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씀이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3월 중순 트럼프 정부는

내년도 미국 예산안을 발표했습니다.

의회의 승인을 남겨두고 있지만

발표한 예산을 보면 트럼프 정부가

장차 국가의 재정을 어디에 쓸 것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

국방, 안보, 재향군인회를 제외한 모든 예산을 삭감했습니다.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애프터 스쿨 프로그램, 대학생 보조,

노인 복지와 같은 정책을 축소시켰습니다.

 

무엇보다, 환경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미국이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서 시행하던 연구는 물론

의학 발전과 관련된 연구비도 삭감했습니다.

 

국방비는 10%(증가분이 미국 전체 교육비에 육박하는 523억 달러)가 늘어서

여전히 정부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1년 예산은 4조 달러 정도이고  그 중에 3조는 사회복지, 메디케어, 국가 부채 이자상환 등

필수적으로 지출되는 예산이고, 나머지 1조 정도를 정부가 임의로 조절할 수 있음)

 

또한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기 위한 초기비용으로

26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습니다.

환경청 예산 삭감과 정확히 일치하네요.

후손들을 위해서 환경정책이 매우 중요한데 말입니다.

 

트럼프 정부의 예산을 보면서

어머 어마한 국방예산 수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미국은 5,740억 달러(574조원)의 국방예산을 잡아 놓았습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는 중국의 세 배에 해당합니다.

 

지구촌에 전쟁과 테러가 사라진다면,

강대국들이 평화협정을 맺고

무기감축 협정이라도 서명할 수 있다면,

엄청난 국방 예산을 더 의미 있는 일에 배정할 수 있을 텐데요.

꿈같은 일이겠지요!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저소득층과 노인층 의료와

사회보장을 위해서 지출하는 예산 비율이 높고

이 예산은 우선 집행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2.

국가의 씀씀이뿐만 아니라

우리의 씀씀이도 중요합니다.

 

하나님 주신 물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주어진 재능과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우리의 신앙과 마음 씀씀이는 어떤지요?

행여나 힘을 과시하고, 욕심을 채우고, 남을 미워하는 것에

에너지를 쓰고 있지는 않은지요?

 

사순절을 보내면서

잠깐 멈춰서 우리의 씀씀이를 점검해 보기 원합니다.

 

세상에 평화가 임해서

싸우고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파괴하는데

큰돈을 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미가 4:3-4) He shall judge between many peoples, and shall decide for strong nations afar off; and 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 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more; but they shall sit every man under his vine and under his fig tree, and no one shall make them afraid, for the mouth of the Lord of hosts has spoken. (Micah 4:3-4)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씀씀이가 주님 앞에서 떳떳하게 하시고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 평화를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30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5: 시편 134편

지난 10월부터 시작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열다섯 편의 시편 나눔이 오늘로 마무리됩니다. 주보와 함께 드린 <예배에 올라오는 마음가짐>을 성경책 앞이나 책상 등에 붙여놓고 주일이 다가올 때마다 한 번씩 읽고 예배를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환난 중에 성전에 올라오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말씀(시편120편)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가서는 안 되는 게달과 메섹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가 그릇된 일이었음을 회개하면서 성전에 올라왔습니다. 그 이후로 14편의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는 하나님 백성의 삶의 현장,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옛날부터 계속된 마음의 짐과 상처 등 하나님 백성의 신앙과 삶을 있는 그대로 노래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마지막은 하나님을 향해서 송축하는 찬양입니다. 세상의 장소인 게달과 메섹으로 시작해서 주님께서 계시는 시온 즉 예루살렘 성전으로 끝을 맺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노래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유진 피터슨은 본문을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복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궂은 날이든 맑은 날이든, 좋은 땅에서든 나쁜 땅에서든 은혜를 경험하며 믿음의 여정을 가는 사람들은 송축하는 일에 익숙하다.” 유진 피터슨의 말대로 은혜를 경험하면 세상살이에 여유가 생기고 자신의 삶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꿋꿋하게 헤쳐 나갈 것입니다. 일이 잘 풀려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결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은혜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책임지는 인생을 삽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물론 이웃과의 관계, 세상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사명이기에 –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알기에 – 매사에 성실하게 임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삶을 대하고 마음 깊은 곳에 평안과 감사가 있습니다. 어떤 인생길을 걸어가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되길 간구합니다. 주님을 송축하는 삶입니다.

