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예배자 (1)

가인과 아벨 (1)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최선의 길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거하고,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는 물론 세상 속에서 예배자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곧 예배자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배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모세 시대에는 광야의 성막에서,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은 후에는 성전에 모여서 다같이 예배했습니다. 바빌론 포로 기간에는 가정과 회당에서 예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오순절 성령이 임하면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에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떡을 떼면서 교제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땅끝으로 펴져 나가면서 각 지역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 시대 모두 자신의 백성을 예배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이 두루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개인과 가정, 민족과 공동체들입니다.

 

앞으로 “성경 속 예배자”라는 제목으로 성경에 나오는 예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시간의 제약으로 전수 조사하듯이 성경 속 모든 예배자를 공부할 수 없습니다. 대신,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예배자들의 모습을 함께 나누면서, 예배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참된 예배자로 신앙의 길을 가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첫 번째 예배자는 가인과 아벨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가 낳은 형제들입니다. 이브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가인(얻음)”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아들을 얻을 수 있었다고 기뻐했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분명하지 않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이브가 주도적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이어서 둘째 아들인 “아벨(헛됨)”을 낳았습니다.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고, 형 가인은 농사짓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가인과 아벨이 각자 준비한 예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는데,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부터 커다란 문제가 생깁니다.-河-

배려

좋은 아침입니다.

 

1.

미국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배타적’인 모습 때문이랍니다.

예수님은 절대 배타적이지 않으셨는데,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가 배타적이 된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마태복음이 하나님 나라가 아닌

“천국(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십계명을

애지중지 지키는 유대인들을 위한 ‘배려’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배타적인 것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배려”를 선택하겠습니다.

 

예수님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가 맞지만,

자칫 구원의 문을 닫아버리는 배타적인 신앙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 끗 차이 같습니다.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필요하지만,

다른 종교나 다른 신들을 악마화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중동 분쟁이 유일신 하나님/알라를 믿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 간의 싸움인 것이 좋은 예입니다.

각자 믿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삼위일체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교리입니다.

그런데 삼위 하나님이 서로 소통하십니다.

서로 손을 잡고 춤추시는 ‘페리 코레시스’의 하나님이십니다.

매우 색다른 유일신 신앙입니다.

 

2.

엊그제 성경 통독에서 읽은

레위기 마지막 27장에는

하나님께 서원하는 규정이 나옵니다.

사람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였다면,

율법이 정한 값을 제단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한창 활동할 연령인 20-60세 남성은 은 오십 세겔,

같은 연령대의 여성은 30세겔,

5-20세의 남성과 여성은 각각 20세겔과 10세겔,

1개월에서 다섯 살까지 남자와 여자아이는

각각 은 다섯 세겔과 삼 세겔입니다.

 

요즘 은 값이 많이 올랐는데,

최근 은 값으로 환산하니 남성 은 오십세겔은 약 1,500불입니다.

예수님은 성인 여성의 서원값인 은 삼십 세겔에 팔리셨지요.

은 삽십 세겔은  노예 한 명에 해당하는 값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규정이 나옵니다.

정해진 서원값을 지불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나올 수 없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기도 힘이 버겁습니다.

 

율법은 가난한 백성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서원값을 지불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제사장을 찾아가고, 제사장은 “서원자의 형편대로” 값을 정해줍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신약 성경은 물론

구약 성경에도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

공동체 속에서의 배려가 차고 넘치게 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크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배려’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의 시작이랍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4:5)

 

 

하나님,

넉넉한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2 12 이-메일 목회 서신)

찬송가 해설 (15)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요즘 금과 은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답니다. 전쟁 등 세상이 불안하니 안전 자산인 금과 은을 사 모으고, 거기에 왠지 귀금속을 갖고 있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포모(FOMO)까지 더해진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금이나 은이 실제 산업에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개인의 경우 대부분 희소성의 가치 때문에 금을 사 모읍니다. 온 세상이 금과 은으로 이뤄져 있고,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황금을 돌처럼 볼 텐데 말입니다.

