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예배자 (9)

야곱

 

야곱은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피난 가는 길에 돌베개를 베고 노숙했습니다. 야곱의 인생도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을 야곱에게 주시고, 야곱과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28:15).

 

잠에서 깬 야곱이 돌베개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드린 첫 번째 예배였습니다. 그 밤 이후로 외삼촌 댁으로 향하는 야곱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간직하고 20여 년을 외삼촌 댁에서 지냈을 것입니다. 외삼촌에게 연거푸 속으면서도,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두 명의 부인과 그들의 여종에게서 열두 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을 경험하는 기쁨도 있었을 것입니다.

 

외삼촌 가족과 더불어 살기 어려울 정도로 야곱의 재산과 위치가 커졌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야곱은 외삼촌에게 알리지 않고 가족들을 데리고 길을 떠납니다. 외삼촌이 야곱을 쫓아와서 따져 묻지만, 결국 화해로 마무리됩니다. 그때 야곱이 외삼촌의 일행과 잔치하며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20년 동안 삼촌과 조카 사이에 생겼던 앙금을 풀어내는 용서와 화해의 예배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돌아온 야곱이 세겜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야곱에게서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이웃 부족의 땅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가, 세겜에 살고 있는 추장이 디나를 겁탈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속여서 남자들을 죽입니다(창 34장).

 

사건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 야곱은 잠잠했습니다. 간섭하지 못하는 야곱에게서 자식을 이길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도 보입니다. 무력함에 빠져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야곱이 처음 꿈꾸었던 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은 야곱은 가족들을 불러서 세겜에서 있었던 것들을 모두 청산하고 약속의 땅 벧엘로 올라가자고 제안합니다. 벧엘에 도착한 야곱은 회개와 결단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창 35장).

 

하지만 야곱의 삶은 절대 녹록지 않았습니다. 심부름 보냈던 아들 요셉을 형들이 팔아버리고, 아버지 야곱에게는 짐승에게 물려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의 초청으로 흉년을 피해서 이집트로 내려가는 여정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약속의 땅을 떠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河-

 

달나라 여행

좋은 아침입니다.

 

1.

만우절이던 4월 1일,

인간이 약 50여 년 만에 다시 달 근처까지 접근하는

아르테미스 2호 우주선이 발사되어

열흘 간의 임무를 마치고 지난 10일 지구로 귀환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거리까지 간

유인 우주 비행이었습니다.

우리는 평소 달의 한쪽 면만 볼 수 있는데

이번에는 달의 뒷면을 가까이서 관측하였습니다.

 

달의 궤도를 도는 동안

우주인들이 보내준 지구의 사진은

정말 아름답고 경이로웠습니다.

파란 바다와 육지, 밤과 낮의 대조가 선명했습니다.

 

아르테미스 우주 계획은

50여 년 전 아폴로 프로젝트와 다릅니다.

그때는 달 착륙이 목표였다면,

이번에는 달에 머무를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정입니다.

 

앞으로 인류는 달에 기지를 세우고,

더 나아가 화성 탐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치 영화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인간의 상상력과 탐구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2.

저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고요의 바다”라고 불리는 달 표면에 착륙하는 장면을

TV로 지켜보았습니다.

 

우주복을 입고 둥실둥실 걸으며

달 위를 걷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인간이 달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아폴로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이름이고,

그의 쌍둥이 누이가 달의 여신으로 알려진 아르테미스입니다.

우주인들이 탐승한 우주선 오리온은

비극적으로 끝난 아르테미스의 연인입니다.ㅎㅎ

 

아폴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17명의 우주인들은

모두 백인 남성이었습니다.

이번 아르테미스 2호에는

백인 대장, 흑인 조종사, 캐나다 출신 우주인과

여성 엔지니어가 탑승했습니다.

 

NASA의 계획대로 2028년에

우주 기지 자재를 실은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다면

여성 우주인이 첫발을 내딛을 것 같습니다.

 

3.

아르테미스 2호가 지구로 돌아올 때,

대기권에 진입하는 순간이 매우 위험하답니다.

우주인들은 강한 열과 중력을 견뎌야 합니다.

 

세 개의 낙하산이 펼쳐지고

우주선이 바다 위에 안전하게 착수하는 장면을 보며

저절로 박수가 나왔습니다.

 

저는 이번 달 탐사를 보며

지구와 달의 공전과 자전, 중력과 질서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우주가 신비했습니다.