 

시편 134편에서 밤에 성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성전을 지키는 레위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밤에 성전을 지키는 것이 지루하고 힘이 들지만, 이들은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했습니다. 또는 긴 여정을 지나서 밤에 성전에 도착한 순례객일 수 있습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성전에 와서 찬양하니 저절로 손이 올라갑니다. 실제로 인생의 밤을 사는 순례자일 수도 있는데, 성전에서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성전에 올라오는 우리의 발길을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평생동안 하나님 계시는 성전을 향해서 손을 들고 그곳으로 나가기 원합니다.-河-

봄이 오는 소리

올겨울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비를 간절히 기다리던 때를 잊어버린 채, 하루가 멀다 않고 내리는 비에 약간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캘리포니아의 가뭄이 거의 해갈되었다니 감사할 일입니다.

 

매일같이 흐리고 비가 올 것만 같더니 지난 주간에는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기온도 꽤 많이 올라가서 한낮에는 반소매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길가 가로수들의 가지마다 아기 손처럼 연한 잎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세상 밖으로 피어났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연두색 새잎들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계절을 좇아 어김없이 싹을 내고 한 해를 준비하는 자연 만물 속에서 신실하신 하나님도 만납니다.

 

봄은 시작의 계절입니다. 농부들은 봄철에 씨를 뿌리면서 한 해 농사를 시작합니다. 세상 만물들도 싹을 틔우면서 한해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봄은 새색시처럼 살며시 왔다가 수줍은 듯 뒷문으로 금세 빠져나갑니다. 이처럼 순식간에 지나칠 봄을 느끼려면 우리의 감각을 모두 동원해야 합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붙들어 매 놓을 수 없기에 순간순간 봄기운을 만끽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도 봄은 시작의 계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하다가 모세의 인도로 해방된 때가 봄이었습니다. 고집스러운 이집트의 바로 왕은 하나님께서 아홉 가지 재앙을 차례로 내리시는 데도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하던 히브리 민족을 쉽게 내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비극적인 열 번째 재앙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룻밤에 이집트의 장자는 물론 짐승의 첫 번째 새끼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이집트에 대재앙이 내리던 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이집트를 휩쓸고 간 죽음의 사자는 어린양의 피가 묻혀진 이스라엘 백성의 집들을 건너뛰었습니다. 유월절(逾越節,pass-over)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밤에 재산과 생필품을 모두 챙겨서 이집트를 빠져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훗날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에게 이집트에서 해방된 날을 그 해의 첫 달로 정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시작점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이 있는 첫 달을 “아빕월”이라고 부릅니다. 곡식이 싹을 틔운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달입니다. 죽음의 기운이 감돌고 압제와 학대가 판을 쳤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 왔음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신약성경의 봄 역시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더불어 찾아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에 발라놓은 어린 양의 피를 죽음의 사자가 건너뛰었듯이, 십자가위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 400년 동안 이집트에 종살이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듯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죄로부터 해방되는 자유함을 누립니다. 겨우내 땅속에 묻혀 있던 씨가 새싹을 틔우듯이 이전 것이 지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납니다. 우리는 이처럼 계절의 봄 뿐만 아니라 신앙의 봄도 매년 맞이합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순절 한가운데 서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셨습니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안에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힘있게 임하길 기도합니다.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죽음의 세력을 몰아내고, 죄에 사로잡혀 있던 옛 것들로부터 해방될 새날과 새 시대를 기대합니다.

 

새봄에는 거짓과 폭력과 죽음의 세력이 물러가고 진리와 생명과 평화의 복음이 온 세상에 임하길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봄을 마음껏 느끼고 싶습니다. 귀를 기울여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맞춰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사순절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부활의 주님을 향해서 힘차게 달려가고 싶습니다.(2017년 3월 23일 SF 한국일보 종교칼럼)

 

 

 

 

 

 

 

 

 

 

법궤

좋은 아침입니다.

 

1.

아주 오래전 스필버그 감독의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 영화에 지난 번 설교 시간에 나눴던

법궤/언약궤(the ark of covenant)가 등장합니다.

영화 제목 자체가 “잃어버린 법궤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나치가 숨겨진 법궤를 찾아서 난공불락의 세력을 구축하려고 하는데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존스 교수가 나치의 계획을 막아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모셔온 법궤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있다가

언제부터인지 성경의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혹자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모세가 죽었던 느보산의 동굴에 숨겼다고 합니다.

 

로마 성당의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

이집트 또는 에티오피아 심지어 아프리카에 숨겨져 있다는 소문까지

실제로 법궤가 어디에 있을지에 대한 설(說)이 난무합니다.

 

법궤가 없길 망정이지

실제로 법궤가 남아 있었으면

영화 속의 나치처럼 하나님 능력의 법궤를 손에 쥐려는 세력들부터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법궤를 섬기려는 종교인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2.

영어 성경에는

법궤에 해당하는 Ark라는 표현이 크게 세 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가 만든 법궤 외에도

홍수에서 살아남은 노아가 지었던 “방주”가 Ark입니다.

아기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서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모세가 들어있던 “상자”도 Ark입니다.

