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영웅들 1: 오바댜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의 결과에는 시작이 있고, 그 시작이 이어져서 마침내 그 일이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천리 길을 모두 걷고 난 다음에는 첫번째 발걸음이 잊혀집니다. 이것이 세상의 순리인 것을 구약성경 전도서가 알려줍니다. 어떤 마을에 강력한 군사가 쳐들어왔을 때, 그 마을에 사는 가난한 지혜자가 마을을 구했습니다. 적들이 물러간 후에 마을의 숨겨진 영웅인 가난한 지혜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전 9:15).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연들이 주목을 받습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커다란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좋은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주인공 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조연을 떠나서 엑스트라로 영화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훌륭한 영화가 탄생하기 어렵습니다. 이들 역시 숨겨진 인물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도 숨겨진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첫번째 발걸음을 띠게 한 인물일 수도 있고, 주인공에 가려서 드러나지 않지만 성경 속에서 꼭 필요한 인물들입니다. 지나치기 쉬운 인물들입니다. 저는 그런 인물들을 ‘숨은 영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달 동안 성경 속에 있는 숨은 영웅들의 삶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어떤 인물들은 비교적 유명해서 낯익은 이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역할을 다시 한번 자세하게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어떤 인물들은 말 그대로 숨겨져서 기억조차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고,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에서는 이들을 영웅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숨겨진 영웅은 오바댜입니다. 오바댜는 “주님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엘리야 시대에 왕궁에서 고위 관리가 되었습니다. 바알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믿는 선지자들을 박해했던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 밑에서 국가의 살림을 책임지는 고위관리에 올랐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성경은 그를 두고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왕상18:3)고 부릅니다. “지극히”라는 표현으로 보아서 오바댜는 하나님을 매우 열심히 믿고,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인물입니다. 한 예로 아합이 선지자들을 죽일 때, 100명을 50명씩 둘로 나눠서 숨겨주었습니다. 오바댜 시대에 대단한 용기였습니다.

 

오바댜가 아합왕과 함께 물을 찾으러 나갔다가 엘리야를 만납니다.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아합왕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오바댜로서는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들통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오바댜는 아합에게 가서 엘리야의 말을 전합니다. 이처럼 오바댜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주님의 선지자 백명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바댜야말로 숨겨진 영웅입니다. 이때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아합 왕궁에 고위 관리로 세우셨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오바댜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은밀하게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것도 귀한 일임을 오바댜를 통해서 배웁니다. -河-

그 모습 그대로

좋은 아침입니다.

 

휴가를 얻어서

가족과 함께 그랜드 캐년을 다녀왔습니다.

 

인디애나에서 샌프란으로 오는 길에

그랜드 캐년을 들렸으니

11년 만에 같은 장소를 다시 찾은 것입니다.

 

그때 고등학생, 중학생이었던

두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어느 덧 50대 중반이 되었고요.

 

11년 만에 다시 찾을

그랜드 캐년이 어떤 모습일지

떠나기 전부터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큰 기대를 갖고

한국에서 오신 누님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그랜드 캐년 진입로에 들어서니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공원에서 점심을 해 먹고,

일몰을 보겠다고 저녁 늦게까지 버텼지만

막판에 먹구름이 몰려와서 허탕쳤던 생각도 났습니다.

 

차를 주차해 놓고

캐년(“협곡”이란 뜻임)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눈 앞에 그랜드 캐년이 웅장하게 펼쳐집니다.

 

자연의 거대함, 아름다움, 신비로움

그리고 다양함까지

감히 우리 인간이 다가서기 힘들 정도로 웅장합니다.

 

아이들도 크고

우리 부부도 조금 나이가 들어서 변한 보습으로 다시 찾아왔지만,

그랜드 캐년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제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고

아니 아주 천천히 변하는 자연 앞에서

우리 인간은 참 연약하고 왜소해 보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번갈아 찾아와서

웅장한 자연 앞에서 감탄할 것입니다.

