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기도

구약의 인물을 중심으로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한 가장 좋은 정의는 “하나님과 깊은 대화”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합니다. 선지자 요나가 목숨은 구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듯이 우리도 각자의 상황에서 주님을 찾을 수 있고 그 순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 대화하고 교제할 때, 다양한 방식이 있듯이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소리 내서 기도하고, 침묵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형식을 갖춰서 기도하고, 일상적인 대화식으로 기도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혼자 기도하고, 공동체로 모여서 함께 기도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기도하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특권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지 기도합니다. 시작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일하는 중간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일을 끝낸 후에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며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신앙과 삶의 길을 걷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말씀과 함께 꼭 필요한 덕목입니다.

 

오늘 살펴볼 예레미야 선지자의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조국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무너지는 순간을 끝까지 함께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살 수 있다고 온 힘을 다해서 외쳤지만, 이미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나라와 민족이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달콤한 말로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까지 득세하면서 왕을 비롯한 지도자들까지 예레미야를 핍박했습니다.

 

선지자의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나와서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힘겨웠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나와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고 예언자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고,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고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남은 5월을 기도로 마무리하고 기도로 새달을 맞이합시다.-河-

요나

 

좋은 아침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를 함께 나눴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적국이자

당시에 제국인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자신이 왜 니느웨로 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단단히 화가 난 요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니느웨 반대쪽 다시스로 향합니다.

누가복음의 탕자, 아니 꼭 청개구리 같습니다.

 

배 맨 밑에 내려가서 잠을 청합니다.

바다에 폭풍이 일어도 잠을 자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무감각과 무지를 발견합니다.

 

2.

죗값을 물어서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바다 맨 밑까지 떨어집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추락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동원해서

요나를 구하십니다. 구사일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 물고기 뱃속입니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실존입니다.

 

요나는 그 순간 기도했고,

그곳이 하나님 마음속이 되는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냈습니다.

정말 살아서 돌아온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든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예언하라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합니다.

 

니느웨에 간 요나는 설렁설렁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는데

니느웨 백성들이 귀담아듣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일반 백성들부터 시작된 회개 운동이 왕에게 확대되고

심지어 하루만 굶어도 큰일 날 가축까지 금식하면서 회개합니다.

 

언제나 회개는 하나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내리시려는 심판을 거두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 국가 니느웨까지 임한 것입니다.

 

이것을 본 요나가 화를 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대로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시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하나님께 대항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천막을 쳐 놓고 감시합니다.

요나가 하나님 머리 꼭대기에 앉은 느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요나를 설득하시지만 (요나 4장)

요나의 마지막 반응은 독자인 우리에게 남긴 채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요나서가 끝납니다.

 

3.

요나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우리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받은 은혜를 금방 잊어버립니다.

자기 생각에 꽉 들어차서 열린 사고가 불가능합니다.

나만 잘 되어야 합니다.

종종 하나님 머리 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교만합니다.

하나님 속을 엄청 썩입니다.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우리 모두 도긴개긴 현대판 요나들입니다.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 그토록 좋은가 봅니다.

 

그런데, 은혜에만 머물면 조금 감상적일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위선도 있지만, 은혜에 숨는 위선도 문제입니다.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님을 닮은 제자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원합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 4:11)

And should not I pity Nineveh, that great city, in which there are more than 120,000 persons

who do not know their right hand from their left, and also much cattle? (Jonah 4:11)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근사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하목사 드림

(2017. 5. 24이-메일 목회 서신)

 

해시태그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기술 문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단어나 용어들도 생깁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해시태그”입니다. 해시태그라는 말은 1970년대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에서 사용되던 용어입니다. 2007년에 크리스 메시나라는 사람이 자신의 트위터에 “#표시를 사용해서 (필요한 정보를) 묶어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하면서 일반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에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해시태그는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일종의 의사소통 기호입니다. 파운드로 알려진 # 기호를 맨 앞에 쓰고 강조하고 싶거나 반복되는 단어나 표현을 붙여 쓰는 일종의 표기법입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해시태그를 사용한 단어나 표현을 클릭하면 그와 유사한 자료들이 일목요연하게 검색되는 편리함도 제공합니다.