 

만약 달과 지구의 운행이 들쑥날쑥하다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우주선을 띄우는 것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우주탐사가 가능해졌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합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지금도 운행하시는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합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시편 8:3-4)

 

하나님,

아름답고 신비한 세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4 16 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 속 예배자 (8)

야곱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듯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의 아들 이삭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땅에서 번성할 것이라는 말씀이 실제로 시작된 약속의 자녀입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면서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으니, 이스라엘에 특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처음 도착한 세겜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벧엘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했습니다. 흉년을 피해서 이집트에 갔던 아브라함이 벧엘로 돌아오자마자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조카 롯과 헤어지고 헤브론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고, 마지막으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희생 제물로 드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미리 양을 준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야곱에 비해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았던 이삭은, 성경에 단 한 번 하나님께 예배 드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 속이는 실수를 범했지만, 블레셋 땅 그랄에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삭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 때문에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살았던 브엘세바로 돌아오게 됩니다. 브엘세바는 이삭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찾아오셔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을 재차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때 이삭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거친 인생을 살았습니다. 형 에서에게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형을 피해서 외삼촌 댁으로 피난을 갔는데, 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벧엘에서 드린 예배입니다(창28:18). 빈털터리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의 인생 여정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20여 년을 지내면서 두 명의 아내와 열한 명의 자녀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야곱을 쫓아온 외삼촌과 화해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창31:54). 에서와 화해한 야곱이 세겜에 정착하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창33:20). 딸 디나가 세겜에서 어려운 일 당하고 레위를 비롯한 아들들이 세겜에 잔인하게 복수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시 벧엘로 돌아온 야곱이 하나님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제단을 쌓았습니다(창35:1). 마지막 다섯 번째 제사는 흉년이 들은 가나안 땅을 떠나서 요셉이 있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도중에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이처럼 야곱 역시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河-

 

들꽃

2026년4월 5일 주일: 부활을 사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LKSYYMPVy10

 

 

좋은 아침입니다.

 

1.

우리 동네 주택가에서 조금 벗어나면

시에서 조성해 놓은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산책로를 제외하면

잡초들로 방치되다시피 하던 곳이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서 시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묘목을 갖다 심었습니다.

묘목 아래 사람들의 명패가 있는 것을 보니,

기부를 받아 수목 사업을 한 것 같습니다.

 

그전에도 일년에 한두 번 작은 트랙터를 동원해서

잡초들을 제거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2년 전, 잡초를 모두 없애더니

작은 나무 조각(우드칩)으로 그 넓은 공터를 덮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 정도는 묘목만 있고

잡초는 거의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잡초가 나무 조각을 뚫고 나왔습니다.

예전처럼 들풀이 무성해졌습니다.

 

2.

매일 산책하는 곳이니

시가 관리하기 전의 모습,

관리를 시작한 모습,

그리고 지금 다시 원래로 돌아간 모습까지

모두 지켜보았습니다.

 

잡초라고 불리는

들풀의 강인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들풀 사이로 노랗고 하얀 들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잠깐 피고 사라질 들꽃입니다.

누군가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저  잡초일 뿐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두껍게 덮어놓은 나뭇가지를 뚫고 나온

잡초들이 벌이는 승리의 향연 같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잠깐 있다가 사라질 들풀도

기르시고 입히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에 핀 꽃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하물며 자기 백성을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겠냐는 말씀입니다.

 

  1. S. 엘리엇은 <황무지, 1922>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라고 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4월의 봄은 한 겨울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4월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상은 패권 경쟁에 들어섰고,

이미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니

우리 서민의 삶도 녹록치 않습니다.

 

이런 때일 수록

두껍게 덮인 나무 조각을 뚫고 올라와

예쁜 꽃을 피우는 들풀의 강인함을 닮고 싶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입니다.

 

들풀까지 입히시고 기르시는

우리 하나님이 계시기에

가능한 소망이고 확신입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마 6:30)

 

하나님,

들풀처럼 살아남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4 9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부활주일에

부활을 사는 것

 

성서일과(聖書日課Lectionary)는 교회력에 따라 매일같이 신구약 성경을 읽는 성경통독 방식입니다. 3년 주기로 성경 전체를 균형있게 읽도록 돕기 때문에 매일같이 성서일과의 본문을 읽거나 성서일과를 따라 주일 설교 본문을 정하고 말씀을 전하는 교회나 교단도 있습니다.

 

성서일과를 따라서 말씀을 전하는 것에 장단점이 있습니다. 단점은 주어진 본문과 틀에 매인다는 것입니다. 네 개 정도의 본문을 정해주지만 그래도 유연함이 떨어집니다. 장점은 목사가 임의로 설교 본문이나 주제를 정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설교 속에는 전하는 목사의 의도가 들어갑니다. 대부분 섬기는 교회에 맞는 본문과 주제를 선택하지만, 목사 개인의 생각이 반영될 수 있는데 성서일과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줍니다.

