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녀들”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는 마지막 시간입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우리가 전에는 어둠이었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참빛되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심으로 빛이 된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빛의 자녀라고 부르면서 빛의 열매를 맺으라고 부탁합니다. 이처럼 에베소서 5:8-9절에서는 어둠에서 빛으로, 빛의 자녀에서 빛의 열매로 유사한 단어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면서 우리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으며, 빛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빛의 열매를 뜻하는 세 가지 덕목들인 <착함> <의로움> <진실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 가지 덕목들은 하나님의 속성이자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이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함은 물론,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도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빛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즐기라고 빛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를 빛으로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빛을 등경아래 숨겨놓으면 안 됩니다. 등경 위에 올려놓고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성경에서 세상을 어둠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영역입니다. 아니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어둠입니다.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예수님께서 빛을 비춰주셔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는 곳은 어둠이 물러가고 밝은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 신앙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교회 안에서는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빛을 비추려고 경쟁할 이유도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세상 속에서 빛이 되기 위해서 준비할 뿐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에베소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장은 어떻게 빛의 자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후반부인 4-6장은 빛의 자녀들의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반부가 이론이라면 후반부는 적용인 셈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의 동료들 간에 거짓없이 진실되게 지내야 합니다. 주님의 공동체인 교회를 한마음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들, 부부간에 빛의 자녀답게 서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가정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최고의 장(場)입니다. 부부간에 사랑으로 대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존경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일터에서도 빛의 자녀들의 삶이 드러나야 합니다. 직장 속에서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주님께 하듯이 동료들을 대하고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시간을 아끼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그 비결이 성령 충만인데, 그때 빛의 자녀로서 최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河-
Author: 참빛
열정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류집사님 초청으로 <beGlobal 2015>라는
스타트-업 회사들의 발표회에 다녀왔습니다.
류집사님의 비손 콘텐츠는
톱 10회사 가운데 하나로 뽑혀서 발표까지 했습니다.
자랑스러웠습니다.
그곳에 가니
저처럼 50대로 보이는 분들을 만나면 반가울 정도로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새롭게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분들과
유망한 회사를 찾으려는 투자자들까지
눈들이 반짝 반짝하고 열정이 넘쳐 보였습니다.
무한경쟁의 스타트-업 세상에서
수익을 올리고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아이디어와 비전, 그리고 열정을 갖고 도전하는
젊은이들 가운데 있으니 그 열기가 제게도 전해 지는 듯 했습니다.
2.
무엇이든지 열정(passion)을 갖고 임하는 것은
가치있고 멋진 일입니다.
성패가 어찌 되었든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고
자신의 꿈과 열정을 펼쳐보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속에서부터 타오르는 열정입니다.
제가 예전에 읽었던
그렉 로리(Greg Laurie)목사님의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지난 주에 빛의 자녀들이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서
성령충만해야 한다는 말씀과 같은 맥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감정적으로 느끼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실제로 힘이 있습니다. 감정적인 느낌이 온다면 그것도 마음껏 누리십시요. 하지만 행여나 특별한 느낌이 없다고 주춤거리지 말고,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을 그대로 행하십시오.” (Greg Laurie, Passion for God, 23)
God didn’t pour out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to make us feel something but to help us accomplish something. God’s power is practical power. Enjoy the good feelings when they happen, but don’t let the lack of feelings prevent you from stepping out in the power of the Spirit to do what God wants you to do.
그렉 로리 목사님은 다이나마이트(dynamite)와 발전기(dynamo)를 비교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어떤 때는 다이나마이트처럼 폭발적으로 임하지만
대부분은 발전기처럼 지속적으로 임한다고 말합니다.
폭발적이든지,
은근하고 지속적이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충만하길 원하시고
그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
하나님께서 부르신 세상을 향한 열정,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마음에 간직하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서
열정적으로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열정,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15 이-메일 목회서신)
약이 되는 말
좋은 아침입니다.
1.
오늘은 한국 시간으로
10월 9일 한글날입니다.
세종대왕께서 모든 백성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하신 지 569주년이 되었습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우리 말 한글은
말도 예쁘고, 소리를 내는 입모양도 좋고
자음과 모음으로 거의 모든 소리를 표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종대왕께서는
일반 백성들에게 글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한글 창제를 포기하지 않으셨다고 전해 집니다.
요즘은
한글이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한글이 망가지고 있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한글이 확대발전하고 있다고 하는 논쟁도 있는데
이왕이면 아름다운 한글을 잘 보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글,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 그대로 말입니다.
2.