 

연속 설교 중간에 찬송가에 깃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오늘 살펴볼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의 영어 가사 첫 구절은 “나는 은과 금보다 차라리 예수님을 선택하겠습니다”입니다. 너도나도 갖고 싶어 하는 금과 은보다 예수님이 더욱 귀하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13:44). 예수님께서 천국을 감추인 보화에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모든 재산을 팔아 밭을 삽니다. 재산을 팔아서 밭을 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비아냥거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밭에 숨겨진 보화를 보았습니다. 천국에 예수님을 대입하면 오늘 우리가 배우는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네”라는 찬송가 가사가 됩니다.

 

요즘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너무 좋은 것이 많습니다. 금과 은과 같은 보화들도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 가운데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면, 모든 것을 팔아서 밭을 산 사람처럼 모든 것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찬송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두었던 밀러(Miller, 1894-1966)부인이 작사한 찬송입니다. 밀러 부인은 돈만 생기면 술을 사먹는 아버지가 하나님께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녀의 기도가 응답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 아버지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로 시작하는 간증을 하였고, 앞에 앉아 있던 밀러 부인은 아버지의 간증을 정리해서 찬송시로 만들었습니다.

 

밀러 부인의 찬송시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어느 주일날, 찬양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아버지가 담임하는 교회에서 찬양으로 섬기던 조지 셰이(George Shea,1909-2013)는 그의 어머니가 손 글씨로 써 놓은 밀러 부인의 시를 발견하고 즉석에서 곡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 없네”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河-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

좋은 아침입니다.

 

1.

AI가 이끌어가는 세상은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마주하면서

깜짝 놀라면서도 솔직히 두렵습니다.

과연 어디까지 발전할지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편리한 것도 많습니다.

Chatgpt같은 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서

한 번도 불평하지 않는 훌륭한 조력자(비서)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10년여

권사님이 하시던 예배 통역을

지난 연말부터 애플 에어팟으로 바꿨습니다.

누구나 에어팟이 제공하는 언어로 들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 강림에서

제자들의 말을 각자의 언어로 들은 것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과학 이론이나 기계의 원리를 잘 모르는

저에게는 모든 것이 신비의 세계일 뿐입니다.

 

2.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커다란 아나콘다에 온몸이 칭칭 감긴 아기 코끼리가

뛰어가다가 결국 넘어지는 유튜브 쇼트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표범이 달려와서 아나콘다를 제압하고

코끼리는 달아났습니다.

 

처음에는 진짜인 줄 알았는데,

표범의 생김새나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가짜였습니다.

깜짝 같이 속을 뻔했습니다.

 

분별해 내기가 어려울 정도의

진짜 같은 가짜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보이스 피싱은 물론

우리 생활 전반에 가짜가 침투해서

감쪽같이 속는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서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개인의 영역을 떠나서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가짜가 활동해서

세상을 교란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인간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인류에 재앙이 닥치는

공상 과학 영화에 나왔던 일들이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과학 문명이 올바른 길로 발전할 수 있는

기준, 규범, 때로는 제재가 필요해 보입니다.

 

3.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될수록

진리(眞理)를 설파하는 종교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생각, 마음, 하신 일을 따를 때,

길을 잃고, 거짓에 휩싸이고, 죽음의 세력에 지배되는

세상을 지키고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리의 길을 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매우 큽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진리 가운데 붙들어 주시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을 가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목에 매며 마음판에 새기라 (잠언 3:3)

 

하나님,

진리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2 5 이-메일 목회 서신)

