞물려서 예수님과 손과 발에 관한 말씀을 서두른 감이 있지만, 앞으로도 예수님에 관한 말씀은 계속 나누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 마지막 시간인 오늘,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두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신 채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을 결박해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본을 보이셨고, 옆에 매달린 강도를 구원하셨으며,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어진 죽음의 순간까지 내려가셔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후회가 없으신, 아쉬움도 없으신 완벽한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마땅합니다. 한 해의 삶을 마무리하면서 “다 이루었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새해를 맞이합시다. -河-

평화의 왕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은 어둠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무너지고 6백 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70년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페르시아, 헬라, 로마에 이르기까지 식민지로 살았습니다. 중간에 마카비 가문이 독립전쟁에 승리해서 80여 년 동안 하스모니아 왕조를 세웠지만, 그때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권력다툼이 계속 되었고, 세상은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스모니안 왕조가 로마에 무너지면서, 이두매(에돔) 사람 헤롯이 로마의 지지 속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었습니다. 헤롯 대왕과 그의 자식들은 로마에 아부하면서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세리들을 세워서 지나친 세금을 징수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 역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가운데 율법을 갖고 서로 다투고, 백성들을 정죄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메시아가 올 것을 예언했지만, 성경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설마’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권력에 취해서 메시아가 오는 것을 반기지 않은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에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시므온과 안나라는 노인과 여자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어디나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신실한 주님의 백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어둡고 거친 세대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던 백성들에게는 희망을 주었고, 메시아를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셨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일한 왕이 되고 싶었던 헤롯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어둡고 힘겨운 세상에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보고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던 학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읽은 누가복음에서는 천사들이 내려와서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메시아 예수님의 탄생을 알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구주로 오셨음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수많은 천사들이 들에 있던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찬양합니다:“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오랜 구원이 성취되는 순간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어지럽습니다. 지구상에는 전쟁에 휩싸인 나라와 민족, 부족이 많습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河-

궂은 일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두 주 동안 주말마다

비행기를 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비행기가 3시간 이상 지연되고

엔진 고장으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안전하게 다녀왔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해서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행기에 승객들의 짐을 싣고,

비행 정비와 안내하는 사람들입니다.

시애틀 공항에는 주말마다 비가 내렸는데

빗속에서 그 궂은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좌석이 뒤쪽에 있어서

차례를 기다려서 내리다 보면,

앞쪽 승객이 앉았던 곳을

청소하는 분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서

승객들이 남긴 쓰레기를 모으고

좌석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계셨습니다.

 

2.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K자형 모습을 띠고 있답니다.

 

위쪽에 있는 계층은 어려움을 모릅니다.

모든 것이 풍요롭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반면, K자의 아래에 계신 분들은

예전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우선,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미국에서 체류 신분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렵게 하루하루 살아내야 합니다.

 

K자의 위쪽 가지보다

아래쪽 가지에 속한 분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자기 의견을 말하지도 못하고 속으로 삭히면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어쩌면, 공항에서 궂은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

하루 벌어서 하루 살아가는

소위 아래에 속한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3.

궂은일을 하시는 분들이

우리 사회에 없다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예상도 못 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분들이야말로

말없이 세상을 바치고 있는 분들입니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분들의 귀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도 한 해를 살면서,

궂은일을 도맡아서 한 적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때로는 직장에서도 말없이 궂은일을 담당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빛이 나지도 않고 칭찬받을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은 참빛 식구들께

칭찬과 찬사를 보냅니다.

 

더불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궂은 일에 종사하고 계신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예수님도 3년 공생애를 사시면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궂은일을 하셨습니다.