요즘 수요예배에서 배우는
잠언에서는 유독 입술의 말에 대한 교훈이 많이 나옵니다.
글 뿐만 아니라
입술로 하는 말도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겠지요.
어제는
잠언에 자주 나오는 세 가지 표현들인
“마음” “말” “길”을 자동차 운전에 비유해서 설명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엔진이고
길이 자동차가 달려야 할 도로이자 목적지라면
말은 운전대와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엔진이 고급이고
가야할 목적지가 분명하고 길이 평평해도
똑바로 운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야고보서에서 혀를 배의 키에 비유했는데
우리들 입술의 말이 바로 자동차의 운전대와 비슷하기에
말에 대해서 그토록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3.
잠언 15장 4절에서
온순한 혀는 생명나무라고 했습니다.
(a gentle tongue is a tree of life).
여기서 “온순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의미 속에는
“치유하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말 속에 치유기능이 있다는 것은
그 동안 많이 경험했습니다.
누군가 해 주는 말 한 마디에 위로받고
힘을 얻습니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 속에서도 왠지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러고보니 온순한 혀는 잠언 말씀 그대로
생명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잠언 15장 22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도 있습니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To make an apt answer is a joy to a man,
and a word in season, how good it is!
때에 맞는 말은
경우에 맞게, 적절하게 하는 지혜로운 말입니다.
어디 말만 그렇겠습니까?
한글날인데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쓰는 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의바르고 격에 맞는
글을 쓰고
말을 하는
빛의 자녀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가 쓰는 입술의 말이
우리들 자신은 물론 이웃을 살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8 이-메일 목회서신)
에베소서 (15) : 빛의 자녀들 3
“빛의 자녀들”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빛과 어둠을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졌다고 알려줍니다. 어둠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고집과 욕심대로 행하던 상태입니다. 어둠 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수 없습니다. 반면에 빛은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들어온 상태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비추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빛이 되었습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착함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다면 사람들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착하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의로움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른 상태입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의 의로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그 은혜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죄의 구름이 걷히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상태가 의로움입니다. 진실함은 거짓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참된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 역시 진리의 영입니다. 이처럼 삼위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참됨(진리)입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 역시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튼튼하고 세상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 세 가지를 그리스도인의 표지(마크)라고 말합니다.
빛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물론 완벽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빛의 자녀가 되었지 행동이나 업적으로 빛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답게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빛의 열매를 맺으려는 마음과 의지가 강력합니다. 교회로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교회에 모여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봉사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준비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믿은 것에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길 소망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어린아이의 신앙을 벗고 그리스도를 충분히 닮은 빛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사랑 안에서 모든 참된 것을 행하는 멋진 그리스도인들로 세워줍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훈련소와 같고,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와 같습니다.
빛의 자녀들인 성도들은 교회의 예배와 배움에 기쁨으로 참여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서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리스도에게 이르도록 자라갑니다. 그래서 교회를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더불어 살아가고 함께 주님을 찬양하는 빛의 자녀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으로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입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고 자라가는 모임입니다. 그 안에서 주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할렐루야.-河-
에베소서 (14) : 빛의 자녀들 2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시리라(Christ will shine upon you)”-에베소서 5장 14절 말씀이 지난 주일 내내 생각났습니다. 우리 지역에 비가 오지 않아서 걱정이지만, 대신에 한 낮에 밖에 나가면 따가운 태양 빛이 온몸을 내리 쮭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캘리포니아의 햇볕입니다. 그때마다 우리 주님께서 비추신다는 지난 주일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추시니 어둠이 빛이 되었습니다. 이제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지난 시간에 배운 빛의 열매들입니다. 세 가지 열매가 우리 신앙과 삶에 있다면 우리로 인해서 어두운 세상이 밝아질 것입니다. 빛의 열매를 맺으면서 빛의 자녀로 사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삶이면서 세상을 밝히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시기에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둠에 있을 때 참빛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심으로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외인(outsider)이 아니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엡2:19).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자동으로 편입된 것입니다. 빛은 혼자 있을 때보다 모여 있을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빛의 자녀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라고 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워 놓으신 하나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빛의 자녀들의 모임이기에 교회에 힘이 있습니다.
