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 (3): 로마서 12장 14절 – 13장 7절
Author: 참빛
그리스도인의 삶 (3)
로마서 12장과 13장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서 자세히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생각날 정도로 완벽한 말씀입니다. 모두 지키는 것은 버거울 수 있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할 푯대가 어디인지 알려주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1-2절)로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우리 자신의 모습(3-8절), 교회 안에서 성도 간의 관계(9-16절), 세상 속에서 특별히 원수와의 관계(17-21절), 국가와의 관계(13:1-7), 율법의 완성인 이웃 사랑(13:8-10), 마지막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가짐(13:11-14절)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세상으로 확장됩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교훈입니다. 박해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14절).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15절). 이 말씀은 마음을 높은데 두지말고 서로 섬기라는 구절(16절)과 함께 성도간의 관계에도 해당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해야 합니다(17절). 가능하면 모든 사람과 화평해야 합니다.
직접 원수를 갚지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19절).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면서 섬겨야 합니다. 그것은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 것과 같습니다(잠25:21-22).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 것은 원수를 사랑해서 그로 하여금 뉘우치고 바른길로 오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준 모든 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13장 1-7절은 그리스도인과 국가 간의 관계입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나왔다는 말씀이 잘못 사용된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권세”를 영적인 세력으로 보기도 하지만, 문맥상 본문의 권세는 세상의 왕이나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으니, 로마 황제와 관리들일 수 있습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맞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권력보다 위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통치자들은 자기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통치해야 합니다. 선한 것을 격려하고 악한 것을 징벌하는 것이 세상 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 이처럼 세상 권력이 그들을 세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릴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인 세상의 권위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악을 행한다면, 그들에게 복종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와 같은 안하무인의 독재자에게는 복종보다 하나님이 주신 양심으로 저항해야 합니다.-河-
일상 속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부부는
매일같이 동네나
가까운 학교 운동장을 걷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다 보니
매일같이 마주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집 앞에서 정원을 가꾸거나 집안일을 하다가
“굿모닝” 하고 인사를 나누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희가 아주 사교적인 편은 아니어서
발길을 멈추고 안부를 묻거나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저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입니다.
2.
그런데 매일 만나던 분이
며칠 보이지 않으면 왠지 안부가 궁금합니다.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시던 할머니 두 분이 요즘 보이지 않으십니다.
마주치면 아주 반갑게 인사하시던 분들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아주머니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리트리버에게 양말을 신겨 산책하시는 분입니다.
강아지 발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주머니가 깔끔하셔서
강아지가 흙을 밟지 않도록 양말을 신기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매일같이 학교 운동장을
경보하듯 아주 빠르게 걸으시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할머니의 몸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뒤에서 보면 기우뚱기우뚱,
뛰시는 모습이 결코 멋지지 않은데,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뛰시는 할머니를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젊으셨을 때
경보 선수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3.
아침마다 산책하면서 마주치는
이웃들의 일상은 이처럼 제각각입니다.
그분들의 인생 이야기는 더욱 다양하겠지요.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산책하는 모습, 뛰는 모습,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들의 삶을 나름대로 상상해 봅니다.
이왕이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이웃들의 삶을 축복하고,
그 모습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아침 산책길입니다.
그런데,
매일 같은 시간에, 거의 같은 옷을 입고
산책하는 저희 부부를 보면서
다른 이웃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도 궁금합니다.
밝고 좋은 생각을 해 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굿모닝” 인사하며 스쳐 지나가는 이웃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일상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시는 참빛 식구들께도
“좋은 아침”으로 인사드립니다.
멋지게 하루 시작합시다.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애가 3:23)
They are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Lam 3:23)
하나님,
새날 주셔서 고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7. 30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7월 4주 말씀
그리스도인의 삶 (2): 로마서 12장 3-13절
그리스도인의 삶 (2)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의 삶으로 표현됩니다. 은혜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면, 하나님 백성답게 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성화(sanctification), 즉 예수님을 닮아가는 거룩함의 길입니다. 오롯이 우리 힘으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가 걸어가는 성화의 길에 동행하시고 힘을 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성화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정리하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단지 예수님을 믿고 천국행 티켓을 얻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배웠던 “칭의(은혜로, 믿음으로 의롭게 됨)”와 배우고 있는 “성화”를 모두 포함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빌 2:12).
지난주에는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성화의 여정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했을 때, 하나님 사랑에 해당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그리스도인 개인의 예배부터 시작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예배자”가 되는가를 늘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흩어져서 삶으로 예배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들”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공동체, 예수님을 믿은 모든 하나님 백성이 마땅히 드릴 예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배울 말씀은 교회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서로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입니다.
우선,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면서 서로 섬길 것을 교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은사를 각 그리스도인에게 나눠 주십니다. 각자의 은사를 갖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면 됩니다. 서로 경쟁하거나 자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 됩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랑입니다. 성도 간의 교제에서 사랑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이웃 사랑은 성도들 간의 사랑으로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거짓 없는 진실한 사랑이 요청됩니다. 사랑하는 척하거나, 이익이나 인기를 얻기 위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성도 간의 사랑에 악은 없고 선만 존재해야 합니다.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다른 교인들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자세로 성도를 섬깁니다.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고, 환난을 함께 견디고, 기도에 힘쓰면서 구체적으로 성도를 돌보는 것입니다. 은혜로 의롭게 된 하나님 백성은 이처럼 겸손과 사랑으로 교회를 세워갑니다.-河-
들숨과 날숨
좋은 아침입니다.
