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 (4): 로마서 3장 23-24절
Author: 참빛
그리스도의 복음 (4)
로마서 3장 말씀은 물질이 최고인 요즘 세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잘되고 장수하며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것을 행복이라고 하지만, 사도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알려주는 행복은 세상의 것들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로마서의 복음을 공부하면서도 감동이나 깨달음이 적은 이유입니다. 사도 바울이 소개하고 선포하는 복음이 우리의 마음에 직접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복음의 효능감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바울의 복음은 이 세상을 뛰어넘는 생명의 복음입니다. 이것을 밝히 알고 깨닫는 신앙의 안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거하며 그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능력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십계명과 율법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이 완악한 교만이 하나님보다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더 높이는 죄를 범했습니다.
로마서 전반부(3:18-3:20)에 의하면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웠듯이,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와 같은 훌륭한 신앙인들이 자기 힘으로 의롭게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인간과 세상 깊숙이 자리 잡은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23절)라는 오늘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인간의 실존을 다시 설명합니다. “모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 앞에 이를 가능성과 능력이 이미 상실되었기에,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가 필요합니다. 마틴 루터가 “낯선 의(alien righteousness)”라고 불렀던 바로 그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차별 없이 의롭게 됩니다.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성취되는 의로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누렸던 하나님과의 완전한 교제를 뜻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지낼 수 있는 자격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인간은 그 영광에서 멀어졌습니다. 죄의 힘과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河-
메꿔감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어떤 글을 쓸 때,
우선 초고(draft)를 가능한 한 빨리 작성해 놓습니다.
조금 부족하고 서툴러도
초고를 끝내 놓으면 안심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 번 읽으면서
중간중간 필요한 것을 메꿔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작성할 수 있으면
시간도 절약하고 일찌감치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한 번에 글을 완성하려다가
생각하고 준비하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마감 날짜에 허둥지둥할 때가 많았습니다.
2.
저의 이런 습관은
박사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작성하면서 생겼습니다.
3년 만에 필요한 모든 수업을 듣고
종합시험까지 통과했습니다.
목회하고 있었고
교회도 계속 문제가 있었기에
논문을 남겨놓고 거의 6년을 보냈습니다.
그때 제 지도교수님께서
시간을 정해 주시면서
논문 초고를 완성해서 갖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논문 통과는 불가능하다고 겁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6년 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만 하고 책만 읽었다면
마지막 1년은 교수님의 엄한 명령에 순종해서
초고를 완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초고가 완성되니
교수님께서 코멘트하신 것을 위주로
부족한 부분을 메꿔가면서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3.
우리는 생각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을 때가 다반사입니다.
완벽하게 하려고 고민하고
계획을 세우다가
실제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겠다는 다짐보다
우선 무릎 꿇어 기도하고,
성경을 펼쳐서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작이 중요합니다.
초벌구이 같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메꿔가면 됩니다.
채워가고, 완성해 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새달 6월을 맞았습니다.
미뤄두었던 것을 시작하고 실행해 옮겨봅시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잠16:3)
하나님,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함께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6. 4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5월 5주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3): 로마서 3장 21-22절
그리스도의 복음 (3)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로마서 3장 21-31절은 로마서는 물론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망가진 세상에 “그러나 이제” 복음의 빛이 비쳤습니다.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면서 일어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입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에 생명의 능력이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바름’을 가리킵니다. 죄가 침투하지 못하는 완벽한 ‘의’입니다. 거짓 없는 온전히 참된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율법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가 선택한 백성에게 기대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물론 양심을 갖고 있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등지고 악한 길로 갔습니다. 율법을 죄를 범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율법은 물론 선지자들이 예고한 하나님의 한 의가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에 나타나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1-2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듯이, 예수님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임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중요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세상의 도덕과 선한 행위를 갖고도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구원을 주도하고 성취합니다.
믿음에 이르는 데 두 가지 과정이 요청됩니다. 우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는 회개입니다. 로마서 전반부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본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왜 복음이 필요한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내가 주인으로 살아온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십자가 앞에 나가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입술로 말하는 회개를 뛰어넘는 행함이 동반된 회개입니다. 구약에서 회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슈브”는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신약의 회개(메타노이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회개는 구원의 집에 들어가는 현관과 같습니다.
회개에 이어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됩니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河-
아이러니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이러니(irony)는
반어(反語)로 불리는 문학 용어입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날씨 한번 참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과 속뜻이 정반대일 때
이것을 언어적 아이러니(verbal irony)라고 합니다.
영화나 연극에서 관객은 이미 알고 있는데
등장인물만 모른 채 전개되는 것을
극적 아이러니(dramatic irony)라고 부릅니다.
상황이 예상과 전혀 다르게 펼쳐지는
상황적 아이러니(situational irony)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죄인들이 달리는 나무에 달리셨지만,
그 죽음이 오히려 죄인들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으니,
십자가 사건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아이러니입니다.
2.
엊그제 읽은 기사 역시
아이러니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요즘 구직 시장에는
AI를 이용한 지원서(job applications)가 많답니다.