공동체 속한 빛의 자녀들은 몇 가지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첫째는 배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12절에서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을 두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을 배우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敎會)는 말 그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모임 즉 학습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봉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 속에서 배운 대로 행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적합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받은 은사대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빛의 자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렇게 배우고 봉사하고 교회를 세우면서 온전한 신앙을 가질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장성한 신앙입니다. 반대로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봉사의 일을 하기 힘들고 쉽게 지칩니다. 어린아이 신앙을 갖고 있으면 사람의 속임수나 간사한 유혹에 빠지기 쉽고, 세상 풍조에 밀려서 신앙과 삶이 요동칩니다 (14절). 장성한 신앙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합니다(15절). 참된 것만 행한다면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인색한 신앙이 되기 쉽고 자칫 남을 판단하다가 자신은 물론 공동체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참과 거짓은 분별해야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사랑으로 감싸야 합니다. 이렇게 진실함과 사랑을 겸비할 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각 마디가 도움을 주고받을 정도의 친밀함이 있어야 합니다. 함께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의 참된 모습입니다. -河-
에베소서 (13) : 빛의 자녀들 1
지난주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걸작품으로 지으셨고, 우리가 행하고 걸어가야 할 선한 일들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그런데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말씀에 발이 묶여서 미리 예정해 놓으신 특정한 선한 일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한 일을 특정 직업 또는 어떤 일에 한정해 놓아서 범하는 실수입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사람들과 세상에 유익을 끼치는 일입니다. 일을 하는 당사자에게 기쁨과 감사가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선한 일을 찾기 보다 우리가 하는 일을 선한 일로 바꾸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는 말씀도 나눴습니다. 참빛 식구들께서 하시는 일들이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들로 승화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시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고국의 소년 소녀 가장 초청 프로그램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무명으로 헌금해 주신 성도님들의 선한 마음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원래는 우리가 매월 돕는 초록우산을 통해서 초청하려고 했지만 행정적인 이유가 생겨서 서로 양해하고 다른 채널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과정을 지혜롭게 중재해 주시고 소통해 주신 담당 권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초청팀과 기획 위원들이 논의 한 결과 한국의 교회들을 통해서 신청서를 받고 우리가 직접 프로그램에 적합한 청년들을 선발해서 초청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교회 초청팀에서 신청서도 준비하고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의 글도 준비해서 서울에 있는 한 교회에 신청서를 보냈습니다. 어떤 청년들이 초청에 응할지 기대가 되고 저절로 기도가 나옵니다.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함께 기도하면서 선발 과정을 지켜보고 청년들을 맞을 준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 학업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을 우리 교회가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계획 중인 초청 일자는 2016년 1월 마지막 주입니다. 우리 교회가 추진하는 소년소녀 초청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고국의 어려운 젊은이들을 섬기는 선한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앞으로 3주 동안은 <빛의 자녀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게 됩니다. 에베소서에서 알려주는 빛의 자녀들의 성품과 삶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우리들 각자가 어떻게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5장 8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고 선포합니다. 빛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상태,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로 구원받음으로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세 가지 빛의 열매를 소개합니다. ”모든 착함, 의로움, 진실함”입니다. 빛의 자녀는 선한 마음을 갖고 선하게 삽니다.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바른길을 걸어갑니다. 무엇보다 진실해야 합니다. 참빛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 빛을 비춰 주십니다. 주님의 빛을 세상에 그대로 비추시는 참빛 식구들 되시길 바랍니다. -河-
정직
좋은 아침입니다.
1.
기업가 정신 가운데 하나가
정직입니다.
성공적인 기업이라고 해도
정직하지 않은 경제행위를 통해서 이익을 내고
더 나아가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를 했다면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요즘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폭스 바겐이
배기가스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엔진에 고성능 소프트 웨어를 설치해 놓은 것이 탄로가 났습니다.
미국의 높은 환경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디젤 엔진에 몰래 소프트 웨어를 설치해서
슬쩍 검사를 통과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단지 법을 속인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소비자들을 속였습니다.
천문학적인 리콜비용과 보상액이 예상되는데
사회적 책임을 가진 기업으로 당연히 지불해야 할 대가입니다.
2.
요즘 수요예배에서 읽고 있는
구약성경의 잠언에서는
‘정직’을 무척 강조합니다.
공평한 추, 공의, 바른 판단
– 정직과 관련된 말씀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정직은 솔직함입니다.
잘못한 것을 속이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아니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입니다.
이번 폭스 바겐의 경우
처음에는 사장이 나서서 발 뼘을 하다가 일이 더 커졌습니다.
검사하는 기준은 물론 소비자까지 속였으니
정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속임수를 두고 “패역(거짓사/사기)”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정직은
겉과 속이 같은 것입니다.
겉은 번드르하지만
속이 문제라면 그것은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속과 겉은 물론
처음과 끝이 같은 것이 정직입니다.
정직은 끝까지 옳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직은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힘들면 힘든대로 벌거벗은 몸으로
감사하면 감사한 대로 은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정직입니다.
