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5): 로마서 14장 1-12절
Author: 참빛
그리스도의 복음 (5)
로마서 12장부터 시작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말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로 12-13장은 예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12:1-2).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고백입니다.
그 다음은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것에 대해서 알려주었습니다(12-3-13). 믿음의 분량대로 받은 은사를 갖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웁니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교훈합니다(12:14-21). 핍박하는 사람들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합니다.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놓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이웃 사랑의 완성입니다. 세상의 권력자와 정부에 대한 교훈도 있었습니다(13:1-7). 선과 악을 심판하고 세상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자들에게 협조하고 시민으로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십계명을 비롯한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13:8-10).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의 빚을 무한대로 늘려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에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됩니다(13:11-14).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모든 답안을 알려주었다면, 우리가 앞으로 공부할 14-15장에서는 로마 교회는 물론 로마 제국 안에 세워진 초대 교회들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당시 교회에는 구약의 율법을 알고 지키는 유대인들과 유대교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개종한 이방인들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제국의 수도라는 성격상 교회에서 이방인들이 다수를 차지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먹거리와 안식일을 비롯한 절기를 지켰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들을 믿음이 약한 자라고 했습니다. 반면, 이방인들은 믿음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았고, 바울은 이들을 믿음이 강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생각과 생활 방식을 두고, 옳고 그름을 가리면서 각자 자기들이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서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끼리 판단하고 분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 안에 있다면, 서로 존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河-
사랑의 빚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주일에 우리는
로마서 13장 8절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세상의 빚은 부담이 되고
절제와 통제가 필요하지만,
사랑의 빚은 무제한입니다.
끝없이 갚아야 하고
때로는 끝없이 빌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평생 갚아도 불가능한 사랑의 빚입니다.
그러니, 사랑을 받으려고 하기보다
예수님께 받은 사람을 갚아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에게 베푸는 이웃 사랑입니다.
2.
여기서 이웃을 향한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인데,
실제로 우리는 이기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가 많습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것은
자녀 자신이 아니라
한때 부모가 꿈꾸던 모습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애(自己愛)를 자녀에게 적용해서
자기가 바라는 자녀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랑의 대상은 자녀가 아니라
아이 안에 비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내 기대를 벗어나는 순간 사랑이 식는다면,
그것은 상대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던 상대, ‘내 그림자’를 사랑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3.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사랑은
프로이트가 말한 것과 다른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도 이유도 없는 ‘불구하고’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롬 5:8).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사랑의 빚도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이어야 합니다.
내 의지나 바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필요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거기서 사랑의 속앓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도 필요합니다.
힘든 만큼 가치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그 사람 안에 비친 나를 사랑하는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해 봅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10)
하나님,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참된 사랑의 빚을 지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8. 13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8월 2주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4): 로마서 13장 8-14장
그리스도의 복음 (4)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된 하나님 백성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지금도 탄식하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온 <아가페>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특별히 임한 사랑입니다.
지난번에 공부한 로마서 12장에서도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데 사랑이 중요함을 배웠습니다:“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12:9-10).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두는 것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실천하는 이웃 사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도 하나님에게서 받은 “아가페”입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교훈하는 로마서 말씀(12-15장)한 가운데 위치한 클라이맥스입니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율법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모든 율법보다 더 귀한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가 전한 말씀의 핵심 메시지라고 하셨습니다 (마 22:37-40).
사도 바울은 십계명의 네 가지 계명을 예로 들면서(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이 모든 계명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함부로 몸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살인하지 않습니다. 남의 물건을 뺏지 않고 탐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런 빚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8절). 구약의 율법에서는 빚지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동족에게 돈을 꾸어 주면, 이자를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종이 될 수 있지만 희년이 되면 풀어주어야 했습니다.
사랑의 빚은 예외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에는 한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한 정부에 세금 납부의 의무가 있듯이(13:7), 서로 사랑하는 것은 의무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빚을 지고, 빚을 갚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로마서 12장부터 이어진 말씀의 결론은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믿음의 분량대로 사랑으로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한 권력에 협조합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어둠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정결함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단정히 행하고, 육신의 일이 아닌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河-
조심조심
좋은 아침입니다.
1.
종종 우리의 삶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도
환경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변수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루하루 주어진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그런데
모든 어려움이 다 외부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실수와 경솔함 때문에
스스로 어려움을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2.
며칠 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올해
이정후 선수와 함께 외야 수비를 책임지기 위해 영입된
헤리슨 베이더 선수 이야기였습니다.
부상으로 재활 중이던 그는
새벽에 술을 마신 뒤 스쿠터를 타다가
소방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대학 시절에도 같은 사고를 낸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이언츠 구단은
베이더의 올해 남은 연봉과 내년 연봉까지,
천만 불이 넘는 금액을 동결했습니다.
