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복음(1)/ 로마서 3장 10-18절
Author: 참빛
그리스도의 복음 (1)
오늘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해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그리스도교(기독교) 가운데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시작한 개신교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개인의 신앙이나 교회의 사역 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도 기독교회도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끔찍하게 사랑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을 거역해서 에덴에서 쫓겨난 후에도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그들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시도하셨지만, 열방의 빛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이 선민의식에 빠지면서 하나님께 실망만 안겨드렸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3년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신 말씀, 치유와 기적, 사랑으로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백성이 되는 장치를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한없이 망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과 사람의 양심에 하나님의 흔적과 하나님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으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청개구리처럼 거꾸로 갔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인간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안에 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율법을 주셨는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겉치레로 여겼습니다. 율법을 갖고 자신을 돌아보는 데 적용하지 않고, 남을 판단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던 유대인이 망가질 정도이니, 다른 민족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율법 대신에 양심의 법을 갖고 있지만, 양심을 동원해서 선한 길을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자신을 높이는 자만심에 빠져서 양심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죄의 길로 갔습니다:“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1-12).
우리가 앞으로 공부할 로마서 본문(롬3;21-32) 앞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이고 세상의 모습입니다. 모두 치우쳐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고 회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河-
극복
좋은 아침입니다.
1.
은행에 갔는데 창구에
앞을 보지 못하는 축구선수이자 코치
안토니 크레이그(Antonie Craig)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데 축구를 한다는 것이 신기해서
은행 직원에게 물어보니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집에 와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안토니 크레이그는 시각장애인 미국 대표팀 선수였고,
시각장애인 청소년 축구팀 코치였습니다.
장애인 단거리 육상선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유전성 망막 질환으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다가
2010년에는 거의 앞을 못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육상팀에 도전해 메달을 땄고,
시각장애인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었습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무슨 일이든 도전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이미 그것을 해낸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멘토로 삼아 도전하라고 말했습니다.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2.
세상에는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우리에게 힘과 희망을 주시는 분들입니다.
시각장애인 축구 경기가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기에 검색해 보았습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장애인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었습니다.
2024년 프랑스 올림픽에서는
프랑스가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
축구공 안에는 방울이 들어 있습니다.
선수들은 상대에게 다가가며
“내가 간다”는 뜻의 스페인어“보이(Voy)”를 외칩니다.
경기 중에는 관중들도 조용해야 합니다.
선수들이 공 소리와 목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경기를 보니
선수들은 일반 선수들 못지않게
멋지게 공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요?
존경스러웠습니다.
3.
생각해 보면
우리도 저마다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문제,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평소에는 잊고 살다가도
문득 그 문제와 마주하면
좌절과 절망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 순간, 눈을 돌려보면
이미 그것을 극복한 분들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데 공을 찰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절대 주저앉거나 물러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 짐이라 (고후12:9)
My power is made perfect in weakness.(2Cor 12:9)
하나님,
극복할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5. 14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5월 2주 말씀
찬송가 해설(16): 주 안에 있는 나에게 (370장)
찬송가 해설 (16)
주 안에 있는 나에게(370장)
오늘은 한국식으로 어버이 주일(Mother’s Day)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버이 주일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하는 <어머님 마음>을 칠십이 넘으신 권사님들께 불러 드립니다. 우리를 기르시느라 수고하시고 희생하신 어머님의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말없이 묵묵히 우리 뒤에서 큰 힘이 되신 아버지의 은혜도 잊을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 보내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들은 물론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찬송 가운데 하나가 <주 안에 있는 나에게>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1절)로 시작하는 가사가 좋습니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로 끝나는 후렴은 신바람이 나는 가사와 곡조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작사한 엘리자 휴잇(Eliza Hewitt, 1851-1920)여사는 동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 선생님이 됩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자기를 야단쳤다는 것에 앙심을 품고 무거운 합판(슬레이트)으로 휴잇 여사의 허리를 내리쳤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6개월 동안 허리에 깁스를 하고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았습니다.
휴잇 여사는 길고 긴 회복과 재활기간 동안 문학을 공부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회복한 후에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교회에서 주일학교를 가르쳤고, 주일학교 교사를 평생의 천직으로 여겼습니다. 평생 척추 장애인으로 살았던 휴잇 여사가 남긴 작품이 우리 찬송가에 여섯 곡이나 실렸습니다.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지난주에 불렀던 453장 < 예수 더 알기 원하네>,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는 우리 교회에서도 자주 부르는 찬송입니다.
휴잇 여사는 역시 어린 나이에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으로 8천곡 이상의 찬송가를 작사한 크로스비(Fanny Crosby) 여사와 친하게 교제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 크로스비 여사가 지은 13곡의 찬송이 들어있습니다. 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에 관한 해설에서 크로스비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동병상련의 두 분은 서로 섬기는 교회를 방문할 정도로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를 작곡한 윌리엄 커크패트릭(William Kirkpatrick, 1838-1921)은 수많은 찬송가를 작곡했습니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필라델피아로 이민을 왔습니다. 목수로 일했지만,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복음성가와 찬송가를 만드는 작곡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그가 작사 작곡한 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를 비롯해서 14곡의 찬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河-
샬롬
좋은 아침입니다.
1.
히브리어 <샬롬 shalom>을
우리말로 “평화(peace)”라고 번역하지만,
그 의미는 훨씬 넓고 깊습니다.
샬롬은,
개인의 몸과 마음의 건강, 관계, 생각, 하는 일 등
삶 전체가 부족함 없이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개인이 속한 공동체(세상)에
완전한 평화, 질서, 형통이 임해서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 샬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하늘을 향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구약의 율법,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개인의 삶과 세상 속에서 성취된 상태가 샬롬입니다.