 

2007년 가을, 남가주 일대를 뒤덮었던 샌디에이고 산불을 알리는데 해시태그가 사용된 것이 유명합니다. 이처럼 해시태그는 단순히 개인의 관심사를 넘어서 사회적인 이슈를 알리거나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알리는데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미투캠페인 역시 해시태그를 통해서 소셜미디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해시태그 할 수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하면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관련된 정보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주제어에 맞춰서 분류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새벽기도회에서 마태복음 10장을 읽는 중에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부르시는 말씀을 만났습니다. 베드로부터 시작된 열두 제자의 이름은 가룟 유다에서 끝납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에게는 “곧 예수를 판 자라”는 부연설명이 붙었습니다. 가족과 친지는 물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건만 마지막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자라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았습니다. 가룟 유다를 생각하며 “#예수를판자”라는 해시태그를 붙일 수 있습니다. 영어나 한글이나 해시태그에서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를 해시태그하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책임”이라는 해시태그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조그만 이민 교회 목사로서 교회의 살림부터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까지 언제나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여기까지 목사의 자리를 지킨 것도 책임감이 제일 컸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과 아버지로서 가족에 대한 책임이 꽤 크게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저에게 맡겨진 책임을 근사하게 감당한 것이 아니기에 책임 다음에는 “#언제나부족”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여야 합니다.

 

다른 분들이 저를 두고 해시태그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를 사용할까도 생각해 보니 흥미롭고 꽤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다른 분들의 해시태그가 거울을 보듯이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아니 저에 대한 하나님의 해시태그도 궁금했습니다. 저 자신에게는 물론 이웃과 하나님 앞에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왕이면 좋은 해시태그를 받는 것이 행복한 인생일 테니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해서도 해시태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조국에서 진행 중인 남북대화가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로 이어지길 우리 모두 바라고 있습니다. 지뢰밭처럼 여러 가지 변수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그 결과를 속단할 수 없지만, 이번처럼 좋은 기회가 없기에 “#평화” “#민족통일” 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이고 싶습니다.

 

지난주에는 텍사스의 한 고등학교에서 또다시 총격 사고가 나서 여덟 명의 학생과 두 명의 교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2월 플로리다 파크랜드 고등학교 총격 사고 이후 학생들까지 나서서 총기규제를 외치고 있지만, 정부의 대처는 느리고 총격 사고는 계속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조속한총기규제”라는 해시태그를 아주 큰 글씨로 여기저기 달아놓고 싶습니다.

 

이처럼 해시태그를 사용해서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펼 수 있고 세상의 변화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나쁜 꼬리표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기분 좋은 해시태그들이 줄지어 생겨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2018년 5월 24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요나의 기도

구약성경의 요나는 독특한 선지자였습니다. 대부분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합니다. 그것은 예언자로서 자격상실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니느웨의 반대쪽에 있는 먼 도시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배편을 알아보니 마침 배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낯을 피해도 자신에게 아무 일이 생기지 않은 것에 안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린 셈입니다. 그러면서도 배 밑에 내려가서 혼자 잠을 청한 것은 보통 배짱이 아닙니다. 그때 바다에 폭풍이 일었습니다. 폭풍이 거세지면서 선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결국, 잠을 자는 요나를 깨웠고, 누구의 잘못으로 폭풍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제비를 뽑자 요나가 걸렸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폭풍이 일어난 것이 자신 때문임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먼 곳으로 도주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지자 요나에게 여전히 신앙 양심이 살아있었습니다. 선원들에게 자초지종을 모두 얘기하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폭풍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자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낯을 피하며 자신을 떠난 요나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따라가셔서 구원하시고 다시금 선지자의 자리로 부르시려는 의도입니다. 요나는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냈습니다. 요나는 두 번째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요나가 사흘 동안 지냈던 물고기 뱃속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었습니다. 폭풍에서 구해졌지만, 여전히 물고기 뱃속이니 그의 앞날이 불투명합니다. 요나서를 읽는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물고기 뱃속에 갇힌 요나는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습니다. 여전히 불안한 현실입니다.

 

그 순간 요나는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요나서 2장에 나오는 요나의 기도는 바닷속 깊은 곳으로 떨어지다가 구원받은 요나의 마음과 상황,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주 자세히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고백으로 기도가 마무리됩니다.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고 구원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요나의 기도 속에서 어느 것 하나 확실치 않은 나그넷길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한 달 동안 간절히 기도합시다! -河-

기도로 사는 한달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교회의 사역은

아주 적극적인 편이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도 커다란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형식은 반복되지만

“내용”의 변화를 위해서 저 나름 무척 애를 씁니다.

물론, 늘 부족해서 저만 알아차릴 때가 많지요 ㅠㅠ

 

매년 한 달은 기도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부활절이 지난 4-5월에 전하면서

부활절을 산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성령강림절의 열정과 그 이후의 삶을 기도로 살기 원했습니다.

 

형식과 제목은 <기도>였지만,

기도의 인물을 살피고,

참빛 식구들이 힘드실 때는 “간구와 기도의 능력”을

여유가 있으신 것 같으면 “이웃을 위한 기도”를

물론 기도의 기본(첫 단추)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10여 년을 매년 기도에 대한 말씀을 준비했으니

이제 기도에 대한 주제는 거의 다룬 셈입니다.