찾는 사람들은 바뀌어도

그랜드 캐년은

언제나 그곳에 웅장하게 서있겠지요.

 

지난 11년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그랜드 캐년을 보면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도

변함없이 그곳에 계실 우리 주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찬송이 나왔습니다.

 

자연처럼 아니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처럼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제가 되고 참빛식구들이 되길 기도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9)

O Lord, our Lord, how majestic is your name in all the earth! (Psalms 8:9)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영원하심을 찬양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변치 않으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29 이-메일 목회 서신)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비가 내리는 겨울이 지나고 따뜻하고 화창한 봄이 되면, 왕들이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이웃 나라에 힘을 과시하고, 재산이며 노비들을 탈취해서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작은 나라들을 속국으로 만들므로 지속해서 조공을 받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른 다윗도 봄마다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시니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고, 다윗의 왕권은 대내외적으로 견고해졌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본뜬 다윗성을 예루살렘에 세웠고 하나님의 법궤도 모셔왔습니다. 하나님 역시 다윗은 물론 그의 후손과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평안했습니다. 다윗에게 영적인 조언을 하던 나단 선지자가 다윗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점이 문제였습니다. 인생의 골짜기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구하고, 꼭대기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더욱 겸손해야 하는데, 다윗 역시 뭇 왕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을 평정하면서 교만해졌습니다.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졌습니다.

 

어느 봄날, 다윗은 부하들만 전쟁에 내보내고 자신은 왕궁에 머물며 한가롭게 지냅니다. 저녁 무렵 늦게 일어나서 지붕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와서 관계를 맺습니다. 그녀는 다윗을 위해서 전쟁에 나간 히타이트 출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부하의 아내, 외국인이면서도 다윗을 위해서 목숨 걸고 싸우는 장수의 아내를 범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밧세바가 아기를 갖습니다. 이때부터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전쟁에 나간 우리아를 불러들여서 밧세바와 잠자리를 갖게 합니다. 우리아의 아이라고 위장하려는 것인데 충성스러운 장수 우리아는 다윗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죄에는 브레이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고사령관 요압을 시켜서 전투 중에 우리아만 두고 후퇴함으로 그를 죽게 합니다. 남편을 잃고 슬퍼하는 밧세바를 아내로 취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십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양을 무척 사랑해서 자식처럼 아꼈습니다. 이웃에는 양과 소를 많이 가진 부자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나그네 한 사람이 부자를 방문했을 때,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한 마리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선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윗은 묻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면 그런 부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의로운 척합니다.

 

다윗 역시 양을 치던 가난한 목자였습니다. 자기 식구처럼 양들을 사랑했고 맹수로부터 그들을 보호했습니다. 다윗이 나단의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낼 만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죄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도 남의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딱 두 글자 “you (are) the man” 이 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양처럼 돌보라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는데, 부하의 아내를 범했고 그 부하를 죽게 했습니다. 그러고서도 시치미 뚝 떼고 부하의 아내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원래의 다윗이 아닙니다. 그가 변했습니다. 어느새 다윗이 하나님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 즉 부자가 되어 있던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말에 즉각 응답하면서 자신을 추스릅니다.

 

요즘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무수한 말이 난무하지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는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기 힘듭니다. 아니 그런 말을 일부러 외면합니다. 그렇지만 나단 선지자의 말이야말로 양심을 찌르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곧바로 인정했고 죗값도 톡톡히 치렀습니다. 왕으로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 머리가 쭈뼛섭니다. 두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처음 시작했던 자리로 돌려놓으시려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주님의 은혜와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길목입니다. 다시금,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신앙, 바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그 출발점입니다.(2016년 5월 28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손바닥만 한 구름

기도는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주실 것에 대한 기대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주신 것에 대한 감사보다 앞으로의 기대가 더 큰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자신의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서 하늘 아버지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 위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백성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고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마음에 품고 기도합니다.

