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드렛일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침에 함께 읽고 있는 역대기는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

다시는 무너지지 않을 이상적인

다윗 왕국을 눈에 그리면서 기록했습니다.

 

권력에 도취해 탈취와 쾌락에 빠지는

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십니다.

세상의 왕은 주어진 행정만 담당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이

이스라엘의 중심을 이룹니다.

따라서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들에 관한

말씀이 자주 등장합니다.

 

레위인들 가운데는

제사장들처럼 번듯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전 문을 지키거나, 성전 집기를 청소하고,

창고를 관리하는 등

허드렛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레위인이

제사 지낼 제물을 준비하고,

성전을 청소하고 관리하는 데 종사했을 것입니다.

 

화려한 예복을 입고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에 비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소위 허드렛일에

종사하는 레위인들의 지파와 이름,

그리고 이들이 하는 일을 기록했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루하루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들을

기억한 것입니다.

 

2.

여행하다 보면,

허드렛일을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공항에 가면,

활주로에서 비행기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승객들의 짐을 날라 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승객들이 내리자마자

다음 승객들의 쾌적한 여행을 위해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호텔에서는

침구를 갈아주고

방을 청소해 주는 분들을 만납니다.

 

한 아주머니가 호텔방을 청소하는 동안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아들이

복도에 앉아서 엄마를 기다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3.

인간이 사는 곳에는

허드렛일이 늘 발생합니다.

누군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쓰레기 더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AI로봇이 허드렛일을 담당할 수도 있다지만,

인간의 손이 필요한 허드렛일은 언제나 어디나 있을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허드렛일을 감당하시는 분들을 기억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를 표합니다.

 

교회를 섬기시는 손길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직분은 아론의 자손을 도와

여호와의 성전과 뜰과 골방에서 섬기고

또 모든 성물을 정결하게 하는 일

곧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는 일과 (대상 23:28)

 

하나님,

거칠고 허드렛일을 하시는 분들을 축복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10. 22 이-메일 목회 서신)

찬송가 해설 (17)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찬송가 379장)

 

연속 설교 막간에 살펴보는 찬송가 해설 시간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 37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입니다.

 

영국 성공회 사제이고 옥스퍼드 대학 교수였던 존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이 찬송시를 썼습니다. 존 뉴먼은 당시 타락했던 영국 성공회를 향한 개혁을 주도하다 건강을 잃고,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으로 요양을 떠났습니다. 그러던 중 장티푸스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다가 영국으로 귀국하는 배에 올랐습니다. 존 뉴먼이 탄 배가 짙은 안개로 지중해 한 가운데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존 뉴먼의 연약한 육신의 건강, 항해의 어려움, 막막한 교회의 현실 앞에서 탄생한 찬송가가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입니다. 우리 말 가사도 좋지만, 영어 가사를 그대로 옮겨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1절)자비로운 빛이여, 나를 둘러싼 어둠 속에서 나를 인도하소서. 나를 계속 이끌어 주소서. 밤은 어둡고 나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나를 계속 인도하소서. 내 발걸음 지켜 주소서, 저 멀리 앞에 펼쳐질 길을 보여 달라고 구하지 않겠습니다. 한 걸음이면 충분합니다.

 

(2절) 저는 언제나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주께서 저를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길을 제가 선택하고 그 길을 제 눈으로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나를 인도하여 주소서. 저는 눈부시고 화려한 세상을 좋아했고,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교만이 제 뜻을 지배했습니다. 주여, 지난날의 저를 기억하지 마소서.

 

(3절) 지금까지 주의 능력이 나를 지키고 복되게 하셨으니, 앞으로도 분명 나를 계속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황야를 지나고 습지를 지나며 바위산과 거센 물결을 지나서라도 주께서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마침내 이 밤이 지나갈 때까지,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오래전부터 사랑했으나 잠시 헤어져 있었던 그 천사 같은 얼굴들이 미소 지으며 나를 맞이할 것입니다.