그래도 기도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기도야말로 “앎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한나, 요나, 예레미야, 다윗의 기도를 나눕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진솔하고, 간절히 드리는

내면의 깊은 기도를 본받기 위함입니다.

 

2.

기도를 생각하면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고 응답받는 “간구”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지경은 높고, 깊고 넓습니다.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서

그동안 살펴보았던 사도신경의 삼위 하나님을 만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전능하신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보혜사 성령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고

우리의 이름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능력을 구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삼위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예수의 사람,

성령에 사로잡힌 능력의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기 원합니다.

 

기도는

앎에서 삶으로

그리고 자라감(변화)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3.

기도합시다.

 

꼭 교회에 나오고, 무릎을 꿇고, 형식을 갖추지 않아도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실제로 기도하면서 한 달을 살기 원합니다.

 

간구하는 기도와 응답을 넘어서

우리가 믿는 삼위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중세의 프랑스 수도사 클레르보 버나드의 기도문을 갖고

우리도 오늘 하루 간절히 주님을 갈망합시다.

 

오 생명의 떡이신 주님, 우리가 주님을 맛보며

여전히 주님으로 즐거워하기를 갈망하나이다.

생의 근원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영혼의 갈증을 채우기 원하나이다.

 

하목사 드림

(2017. 5. 17이-메일 목회 서신)

구약의 기도

앞으로 한 달 동안 살펴볼 2018년 기도에 대한 연속 설교는 구약성경 속의 기도입니다. 한나의 기도로 시작해서, 다윗의 시편 기도, 요나와 예레미야의 기도를 나누면서 우리의 기도 생활을 돌아보고, 올 한해를 기도로 살기 원합니다.

 

구약의 기도가 갖고 있는 특징은 단지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약 속에 나타난 기도는 대부분 하나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과 직접 관련되거나 이스라엘을 위해서 드린 중보 기도입니다. 양을 치는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이 꼭 필요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보시고 그들을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세상 속에서 주님의 빛이 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락에 해당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족들과 편안히 살고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가뭄을 피해서 이집트로 내려갔다가400동안 노예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들을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서 이방 신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할 민족이 하나님을 떠났으니 그들의 삶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외부적으로 열강들 틈에서 한 시도 편할 날이 없었고, 내적으로 가나안 땅의 우상을 받아들이면서 심하게 부패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에는 기도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와 조카 롯을 위해서 기도했고,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예레미야를 비롯한 예언자들은 무너지는 이스라엘의 신앙 회복을 위해서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를 들으셔서 때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하시고, 때로는 하나님 앞에 깨어있던 기도의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시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창조해 가셨습니다.

 

오늘 살펴볼 한나의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통곡으로 드린 기도입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갑절로 사랑했지만 남편의 사랑으로 해결되지 않았기에 슬픈 마음을 가진 한나는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깊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아들 사무엘(“들으심”)을 주신 것입니다. 사무엘은 훗날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자 예수님의 조상인 다윗을 왕으로 세운 인물입니다.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절망 가운데 있었던 한나에게서 이스라엘 역사에 남을 인물이 태어난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누리고 맛볼 수 있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가기 원합니다. -河-

은밀한 중에 보시는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새벽기도회에서는

구약성경에 이어서 마태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산상수훈의 한가운데

마태복음 6장에는 온전한 신앙의 모습과

신앙의 길을 가는 자신의 백성을 책임지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등장합니다.

 

온전한 신앙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은밀함입니다.

 

2.

예수님께서

자랑하기 쉬운 세 가지 신앙 행위를 예로 드셨습니다.

 

구제할 때에

사람들 앞에서 나팔을 불며 자랑하지 말고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큰 거리로 나가지 말고

골방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의미없이 이말 저말을 길게 기도함으로

기도를 많이 하는 척할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따라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이웃을 용서하고 화해할 일이 생각나면

먼저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금식할 때에

일부러 슬픈 기색을 보이면서 자랑하지 말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외모를 단정히 꾸며야 합니다.

 

3.

구제, 기도, 금식을 실천하면서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상을 다 받은 셈입니다.

 

온전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행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밀월(蜜月, honeymoon)입니다.

 

남에게 자랑하고 싶을 때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웬만한 신앙 내공이 아니면 지키기 힘듭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에 들어갔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행하고

은밀한 중에 보시고

은밀히 갚아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태 6:1)

“Beware of practicing your righteousness before other people in order to be seen by them,

for then you will have no reward from your Father who is in heaven. (Matthew 6:1)

 

하나님 아버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 5. 10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