우리 교회는…

오늘은 그동안 교회를 섬기며 수고해 주신 은퇴 권사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 교회는 집사나 권사라는 직위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직책 때문에 더 대우하거나, 직책이 없다고 덜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를 섬기기 위한 역할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지난 수년 동안 권사님으로 교회를 섬겨 주신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는 원로 권사님으로 무엇보다 기도로 교회를 더 많이 섬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무쪼록 영육 간에 강건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세 분의 집사님을 새로 세웁니다. 입교(등록) 후 2년이 지나면 신천집사로, 다른 교회에서 집사로 섬기셨다면 1년 후 이명 집사로 임명합니다. 집사가 되기 위한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집사님으로 해야 할 의무도 특별히 강조하지 않습니다. 다만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힘닿는 대로 교회를 섬겨 주시길 부탁드릴 뿐입니다. 올해 임명되신 세 분 집사님을 통해 우리 교회가 더욱 근사하게 세워 지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교회는 은혜로 여기까지 왔지만, 팬데믹 이후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작은 교회가 더욱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럴수록 교회를 섬기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손길이 귀합니다. 함께 교회를 세워 가시는 임원들이 계시고, 참빛 식구들이 계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교회의 사역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고, 사역의 조건과 환경도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과거에 머물러 있기보다,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고 필요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무리한 교회 사역이나 활동은 자제하겠습니다. 자원하는 손길이 있을 때,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겠습니다. 자칫, 교회가 조용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우리 교회의 특징이 된다면, ‘일상을 사는 교회’로 근사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교회에 시간과 에너지를 과도하게 쏟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주일에 함께 교제하면서 힘을 얻기를 바랍니다. 예배가 하나님 사랑이라면, 성도의 교제는 이웃 사랑입니다. 주일마다 우리 안에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온전히 실천되기를 바랍니다. 그 힘으로 천국과 같은 가정을 세우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물론 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섬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행사와 활동을 자제해도 기본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역이 있습니다. 각자의 은사대로 교회를 섬기지만, 그 섬김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과 보람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한마음과 한뜻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멋진 교회를 세워갑시다.-河-

여백

 

좋은 아침입니다.

 

1.

나이가 들다 보니 옛날 일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설교 시간에 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중학교 때 아주 무서운 미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외모는 물론 말투까지 무서웠습니다.

잘못 보이면 체벌도 가하셨습니다.

 

미술 시간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겁을 먹고 잔뜩 긴장했습니다.

숨을 죽인 채 선생님 말씀을 듣고,

시키시는 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동양화 국전에

응모하실 정도의 실력자셨습니다.

 

하루는 수묵화 난초를 그리게 하셨습니다.

대충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난초 하나하나 순서대로 그려야 했습니다.

 

숨을 죽이고 난초 몇 가닥을 그리고 났더니,

선생님께서 갑자기 크게 웃으시면서,

난초 그림에는 “여백”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어리둥절했고,

화를 내시지 않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2.

무서우셨던 미술 선생님이 생각나서

사군자 난초 그림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지금 보니 시골 아이들에게

사군자 기초를 정확히 연습시키셨습니다.

 

난초 줄기가 5개 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큰 화선지가 모두 여백입니다.

저희는 난초를 그리는 데 온 정신을 쏟았지만,

선생님은 우리가 그린 그림 속에서

여백을 먼저 보셨던 것입니다.

 

미술 선생님처럼 우리 조상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종이를 가득 채우기보다 ‘여백’을 남겨 놓았습니다.

수양버들처럼 멋있게 그린 난초도 중요하지만,

난초보다 훨씬 넓은 여백을 보고 즐긴 것입니다.

 

3.

어느덧 1월이 모두 지나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도 새해 첫 달이 지나간 것처럼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 삶은 더 빠르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앞에서 누가 당기는 것 같고

뒤에서는 누군가 밀고 있는 느낌으로

쫓기듯이 살아갑니다.

 

많은 일을 해야 할 것 같고,

쉬면 안 될 것 같은 압박 속에서의 쉴 틈 없는 삶입니다.

‘여백’을 말하는 것이 사치인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새해 첫 달을 마무리하면서

‘여백’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립니다.

난초 다섯 줄기가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다섯 개여서 더 넓어진 여백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옵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2026년의 한 달이 지나갔을 뿐입니다.

남겨진 여백을 이용해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 삶 속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여백도 남겨 놓길 원합니다.

 

오늘 하루, 삶은 물론 신앙의 여백을 즐깁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 11:28)

 

하나님,

여백이 있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 목사 드림.

(2026. 1. 29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