 

존 뉴먼의 가사에 곡을 붙인 존 다익스(John B Dykes, 1823-1876)는 존 뉴먼의 찬송시에 감동을 받고 “룩스 베니그마(친절한 빛)”라는 곡을 썼습니다. 존 뉴먼의 가사 첫 줄 “자비로운 빛”에서 나온 라틴어 곡명입니다. 존 다익스는 우리가 아는 찬송가 8장(거룩 거룩 거룩), 79장(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85장(구주를 생각만 해도)의 작곡가입니다.

 

부러울 것이 없었던 존 뉴먼이지만,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다가 육신의 병을 얻었고, 고향에 돌아가는 배가 바다 한 가운데서 멈추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막막한 순간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河-

야베스의 기도 (3)


1) 저에게 복을 주옵소서
2) 저의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3) 주의 손으로 저를 도와주옵소서. 4
4)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개역개정)

 

3주 동안 야베스의 기도를 주제로 공부했습니다(역대상 4장 9-10절). 야베스는 그의 어머니가 어렵게 낳았습니다. 야베스의 이름은 “고난” “수고”를 뜻하는 히브리어 <오베츠>에서 왔습니다. 이처럼 어렵게 태어난 야베스는 그의 형제들보다 존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2천 년에 출판된 브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으로 유명해졌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윌킨슨의 책에서는 야베스의 기도를 “복에 복을 더하소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를 외워서 지속적으로 기도하면, 야베스의 기도가 우리에게도 이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야베스의 기도를 히브리어 본문 그대로 읽으면, 확신에 찬 강청 기도보다는 힘없고 약한 야베스가 하나님의 선처를 구하는 기도에 가깝다고 배웠습니다. “복을 주시려면, 지경을 넓혀 주신다면, 주의 손으로 도와주신다면, 환난(악)에서 벗어나 어려움을 없애주신다면”이라는 조심스러운 소원에 가까웠습니다.

 

윌킨슨이 제시하는 야베스의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서 인생이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윌킨슨의 기도 속에는 하나님보다 ‘나’가 앞서 있습니다. 자칫 하나님을 이용해서 나의 소원을 이루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반면, 제가 소개한 히브리어 본문 속 야베스의 기도는 기도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배울 수 있지만, 따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가 야베스의 기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주보 앞에 소개한 야베스의 기도, 네 가지를 갖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을 명확하게 요약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복에 복을 더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의 강조형인데 “진정한 복을 주옵소서” 또는 “저에게 꼭 복을 주세요”라는 기도이지, 복을 갑절로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둘째, 야베스의 기도를 주문 외우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중언부언의 기도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기도가 그대로 이뤄지길 바라는 기복신앙으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만, 응답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야베스는 자기의 상황에 맞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기도를 만들어서 야베스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꼭 필요한 우리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河-

야베스의 기도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는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고통, 수고”라는 이름 뜻 그대로

어머니가 심한 산고 끝에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탄생뿐만 아니라

야베스와 그의 가족은 힘겹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자기 인생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저는 야베스의 기도를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과 비교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 보니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했습니다.

 

야베스가 기도로 자기 인생의 운명을 바꾸었듯이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도 기도로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세워가길 바라면서,

역대기 사가는 야베스의 기도를

이스라엘의 긴 족보 한가운데 포함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야베스의 기도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였습니다.

 

2.

역대상 4장 10절의 <야베스의 기도>를

히브리어 본문의 느낌을 살려서 다음과 같이 번역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께서 정말로 복을 주신다면,

그리고 나의 경계를 넓혀 주신다면,

그리고 주의 손이 나와 함께하신다면,

그리고 내가 고통당하지 않도록 악(환난)에서 건져주신다면…

 

히브리어 본문에는 계속해서 “그리고”가 나옵니다.

야베스는 차근차근

한 가지씩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야베스의 기도가 “if”로 시작하는데, 그 끝이 없습니다.

 

창세기 28장의 야곱은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만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신다면(if),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주신 것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외삼촌 집으로 피신해 가는 노숙자 야곱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래도 하나님께 약속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베스는 다릅니다.

야베스도 “if”를 가지고 하나님의 선처를 구하지만,

기도를 들어주시면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고

아무것도 약속하지 못합니다.