 

실제로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상자는

<테이바>라는 히브리어가 쓰였고

다윗이 예루살렘에 가져온 법궤는 <아-론>이라고 부르는데

방주, 상자, 법궤의 공통적인 모양인 “상자”를 뜻합니다.

 

노아의 방주는 심판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모세의 갈대 상자 역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 능력, 영광을 뜻합니다.

 

3.

마지막 날,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우리 모두는 하늘 성전에서 법궤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요한계시록 11:19)

The ark of his covenant was seen within his temple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하나님의 법궤를 찾지 못할 겁니다.

그런 시도 자체가 부질없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법궤는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왔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을 마음과 삶 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보호와 인도,

능력과 임재의 법궤를

마음과 삶 속에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지요.

 

오늘 새벽에 읽은 이사야 말씀입니다.

그가[주께서]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이사야 57:14)

And it shall be said, “Build up, build up, prepare the way,

remove every obstruction from my people’s way.” (Isaiah 57:14)

 

하나님 아버지

마음과 삶 속에 주님을 모시고

주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능력으로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23 이-메일 목회 서신)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4: 시편 133편

지난주에는 애써서 찾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온 다윗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자신의 성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옷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의 기쁨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의 특징을 기쁨과 감사라고 알려줍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기쁨이 아니라 안에서 샘솟는 기쁨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과 삶에 들어오셨다는 것 자체가 감사입니다. 멈추지 않고 죽음의 길로 치닫던 인생의 궤도를 바꿔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돌아섰다는 것이 감사입니다.

 

오늘 살펴볼 시편 133편도 춤을 출 듯이 기쁜 분위기로 시작합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 주의 백성들이 함께하는 예배가 얼마나 기쁘고 아름다운 일인지 찬양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느끼는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13:35).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 있는 가족이나 친형제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사촌처럼 가깝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한 교회에서 주님을 예배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도 같은 기쁨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었으니 서로 형제와 자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따라서 시편 133편의 기쁨은 공동체 속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는 성령 충만합니다. 기름이 머리부터 옷 깃까지 흘러내립니다. 여기서 기름은 풍성함, 능력 그리고 은혜의 상징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이나 왕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흘러 넘치게 부었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으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제사장이었습니다. 모세가 아론을 제사장으로 기름 부을 때 임했던 기쁨이 성전에 올라온 모든 백성에게 흘러가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헐몬 산은 해발 2,700미터쯤 되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아침이 되면 헐몬 산에 이슬이 흠뻑 내립니다. 그 이슬이 이스라엘의 모든 산을 적셔줍니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 날마다 내리는 새벽 이슬은 생명수입니다. 교회 안에 이슬같은 생명의 은혜가 소리 없이 내리길 기대합니다. 우리 모두 영생의 복을 향해서 함께 걸어가는 신앙의 순례자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기뻐하시는 공동체로 자라길 원합니다.-河-

소망

좋은 아침입니다.

 

1.

2주 전 수요 예배를 마치고

권사님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안내 데스크에 서 있으면서

자연스레 거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근래에 머리숱이 많이 적어졌습니다.

가운데 머리가 훤합니다.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눈치가 빠르신 한 권사님께서

희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목사님, 염려하지 마세요.

한국의 부분 가발이 아주 좋으니 그거 사용하시면 돼요.”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아- 부분 가발이 있었구나”

 

이 지점에서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버님을 닮은 것 같으니 머리가 많이 빠질 텐데

그냥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권사님께서 알려주신 부분 가발을 사용해서

외모를 치장할 것인가?

 

이 모습 그대로 가는 것

즉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원래 제 생각이었는데

“부분 가발”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외모에 변화를 주고 싶은 충동(?)이 생긴 것입니다.

 

아무래도 젊어 보이면,

생동감 있게 미래를 맞이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직은 제 머리 상태가 괜찮습니다.^^

거기에 부분 가발이라는 든든함까지 있으니

머리숱이 없어져도 안심이 됩니다.

 

2.

지난주에는 시편 132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전에 함께 하셨던 은혜 (하나님의 법궤)를 찾아 나서는 것,

과거에 만났던 하나님을 현재에 모심으로 확신과 자신감을 얻는 것

앞길을 인도해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고,

미래로 이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앞을 향하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가 중요합니다.

 

미래는

무한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가능성이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며 기대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과거를 다시 발견하고 현재를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꿈을 꾸시는

참빛 식구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참빛 식구들 한 분 한 분께

주님의 꿈을 보여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든든한 배경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여정을

끝없이 이어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편139편 9-10절)

If I take the wings of the morning and dwell in the uttermost parts of the sea, even there your hand shall lead me, and your right hand shall hold me.(Psalms 139:9-10)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서 꿈을 꾸는 참빛 식구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7.3.16 이-메일 목회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