성경의 <샬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샬롬을 누리기 위해서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이뤄갈 때
하나님의 선물, 샬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교회의 역사에서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분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세상의 이치를
자연법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자연법을 준수할 때
구약의 샬롬과 같은 온전한 질서와 조화를
누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연법(Natural Law)”이라는 용어 그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에 깃든 질서입니다.
자연, 세상, 인간의 양심과 이성에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을
설정해 놓으셨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모든 인류가 자연의 질서와 조화,
양심과 상식을 따르면 될 일입니다.
3.
요즘 세상이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막막하고 답답합니다.
구약의 사사시대처럼
각자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또는 우리 편만’ 옳은 것입니다.
샬롬이 깨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주셨는데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주범입니다: 소유욕, 권력욕, 명예욕.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행복할 수 있는
질서(자연법), 자원, 능력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것을 지키고 누리면 되는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샬롬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세상에 영원한 샬롬이 임했건만,
예수님을 향한 믿음도 힘을 쓰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새 날을 맞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우리 마음은 물론 세상에 “샬롬”이 임하길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합시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장애물이 없으리로다 (시편 119:165)
Great peace have those who love your law;
nothing can make them stumble. (Ps 119:165)
하나님,
어지러운 세상에 주님의 샬롬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5. 7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5월 1주 말씀
성경 속 예배자(11): 요셉/ 창세기 45:1-8절
성경 속 예배자 (11)
요셉
<성경 속 예배자>라는 제목의 연속 설교 마지막 시간입니다. 성경에 있는 예배의 모습을 개괄하려고 시작했는데, 창세기를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연속 설교가 너무 길어지기에 “창세기 속 예배자”로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이어서 요셉까지 이스라엘의 조상인 창세기 족장들은 모두 하나님을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향해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은 공식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의 삶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요셉 역시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면서 제국 이집트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쉬임 없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공동체가 없으니 요셉 개인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삶을 통한 예배였습니다.
경호 대장 보디발 가정의 총무, 감옥의 죄수를 담당하는 총무,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집트 제국의 총리까지 요셉의 삶은 말 그대로 형통했습니다.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해몽한 바로의 꿈처럼 이집트에 7년의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는 7년의 풍년 동안 곡식을 저장하면서 다가올 흉년을 대비했기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형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이집트에 보내서 양식을 구해오도록 했습니다. 요셉의 친동생 베냐민을 제외한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이집트에 내려갑니다. 그리고 요셉 앞에 절을 합니다. 그렇게 어릴 적 요셉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노예로 팔아버린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고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프로세스를 진행합니다. 요셉의 형들을 가나안에서 온 정탐꾼으로 몰아 붙입니다. 아무런 혐의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형제 중 한 명은 이집트 감옥에 남고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형 르우벤이 요셉을 팔아버린 것을 뉘우칩니다. 요셉은 감정이 복받쳐서 웁니다. 요셉은 곡식을 많이 주고, 받은 돈을 곡식 자루에 넣어서 돌려보냅니다.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 야곱을 설득해서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에 갑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과 동생 앞에서 자신이 요셉이라고 밝힙니다. 그때 요셉이 했던 말이 감동적입니다:“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 요셉은 이렇게 형들과 화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와 화해의 삶이 되었습니다(마 5:23-24).-河-
삐끗함
좋은 아침입니다.
1.
주일에 살펴보는 <성경 속 예배자>는
창세기 속 예배자로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는 야곱의 마지막 예배와
요셉이 드린 삶의 예배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집트 제국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은
겉으로 보이게 하나님을 예배할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 다니엘은 함께 간 친구가 있었지만,
요셉은 그 커다란 제국 이집트에 혼자였습니다.
신분도 노예였으니, 조금만 삐끗해도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삶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에 대한 말씀을 읽다 보면,
형들에게 은 20세겔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이
바로의 경호 대장 보디발의 집을 맡은 총무,
감옥에 갇혀서는 죄수들의 일을 관할하는 총무,
그리고 이집트 제국을 책임지는 총리로
점점 확장되면서 말 그대로 승승장구했음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주일설교에서 말씀드렸듯이
성경의 맥락을 기초로 요셉의 삶을 유추하면,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매 순간 닥쳤고,
요셉이 하나님을 부르고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일들도 다반사였을 것입니다.
수없이 삐끗하고, 좌절하고, 힘겹게 견뎠을 것입니다.
그런 날들이 모여서
창세기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한 삶”이 된 것입니다.
2.
우리 역시 하나님을 부르고 기도하면서 살아갑니다.
매우 중요하고 다급한 기도부터
하루를 하나님께 맡기는 소소한 기도까지
쉬지않고 기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도 자주 삐끗합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집니다.
기도했는데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일은 기대만큼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에 여러 가지 신앙의 고민이 생깁니다.
요셉의 일상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요셉도 이해되지 않는 시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은 깜깜한 어둠이었을 것입니다.
조급한 마음에 불평하고 한탄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때도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에게 임한 최고의 은혜는 “함께하심”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의 삐끗함을 수없이 경험하고,
스스로 시험에 들 때도 많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든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너무 쉽게 결론에 이르기보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우여곡절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기억하고 체험하기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곳저곳에서 삐끗할 수 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기도로, 삶의 예배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시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3)
하나님,
우리가 삐끗할 때 우리 손을 잡아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 목사 드림.
(2026. 4 30 이-메일 목회 서신)
2026년 4월 4주 말씀
성경 속 예배자 (10) 요셉/ 창세기 39장 1-23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