섬김의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인자가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하나님,

궂은 일을 하면서

섬김의 자리에 지키신 참빛 식구들을 축복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2. 18이-메일 목회 서신)

예수님의 손과 발 (5)

지난번 안식년 여행에서 이스라엘을 방문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전쟁이 아니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33년을 인간의 몸으로 사셨던 이스라엘을 방문해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서 걷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오랫동안 사역하셨던 갈릴리에 일주일 정도 머물면서 예수님을 깊이 느끼고 싶었는데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갈릴리뿐 아니라 예루살렘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임이 틀림없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길을 따라서 걸으면 큰 감동과 은혜가 임할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에는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불리는 길이 있습니다. 라틴어 “비아”는 길이라는 뜻이고, “돌로로사”는 슬픔, 고난이라는 뜻이니 “고통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르신 십자가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재현하였습니다. 14개의 지점을 정해서 순례객들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묵상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 받으신 장소부터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장소까지 600미터에 이르는 길입니다. 18세기 이후에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점에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교회들이 세워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비아 돌로레사>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확정한 곳, 2) 군병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채찍으로 때린 후에 십자가를 지게 한 곳, 3) 십자기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께서 처음 쓰러지신 곳, 4)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5)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기 시작한 곳, 6)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피와 땀으로 얼룩진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곳, 7) 예수님께서 두 번째 쓰러진 곳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골고다 언덕 입구로 알려집니다. 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만나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던 곳입니다(눅 23:26-28). 9) 예수님께서 다시 한번 쓰러지신 장소입니다. 나머지 다섯 장소는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골고다와 예수님의 무덤에 세워진 “성묘 교회”안에 있습니다. 10)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옷을 벗긴 곳, 11)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눕히고 손과 발에 못을 박은 장소, 12)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 13)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던 곳, 마지막14)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당시 실제 무덤의 모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비록 예루살렘에 있는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아도, 일상의 삶에서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서 걸어가길 원합니다.-河-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여정(journey)

또는 그냥 ‘길’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한때는 동네를 산책하면서

제 앞에 있는 길들을 사진으로 남긴 적도 있습니다.

매일 보는 길인데 새롭게 보일 때가 있고,

갔던 길을 돌아올 때 새롭게 보이는 감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

예수님과 더불어 걷는 신앙의 길,

우리가 실제로 걷는 길까지

인생은 말 그대로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생로병사, 우여곡절, 희로애락 –

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단어들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니 힘든 것에는 제외되고

좋은 것만 누리는 특혜를 얻고 싶지만,

마음처럼, 기도하는 것처럼 길이 펼쳐지지 않습니다.

 

타락한 이후의 세계,

땀을 흘려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며,

만물이 타락해서 신음하는 세상은 나름의 자연법이 존재합니다.

 

때때로 자연법의 창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기적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여느 기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매번 일어나는 일상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예외입니다.

 

그러니 행여나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자신이 잘못해서 생긴 일로 자책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물론 실수해서 생기는 문제도 있지요.

그것은 얼른 교정하면 되는데,

우리가 길을 걸으면서 닥치는 대부분의 문제와 어려움은

생각보다 복합적입니다. 인생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2.

주일에 ‘예수님의 발’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밟고 걷는 여정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전역을 걸어 다니시면서

기쁨과 평화, 생명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힘든 백성들을 만나시고 만져 주시고 치유와 회복을 선물하셨습니다.

부지런히 걸으셨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루살렘까지 걸어오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오르셨습니다.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3년 공생애를 마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걷습니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요즘은 셀폰 앱이 있어서

우리가 걷는 곳을 다 표시해 줍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걷는 발길이 샬롬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길이길 원합니다.

 

예외 없이 때로는 무작위로 어려움을 겪지만,

그것도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면

억울함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우리만 어려움에서 배제된다면

그야말로 욕심 아닐까요!

 

대신 인생의 희로애락 속에서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모든 길을 걸으면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순간순간 내려 주시는 힘, 지혜, 용기를 갖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진지한 발길입니다. 소중한 발길입니다.

 

남은 올 한 해도 예수님을 따라서

뚜벅뚜벅, 때로는 사뿐사뿐, 꿋꿋하게 걸어갑시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욥23:10)

 

 

하나님,

우리가 가는 길에 빛이 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5. 12. 11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