잠언에서 정직에 대한 말씀을 몇 구절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 바른길로 가지만, 사기꾼은 속임수를 쓰다가 제 꾀에 빠져 멸망한다.(잠11:3)
정직한 사람이 축복하면 마을이 흥하고, 악한 사람이 입을 열면 마을이 망한다. (잠11:11)
어리석은 사람은 속죄제사를 우습게 여기지만,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린다.(잠14:9)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잠23:16)
왕이 가난한 사람을 정직하게 재판하면, 그의 왕위는 길이길이 견고할 것이다.(잠29:14)
3.
10월의 첫째 날입니다.
이제 올해도 세달 남았네요.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도 많이 있고
마음가짐도 가다듬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정직”을 우리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고,
사람들의 신용까지 얻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직한 신앙은 맑고, 홀가분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잠15:8)
The sacrifice of the wicked is an abomination to the LORD, but the prayer of the upright is acceptable to him. (Pro 15:8 ESV)
하나님 아버지,
정직함이 우리들 마음과 행동
그리고 삶 전체에 깊이 뿌리 내리게 하옵소서.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10.1 이-메일 목회서신)
빛의 자녀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전화에 교회 전화를 연결해 놓아서
교회로 오는 스팸이 모두 제게 걸려옵니다.
웬만해서는 낯선 전화를 받지 않고
광고 전화의 경우 곧바로 블록을 시켜 놓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전화가 걸려왔는데
발신지가 Des Moines, IW입니다.
(일단 영어로 쓴 것을 양해주세요)
이곳은 아이오와주의 수도입니다.
작년 아이오와 집회에 갔을 때
내렸던 공항이기도 한데
발음이 매우 어려운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행기를 타서 조종사의 방송을 듣기까지
당연히 “데스 모이네스”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나오는 도착지 정보가 영- 생소한 것입니다.
“데(‘더’가까움) 모-인”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 사람들이 세운 도시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지명이 생겼는데
“수도승들(the monks)”라는 뜻입니다.
프랑스어를 알면 몰라도
Des Moines를
“데 모인”으로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2.
미국에 살다 보면 영어가 큰 골치거리입니다.
살면 살수록 영어가 안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도 10년 한인 목회하면서
영어를 쓸 기회가 없으니
영어가 눈에 띄게 퇴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괜찮습니다.
발음이 좋지 않아도
웬만큼 의사소통할 수 있으면 되고
모국어가 아니니 어려운 발음이나 표현이 나오면
그때그때 배워나가면 됩니다.
창피를 당할 때도 종종 있지만
현장을 떠나면서 “씨-익” 웃고 넘어가는 담대함도 필요합니다.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잘 메모해 두면 더 좋고요.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실제로 영어를 못해도
우리는 여전히 빛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발음 여부에 상관없이
주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십니다
(Christ will shine on you).
정말 중요한 것은
빛의 자녀로서
“선하게, 의롭게, 진실되게” 사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행여나 오늘 지내면서
영어로 인해서
꼭 영어가 아니어도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으셨다면 툭툭 털고 일어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비추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미 빛의 자녀이십니다.
우리가 진짜로 부담을 느껴야 할 것은
빛의 자녀로 빛의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시니
거뜬히 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8-9)
Now you are light in the Lord. Walk as children of light;
for the fruit of light is found in all that is good and right and true.(Eph 5:8-9)
하나님 아버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빛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24 이-메일 목회서신)
배려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운동경기를 좋아합니다.
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직접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줄어갑니다.
(이번 주일에 우리 교회와 스탠포드 연구원들팀과
축구경기가 있는데 잠깐이라도 뛸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설레입니다)
요즘도 짬짬히 운동경기를 시청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게됩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야구선수들,
예전에 박찬호, 김병현
요즘은 류현진, 추신수, 강정호등이 엔돌핀을 돌게 하는 한국선수들입니다.
올 해는 피츠버그 강정호선수의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챙겨보곤 합니다.
저는 이 선수가 한국에서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는데
피츠버그 팀에 와서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해서 신인상 후보까지 거론될 정도입니다.
미국에 진출한 첫 해에 강정호 선수가 운동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에 처음 와서 적응하던 생각도 나고
언어나 습관이 다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경험도 떠오르면서
응원을 넘어서 감정이입까지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강선수가 무릎을 크게 다쳤습니다.
곧바로 수술을 했고 앞으로 6-8개월의 회복기간이 필요하답니다.
경기 중에 상대방 선수가
심한 태클을 하면서 무릎을 쳤고
그라운드에서 한참동안 일어나지 못하더니
시즌을 접는 큰 부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승부를 건 운동경기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배려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동업자 정신이라고 하지요.