 

3년여의 가뭄이 끝나고 비가 내릴 것이라는 하나님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이겼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을 이긴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가서 곧 큰 비가 내릴 테니 왕궁으로 돌아가서 잔치를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합니다. 간절한 기도입니다. 입술뿐만 아니라 몸으로 드린 기도입니다.

 

종을 시켜서 바다 쪽을 확인하라고 말하지만 큰비는커녕 구름 한 점 없습니다. 엘리야는 더욱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렇게 여섯 번을 확인했지만, 비가 내릴 조짐이 없습니다. 이쯤 해서 하나님 말씀이 틀렸다고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완전 숫자인 일곱 번을 채웁니다. 일곱 번째 다녀온 종이 말하기를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왕상18:44)라고 말합니다.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있을 뿐인데, 엘리야는 그 작은 구름 속에서 큰 비를 보았습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온 하늘이 캄캄해 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갈멜산에서 몸으로 기도했습니다. 비가 올 조짐이 없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일곱 번을 채우며 끝까지 기도했습니다. 사환이 알려준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고 아합 왕에게 서둘러 왕궁으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 즉 약속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약속이 쉽게 성취되지 않아도 끝까지 기다리고 확인했습니다.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 큰비를 예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고, 믿음 가운데 기다렸고, 결국 약속의 성취를 보았습니다.

 

이번 연속 설교 첫째 시간에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는” 엘리야를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삶이 기도였습니다. 둘째 시간에는 바알 선지자를 상대로 적진인 갈멜산에서 무너진 신앙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회복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서 싸워 이기는 담대함을 배웠습니다. 엘리야의 확신 있고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오늘은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몸으로 기도하는 엘리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끝까지 믿은 엘리야, 손바닥만한 구름에서 큰비를 확신하는 엘리야의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며 걸었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했고,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했습니다. 걸어가는 그의 삶이 기도였고 때로는 간절히 몸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엘리야의 기도를 닮기 원합니다. 능력 있는 기도로 세상과 맞서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손바닥만한 구름이 보일 때까지 기도하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기 원합니다.-河-

담대함

지난 설교에서 앤드류 머레이의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로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다”는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한 주간을 살면서 머레이의 말이 귓전을 울렸고, 계속해서 마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이것보다 잘 표현한 말도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한편으로 생각하면, 꽤 무모해 보입니다. ‘정말 그럴까?’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면 “기도로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다”는 머레이의 말을 인정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아주 신나는 말씀입니다. 통쾌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에 소집해 주길 요청합니다. 엘리야 혼자서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 대결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아합왕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언자들을 갈멜산에 모았습니다. 엘리야는 850명과 대결하겠다고 했지만, 아합왕은 바알 선지자 450명만을 소집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 사이에 대 결투가 시작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 모인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믿든지 이방신을 믿든지 양자택일을 하라고 촉구합니다.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선지자는 엘리야 혼자 뿐이기 때문입니다:”주님의 예언자라고는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바알의 예언자는 사백쉰 명이나 됩니다 <새번역>.” 갈멜산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엘리야 말을 듣고 하나님을 따를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송아지 두 마리를 갖고 오게해서, 한 마리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나머지 한 마리는 자신이 갖습니다. 송아지의 각을 떠서 제단 위에 올려놓고, 각자 자신의 신을 불렀을 때 불을 내려서 제물을 태우는 신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신만만합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에게 그들의 신을 부르라고 말합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아무리 기도하고, 외쳐도 불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실패했습니다.

 

다음은 엘리야 차례였습니다. 엘리야는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는 의미에서 열두 지파를 나타내는 열두개의 돌을 세웁니다. 제물과 나뭇단에 물을 갖다 붓습니다. 물을 부은 제물 위에 불이 떨어져서 모두 태운다면 엘리야의 하나님이 완벽하게 승리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37절).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불이 떨어져서 물로 젖은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 광경을 본 백성들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39절)라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처럼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해서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담대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 자녀는 기도로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엘리야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했듯이 우리도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기 원합니다. -河-

마음에 둘지어다

좋은 아침입니다.

 

1.