계약 해지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베이더의 경솔함이
선수 인생을 흔드는 치명적인 실수로 이어진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작은 부주의가 쌓이면
관계가 멀어지기도 하고,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생각보다 큰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3.
새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앞에는
피할 수 없는 일도 있고,
조심하면 피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요.
조심하면 피할 수 있는 일은
한 번 더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경솔하면 안 됩니다.
매사를
한 번 더 고민하고 살피면서
새달 8월(영어의 August는 ‘늘리다, 성장하다’라는 헬라어에서 옴)을
멋지게 보내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바라보면서 담대하게,
그러나 ‘조심조심’ 지혜롭게 살아갑시다.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잠언 4:26)
하나님,
우리가 가는 길을 지켜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8. 6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8월 1주 말씀
그리스도인의 삶 (3): 로마서 12장 14절 – 13장 7절
그리스도인의 삶 (3)
로마서 12장과 13장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서 자세히 알려줍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생각날 정도로 완벽한 말씀입니다. 모두 지키는 것은 버거울 수 있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할 푯대가 어디인지 알려주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1-2절)로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우리 자신의 모습(3-8절), 교회 안에서 성도 간의 관계(9-16절), 세상 속에서 특별히 원수와의 관계(17-21절), 국가와의 관계(13:1-7), 율법의 완성인 이웃 사랑(13:8-10), 마지막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가짐(13:11-14절)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세상으로 확장됩니다.
오늘 살펴볼 말씀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교훈입니다. 박해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14절).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15절). 이 말씀은 마음을 높은데 두지말고 서로 섬기라는 구절(16절)과 함께 성도간의 관계에도 해당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해야 합니다(17절). 가능하면 모든 사람과 화평해야 합니다.
직접 원수를 갚지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19절).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면서 섬겨야 합니다. 그것은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 것과 같습니다(잠25:21-22).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 것은 원수를 사랑해서 그로 하여금 뉘우치고 바른길로 오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준 모든 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13장 1-7절은 그리스도인과 국가 간의 관계입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 나왔다는 말씀이 잘못 사용된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권세”를 영적인 세력으로 보기도 하지만, 문맥상 본문의 권세는 세상의 왕이나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으니, 로마 황제와 관리들일 수 있습니다.
모든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맞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권력보다 위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통치자들은 자기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통치해야 합니다. 선한 것을 격려하고 악한 것을 징벌하는 것이 세상 정부의 기본 원칙입니다. 이처럼 세상 권력이 그들을 세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릴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인 세상의 권위에 복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악을 행한다면, 그들에게 복종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와 같은 안하무인의 독재자에게는 복종보다 하나님이 주신 양심으로 저항해야 합니다.-河-
일상 속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부부는
매일같이 동네나
가까운 학교 운동장을 걷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다 보니
매일같이 마주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집 앞에서 정원을 가꾸거나 집안일을 하다가
“굿모닝” 하고 인사를 나누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희가 아주 사교적인 편은 아니어서
발길을 멈추고 안부를 묻거나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저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입니다.
2.
그런데 매일 만나던 분이
며칠 보이지 않으면 왠지 안부가 궁금합니다.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시던 할머니 두 분이 요즘 보이지 않으십니다.
마주치면 아주 반갑게 인사하시던 분들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아주머니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리트리버에게 양말을 신겨 산책하시는 분입니다.
강아지 발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주머니가 깔끔하셔서
강아지가 흙을 밟지 않도록 양말을 신기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매일같이 학교 운동장을
경보하듯 아주 빠르게 걸으시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할머니의 몸은 한쪽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뒤에서 보면 기우뚱기우뚱,
뛰시는 모습이 결코 멋지지 않은데,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뛰시는 할머니를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젊으셨을 때
경보 선수셨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3.
아침마다 산책하면서 마주치는
이웃들의 일상은 이처럼 제각각입니다.
그분들의 인생 이야기는 더욱 다양하겠지요.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산책하는 모습, 뛰는 모습,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들의 삶을 나름대로 상상해 봅니다.
이왕이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이웃들의 삶을 축복하고,
그 모습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아침 산책길입니다.
그런데,
매일 같은 시간에, 거의 같은 옷을 입고
산책하는 저희 부부를 보면서
다른 이웃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지도 궁금합니다.
밝고 좋은 생각을 해 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굿모닝” 인사하며 스쳐 지나가는 이웃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일상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시는 참빛 식구들께도
“좋은 아침”으로 인사드립니다.
멋지게 하루 시작합시다.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애가 3:23)
They are new every morning; great is your faithfulness.(Lam 3:23)
하나님,
새날 주셔서 고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7. 30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7월 4주 말씀
그리스도인의 삶 (2): 로마서 12장 3-1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