약속조차 할 수 없는 가난한 야베스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야베스의 기도는

힘없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이 드리는

겸손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을 정도로 빈손이었습니다.

그의 에너지 레벨은 0이었습니다.

야베스는 그때도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형제들보다 아니 그 누구보다

존귀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3.

우리도 많이 힘들 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야베스처럼 솔직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강한 모습이 아니라 약한 모습 그대로,

무엇인가를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무릎 꿇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배웁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4:10)

And God granted what he asked. (1 Chronicles 4:10)

 

하나님,

빈손으로 엎드려 주님의 선처를 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10. 1 이-메일 목회 서신)

야베스의 기도 (2)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대하 4:10)

 

앞으로 두 주 동안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야베스는 자기가 믿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그곳에 있는 토속신을 믿는 부족들을 쫓아내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진멸’이라는 표현을 쓰실 정도로 옛것을 없애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사기에서 “옆구리의 가시”라고 부른 가나안 족속들을 남겨 놓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비하면 화려했습니다. 풍요와 다산의 신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당장 필요한 물질의 축복을 갖다주니 바알과 아세라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야베스는 이처럼 하나님이 잊혀지고 세상의 신을 쫓는 시대를 살면서 자기가 믿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야베스의 기도가 “-하면(if)”로 시작합니다. 야베스는 부르스 윌킨슨이 정리한대로  ”복에 복을 더하소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환난을 벗어서 근심이 없게 하소서”라고 강청하지 않았습니다. 야베스는 주문을 외우듯이 네 가지를 하나님께 반복해서 요청한 것도 아닙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생각이시면, 즉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가 소원하는 네 가지를 응답해 주시길 조심스럽게 기도했습니다. 조금 과장되게 들릴 수 있지만,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생각납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눅22:42).

 

워낙 어렵게 태어났기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었고 야베스의 뜻은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라고 했습니다. 슬픔 가운데 야베스를 낳았다는 뜻입니다. 어머니만 그랬을까요? 야베스의 삶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야베스는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기도로 인생 역전을 이뤘습니다.

 

야베스는 심령이 가난했습니다. 실제로 가난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자신 있게 또는 교만하게 요청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야베스 자신처럼 가난하고 힘든 사람도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면, 자기가 갖고 있던 기도 제목을 들어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기도했습니다. 약하고 낮은 자의 기도였습니다. 작은 신음으로 간절히

핑계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주 예전에 유행했던

<핑계>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남자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이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구차한 핑계를 댄 것 같습니다.

 

혼자 있는 법을 가르쳐준다면서

안개꽃 한 다발을 선물했는데

그 속에 숨겨진 편지에는

“안녕”이라는 두 글자뿐이었습니다.

 

슬픈 사랑을 가르쳐 주겠다는 핑계도 댔습니다.

그 마음을 다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핑계를 대지 말았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2.

핑계는 모든 인간의 생각 속에 도사리고 있는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의 오랜 속성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하나님이 지으신 여자 하와가

자신을 유혹했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이브는 뱀에게 탓을 돌렸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산 아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과 함께 섬겼습니다.

 

모세가 묻자,

“금을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다”며

거짓말에 가까운 핑계를 댔습니다.

아담과 이브 이후 최고의 핑계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의 핑계는 조금 다릅니다.

그는 말재주가 없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댔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아이’라고 부르면서

선지자의 사명 앞에서 머뭇거렸습니다.

핑계의 내용은 달라도 결국 “나는 할 수 없습니다”였습니다.

 

3.

돌아보면,

우리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살아왔습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잘못한 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어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모세나 예레미야처럼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댄 적은 꽤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도생활입니다.

 

지난 주일에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기도를 놓고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곤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기도할 시간은 언제나 있습니다.)

기도할 줄 몰라서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아시니까(그래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도 소용이 없어서 (과연 그럴까요?)…

 

노래 속의 핑계가

사랑을 떠나기 위한 핑계였다면,

우리에게는 기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런저런 핑계가 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가지고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는 앞으로 3주간은

핑계는 뒤로 하고 우선 무릎 꿇고 기도합시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기쁘다”는

찬송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시편 86:3)

 

하나님,

기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9. 24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