손쉽게 지원서를 만들 수 있으니
지원서의 숫자도 크게 늘었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돋보이려고 사용한 AI 기술이
지원서들의 형식, 어투와 내용을
비슷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답니다.
그러다 보니
AI로 작성한 지원서를
AI로 걸러내는 기업까지 등장했습니다.
AI를 사용해서 훌륭한 지원서를 준비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입니다.
기사 속에서 전문가들은
AI로 초안을 만들고,
실제 경험과 구체적인 수치,
그리고 지원자 개인만의 이야기가 포함된
‘나만의 개성 있는 지원서’를 작성하라고 조언했습니다.
3
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돋보이려고 애를 쓰지만,
결과적으로 서로 닮아가고 있습니다.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한 기술이
서로를 비슷비슷하게 만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가
행여나 자신까지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길까
염려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남을 닮은 모습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조금 부족해도
참되고 솔직한 모습을 더 기뻐하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오길 원하십니다.
겉모습보다
우리 안의 <참됨과 선함>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오늘 하루,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나만의 삶”을 살아봅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9)
하나님,
‘참됨’을 잃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5. 28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5월 4주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 (2): 로마서 3장 21-22절
그리스도의 복음 (2)
로마 제국의 수도요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 예수님을 믿는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로마 제국이 정복하는 곳마다 평화가 이뤄진다고 해서 <로마의 평화, Pax Romana>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로마 황제는 신의 경지에 올랐고, 모든 사람이 황제를 “주(主)”로 부르며 섬겼습니다. 세상의 문명이 최고 절정에 이르렀으니, 로마 제국의 백성이 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곳에 로마가 황제가 아닌 나사렛 출신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무래도 메시아에 대한 정보를 알고 구약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이 우선 개종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이방인들도 교회에 많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유대인들의 선민의식 때문에 교회가 어지러울 때가 있었기에, 교회의 주축은 이방인 가운데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족들도 로마 교회에 있었습니다. 로마서 마지막 16장에 보면 이처럼 바울의 지인들이 많이 있었기에 로마를 방문해서 교제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길이 열리지 않자, 로마에서 가장 가까운 고린도에서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리스 철학은 물론 세상 학문과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던 로마입니다. 예수님을 믿었지만, 세상의 유혹이 거셌고, 복음에 관한 이해가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 제국 한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고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복음을 자세히 알려주어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을 갖게 하길 원했습니다. 로마서 1장 16-17절은 로마서의 서론이면서 로마서 전체의 주제 구절입니다:”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왜 필요한지 1장 18절-3장20절까지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의로우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망가졌습니다. 스스로 회복할 능력도 상실했습니다. 외부의 도움이 아니면, 절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외부에서 세상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이시기에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언한 구세주, 메시아가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河-
배움
좋은 아침입니다.
1.
5월은
미국 대학들의 졸업 시즌입니다.
방송에서는 유명인들이 어느 대학에서
졸업 연설을 했는지가 소개되고
훌륭한 연설은 두고두고 회자됩니다.
2년 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눈길을 끄는 분이 계셨습니다.
당시 105세의 나이로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으신
버지니아 히스롭(Virginia Hislop)여사입니다.
히스롭 여사는
1936년에 스탠퍼드 교육학과에 입학했고
1940년에는 교육 대학원에 진학해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논문만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교육자 집안 출신이던 히스롭 여사도
학업을 마친 뒤
교육자로 살아가길 꿈꾸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1941년,
남자 친구가2차 세계 대전 중 군대에 소집되면서
갑작스럽게 결혼하느라 학업을 중단했습니다.
히스롭 여사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이 그랬듯이
자신의 커리어를 쫓기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았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지역 교육은 물론 교육 관련 법을 고치는 데 동참하면서
평생 교육을 향한 열정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손자가 스탠퍼드 대학에 할머니의 상황을 알렸고
혹시 졸업이 가능한지 문의한 것입니다.
히스롭 여사가 공부할 때는
교육 대학원 졸업을 위해서 논문이 필요했는데,
현재는 논문이 필수 요건에서 제외되면서
1940년대 이수한 학점이 인정되었습니다.
그렇게 히스롭 여사는
2024년, 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83년 만에 받은 학위였습니다.
히스롭 여사는
생각지도 못한 학위를 받게 되었다고 감격했습니다.
졸업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축하해 주었습니다.
105세에 석사 학위를 받으셨으니 말입니다.
2.
요즘은 너도나도 “100세 시대”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 동네 샌프란시스코 노인회에
100세가 넘으신 어르신이 몇 분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 의학이 더 발달하고,
건강 관리에 힘을 쏟으면
100세 시대가 활짝 열릴 가능성도 큽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사느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105세에 그것도 83년 만에
석사 졸업장을 받으신 히스롭 여사가
더욱 대단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오늘 하루도
감사함으로, 그리고 의미 있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인생길 굽이굽이 마다
깜짝 놀랄 선물과 기쁨을 준비해 두시는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16:31)
하나님,
특별히 우리 교회 권사님들을 축복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5. 21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5월 3주 말씀
그리스도의 복음(1)/ 로마서 3장 10-18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