지난 수요일에는

20년 동안 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프로 농구 선수가 마지막 경기를 치렀습니다.

 

올해 서른일곱 살인 코비 브라이언트는

열일곱 살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입단해서

지난 20년 동안 3만 점이 넘는 골을 넣었고

중간에 못된 스캔들에 휩싸인 적도 있지만

어제 경기에서 혼자 60점을 넣으면서

그의 농구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팀을 옮기지 않고

20년을 한 팀에서 지낸 것도 대단하고

틴 에이저에 프로선수가 되어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한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2.

수요예배에서 읽고 있는 전도서 7장에는

시작보다 끝을 강조하는 말씀이 연거푸 나옵니다.

 

출생한 날보다

죽는 날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마지막을 중시합니다.

 

7장 2절에서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살아 있는 자는 <이것을> 마음에 둘지어다.

 

여기서 “이것”은

<만사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계속될 것 같은 어려움에도 끝이 있습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 인생에도 끝이 있습니다.

 

이처럼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3.

시작과 끝이

분명한 인생을 살기 원합니다.

 

하루하루

아침의 시작이

저녁의 감사로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끝까지 걷기 원합니다.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6)

I am sure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bring it to completion at the day of Jesus Christ. (Phil 1:6)

 

하나님 아버지,

매사에 끝이 있음을 마음에 두고

오늘 하루를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6.4.15 이-메일 목회 서신)

말씀대로

올해 기도에 대한 말씀은 <은혜로 사는 한 해>라는 표어에 맞춰서, 주님의 은혜를 힘입고 험한 세상에서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긴 선지자 엘리야에 대한 말씀으로 정했습니다. 엘리야는 주전 9세기경 북쪽 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 아합이었는데,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비로 맞으면서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전체로 퍼졌습니다. 아합은 결국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악한 왕에 속하게 됩니다. 그 시절, 엘리야는 이방신을 믿는 바알 선지자들과 그를 죽이려는 이세벨 왕비에게 혼자 대항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뭄이 닥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가서 앞으로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없는 극심한 가뭄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당시에 가뭄은 전쟁과 전염병과 함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가장 큰 징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가뭄은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위기에 처하는 재난입니다. 백성들의 지도자인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무고한 백성들까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길르앗에 있던 엘리야를 찾아오셔서 그릿 시냇가로 몸을 피하라고 알려주십니다. 거기는 시냇물이 남아 있고, 먹을 것은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서 공급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까마귀가 음식을 공급해 준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말씀같이” 그대로 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 말씀대로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들이 엘리야에게 떡과 고기를 물어다 줍니다.

 

가뭄이 계속되니 엘리야가 있던 시냇가도 말라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시돈 땅 사르밧이라는 마을에 가서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시돈은 왕비 이세벨의 나라입니다. 엘리야가 대적하고 있는 이세벨 왕비의 고향으로 가서 머물라는 말씀은 까마귀가 음식을 날라다 줄 것이라는 말씀보다 지키기 어렵습니다. 그곳에 가면 한 과부가 있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해서 엘리야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돈이라는 지역도 힘겨운 곳이지만, 과부가 엘리야를 돕는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일어나 사르밧으로” 갑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한 것입니다.

 

사르밧에 간 엘리야는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한 과부를 만납니다. 엘리야가 물을 달라고 하면서, 떡 한 조각도 함께 갖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과부가 자신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곡식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남았고, 나뭇가지를 주어서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든 후에 아들과 더불어 생을 마무리를 짓겠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가서 작은 떡 하나를 자신을 위해서 가져오고 그 다음에 과부와 아들을 위해서 떡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엘리야를 위해서 떡을 만들면 양식이 떨어집니다. 과부와 아들이 먹을 것이 없는데 그다음에 그들을 위해서 음식을 만들라는 엘리야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부는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행했습니다. 그다음부터 떡그릇과 통에 양식과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말이 아니라 믿음에 입각한 행동입니다. 기도는 삶인 것을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 배웁니다.-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