 

저는 연말 대강절(Advent)에 성서일과의 본문을 사용해서 말씀을 준비합니다. 절기 설교를 특별히 선호하지 않지만, 오늘처럼 진행 중인 연속 설교를 한주 쉬고 절기 설교를 할 때는 성서일과를 참고합니다. 올해 부활절 성서일과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행전 10:34-43; 시편 118편 1-2,14-24; 골로새서 3:1-4; 요한복음 20:1-18 또는 마태복음 28:1-10. 부활 주일을 보내면서, 성서 일과의 본문을 읽고 묵상하셔도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생명의 삶> 진도를 따라서 아침 말씀을 나눕니다. 역시 주어진 본문입니다. 중복해서 읽기도 하지만, 5년 정도 지나면 성경 전체를 통독할 수 있습니다. 3년마다 매일 성경을 깊이 읽고 통독하기를 원하시면, 개별적으로 성서일과(A, B, C유형이 있음)를 참고하셔도 좋겠습니다.

 

성서일과의 사도행전 본문은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고넬료가 공식적으로 예수님을 믿은 첫 번째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식민지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던 선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각각 환상을 보여주셔서 두 사람이 고넬료 집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꺼리던 베드로였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에게 세례를 베풀고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이는 매우 뜻깊은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공생애,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갖고 복음을 전합니다. 특별히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은 베드로는 물론 초대교회가 붙들고 있던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는 모든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사흘 만에 살아나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도 부활을 살게 되었습니다.-河-

힌네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 모리아 산의 사건을,

아브라함의 입장과 이삭의 입장에서

두 주에 걸쳐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을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상식과 윤리, 도덕을 존중하시는 하나님도

발견하기 힘든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부조리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명령에

두말없이 순종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노년의 아브라함이 하나님 명령을 따르기 위해,

10대에 접어든 아들 이삭의 협조가

꼭 필요했음을 나눴습니다.

 

이삭에게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신

예수님의 모습도 발견했습니다.

 

2.

아브라함과 이삭에 관한 설교를 마친 후,

제 마음에 계속 머무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실 때,

그리고 칼을 들고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이 대답한 한 마디 히브리어  <힌네니>였습니다.

 

히브리어 <힌네니>는

“보시옵소서. 내가 여기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습니다” 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모세, 사무엘, 이사야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에 <힌네니>라고 대답했습니다.

 

3.

<힌네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Here I am)”는

하나님 백성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언어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나’라는 자아도 내려놓았습니다.

어떤 주장이나 생각, 제안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무장해제하고

드리는 고백이 바로 <힌네니>입니다.

 

고난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힌네니>의 정신으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 뜻에 맡기셨습니다.

 

우리도 <힌네니>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가길 원합니다.

 

내 생각이나 세상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고난 주간,

아니 오늘 하루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버지여 만일 만하시거든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Here I am, Lord)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4 2 이-메일 목회 서신)

성경 속 예배자 (7)

이삭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자녀입니다.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났습니다. 이삭의 탄생은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첫 약속이 현실이 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삭은 평범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구김살 없이 컸습니다. 이집트 출신 하갈에게 태어난 이복형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장면도 나옵니다. “웃음”이라는 그의 이름을 갖고 조롱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아들 이삭도 모리아 산에서 경험한 여호와 이례 하나님은 잊지 못할 정도로 강렬했을 것입니다. 이삭이 제사에 쓸 장작을 지고 가는 것으로 보아서 그의 나이는 10대 어간이었을 것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해서 제물로 드릴 때, 이삭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했습니다. 힘이 없는 노인 아브라함이 청소년 이삭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제물로 바쳐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이삭도 정말 대단합니다.

 

“포기”와 “기대”를 통해서 믿음이 도약한다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삭은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아브라함의 말 대로 하나님께서 양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잃기 바로 직전에 살아난 이삭은 평생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모리아 산의 사건이 아브라함  믿음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면, 이삭에게는 시작점이 된 것입니다.

 

엄청난 경험을 하면서 믿음의 길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이삭의 인생은 예전에 설교했던 제목 그대로 “웃음 가득한 인생”이었습니다. 아내 리브가 얻는 과정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물론, 타지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들 야곱에 비하면 평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창세기에서 이삭에 대한 본문은 비교적 짧습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것은 창세기에 한 번 나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흉년이 들어서 남쪽으로 이동하다가 그랄이라는 곳에 정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두 번째 속인 곳인데, 이삭도 똑같이 그랄에서 아내 리브가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랄에서 이삭에게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떠나달라는 그랄 왕의 요청으로 그랄 골짜기로 이주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발생합니다. 우물을 파면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훼방을 놓았습니다. 그때마다 이삭은 다툼보다 양보를 택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머물던 브엘세바에 정착하고, 우물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