1.
침묵기도(Centering Prayer)를 배우고
십여 년 동안 실천하면서
복식호흡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습니다.
허리를 펴고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저도 모르게 배로 깊이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주변의 소음은 물론
제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곤 합니다.
그러다가 잡념이 떠오르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면
다시 호흡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깊은 호흡은
제 마음을 다시 하나님께 향하게 합니다.
이처럼
호흡은 기도의 리듬을 되찾아 줍니다.
2.
마음의 근심(anxiety)과 불안은 물론
수면 장애를 완화하는 데에도
올바른 호흡법이 도움이 된답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4-7-8 호흡법입니다.
4초 동안 깊이 숨을 들이쉬고,
7초 동안 멈춘 뒤,
입을 오므리고 “후-“소리를 내면서
8초간 천천히 끝까지 내쉬는 방법입니다.
이 호흡법은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호흡은 들숨과 날숨으로 이뤄집니다.
계속 들이마실 수 없고,
계속 내쉴 수도 없습니다.
들이쉬어야 내쉴 수 있고,
내쉬어야 다시 들이쉴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호흡은 들숨과 날숨의 조화입니다.
3.
우리의 신앙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동안 주일에 살펴본 <그리스도의 복음>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배웠습니다.
지난주부터 시작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신앙과 생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받아들이는 들숨입니다.
그러나 들숨만 계속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교회와 가정, 그리고 세상 속으로
흘려보내는 날숨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신앙과 생활’은 들숨과 날숨처럼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한 쌍(pair)입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신앙의 들숨을 배우고 익혔다면,
이제 〈그리스도인의 삶〉 연속 설교를 통해
은혜의 들숨을 삶의 날숨으로 풀어내길 원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참빛 식구들 모두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롬 12:1)
하나님,
들숨과 날숨을 통해서
날마다 진정한 예수쟁이로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7. 23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7월 3주 말씀
그리스도인의 삶 (1): 로마서 12장 1-2절
그리스도인의 삶 (1)
로마서 3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슨 의미인지 지난 두 달여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롬3:22)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의미로 해석했었습니다.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불리는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교리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우리가 주체가 되고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의롭게 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믿음이 우리의 업적이 되고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헬라어 본문을 “예수님의 신실하심”으로 주어를 바꿔서 해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실하고 완벽하게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의롭게 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구원에 참여하는 열쇠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지,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신실하신 예수님께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할 일은 하나도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의 세계에 들어온 것은 은혜로 값없이 입장했지만, 구원의 세계를 살아가는데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거룩함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공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설교 제목을 지난번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어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붙였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앞에서 공부한 것과 연결하면 “은혜로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구원을 준비해 놓으셨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대신 사시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으로 우리가 살아 가야할 삶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2장 1-2절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11장까지가 의롭게 되는 “칭의”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12장부터는 거룩의 길, 즉 “성화”에 관한 말씀입니다. 교리로 시작한 로마서는 이처럼 성화 즉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의롭게 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의무와 특권이 생겼습니다.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몸’은 우리의 신앙, 인격, 삶, 관계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거룩한 산 제사를 위해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河-
손 흔들어주기
좋은 아침입니다.
1.
씨애틀 큰 아이가 사는 동네에는
‘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가 사십니다.
댄 할아버지는 열 가구 정도 모여 있는
마을 입구 자신의 집 앞 의자에 앉아서,
오가는 모든 차량과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주십니다.
우리 손자가
그분의 집 앞 텃밭에 들어가도 뭐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이며 호박을 따서 건네주십니다.
행여 외부인이 들어오면,
누구보다 댄 할아버지가 먼저 알아차리시니
동네 사람들의 안전까지 책임지고 계신 셈입니다.
2.
노스캐롤라이나 콘코드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네 살 소년 ‘로만(Roman)’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로만의 부모는 1년 전에 결별했습니다.
아빠는 플로리다로 떠나고 엄마와 함께 지냅니다.
로만은 갑작스러운 가정의 변화에 많이 외로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로만은 집 앞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Hi”라고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맞은편에 사는 이웃집 아저씨가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해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둘 사이에 따뜻한 교감이 생겼습니다.
다른 이웃들도 함께 인사를 나누면서
동네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운동을 하고,
생일에는 이웃 어르신들이 찾아와
로만을 안아주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네 살 소년의 작은 손짓이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고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로만의 외로움도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3.
‘작은 것’에서 많은 일이 시작됩니다.
2천 년 전,
100여 명이 살던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사건이 그렇습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마을에
온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가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일이 작게 느껴져서
의미를 잃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비의 날갯짓이 종종 세상을 바꾸듯이,
네 살 소년 로만의 인사가 동네를 바꾸었듯이,
우리의 작은 말과 마음, 몸짓이
세상에 희망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참빛 식구들이 품고 있는 기대입니다.
크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삶 속에서 작은 빛으로 살아가려는 이유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이” 하고 인사를 건네고,
생각나는 친지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 봅시다.
우리의 짧은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이름을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소망이 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9절)
하나님,
누군가에게 빛이되고 희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7. 16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7월 2주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8): 로마서 3장 29-31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