2.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운동경기 만큼이나 거칠기 이를 데 없습니다.
때로는 인정사정을 보지 않는 심한 경쟁에 휩쌓이기도 합니다.
승자만이 살아남고 대우받는 사회풍토는 점점 더 경쟁을 부추깁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다보면
채이고, 속고, 손해보고
때로는 몸과 마음이 심하게 다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라면
신사적으로 살아야겠지요.
남을 배려하고, 규칙을 지키고
손해를 보더라도
더불어 함께 사는 상생(相生)을 꿈꿔야 할 겁니다.
지난 주일에 배웠듯이
선한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상처받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푸념이 나오고 털썩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일어나야지요.
멈추지 말고 경기장에 들어가야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선한 일을 하라고 세상에 보내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
이웃을 배려하면서 신사적으로 삽시다.
힘들고 지칠 때는
쿰(히브리어, arise)하고 일어나서
주님 주신 길을 걸어갑시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참빛 식구들을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For we are hi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for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beforehan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Eph 2:10)
하나님 아버지,
세상 속에서 선한 일을 하면서
주님의 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에게 힘을 주시고
언제나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17 이-메일 목회서신)
지혜가 부른다
구약성경은 토라라고 불리는 모세오경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록한 역사서, 지혜문학이라고 불리는 성문서와 예언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한가운데 성문서가 위치한 셈입니다. 욥기부터 시작해서 아가서로 끝나는 다섯 권의 성문서들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욥기는 선한 사람도 고난 받을 수 있는 세상의 현실을 고발합니다. 시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 즉 하나님 백성의 예배입니다. 전통적으로 솔로몬이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나머지 세 책은 하나님 백성들이 걸어가는 인생 여정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젊었을 때 기록했다는 아가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 지 알려줍니다. 전도서는 노년의 솔로몬이 지나온 인생을 조망하면서 젊었을 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충고합니다. 아등바등 힘들게 살아봐야 인생사가 도찐개찐이고 헛될 뿐이니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누리면서 기쁘게 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내려다보면서 작은 것들에 연연하지 말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큰 걸음으로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가장 지혜로울 때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잠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구체적인 교훈입니다. 잠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크마’는 일반적인 의미의 지혜를 넘어서 삶 속에서 요청되는 재능 또는 기술까지 포함합니다. 잠언의 지혜가 매우 실용적임을 뜻합니다. 잠언 속에는 현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씀들로 가득합니다. 손이 게으르면 가난이 밀려옵니다. 입술을 지키지 못하고 함부로 험담하거나 필요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속이는 저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지만 공정한 추는 기뻐하십니다. 이처럼 잠언은 구절마다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한두 구절을 따로 떼어서 읽어도 말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원래 고대 근동의 잠언 또는 지혜 교육은 왕궁에서 이뤄졌습니다. 왕을 비롯해서 고관대작들의 자제들이 유명한 지혜 교사를 모셔서 과외를 받는 식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의 잠언은 교육의 자리를 가정으로 옮겨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잠언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때로는 사람처럼 의인화된 지혜가 서민들이 사는 시장통에서 그들을 부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잠언의 마지막 장은 현숙한 여인으로 끝이 납니다. 가부장적인 고대시대에 여인의 삶을 높이 평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잠언속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잠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크마’도 여성명사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잠언은 특정 계층을 향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지혜로 초대합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 잠언의 묘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잠언 말씀은 통쾌합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가졌던 애매함이 잠언에 오면 모두 풀어집니다. 악인과 의인을 대조하면서 악인에게는 화가 임하고 의인에게는 복이 임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인과응보의 신앙입니다. 신앙의 길을 단순하게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현재는 복잡해 보여도 끝이 있다는 종말론적 의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잠언은 또한 세상의 삶을 긍정합니다. 재물을 갖고 친구를 사귀랍니다. 재물이 많으면 아무래도 세상에서 편하게 살 수 있고 그것 역시 복이라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지나친 부는 도리어 화가 됩니다. 말을 절제하고 좋은 사람을 사귀고, 부지런히 일하면 살맛 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라면 세상 속에서도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구약 성경 잠언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나 기도에 대한 교훈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 장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빗장을 단단히 걸어놓고 시작합니다. 잠언말씀이 실제적이고 때로는 현세적으로 보여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백성들의 거룩한 삶입니다. 잠언의 지혜가 우리를 부릅니다. 올가을에는 잠언 말씀을 차근차근 묵상하면서 하늘의 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5년 9월 24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