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자녀들

좋은 아침입니다.

1.

제 전화에 교회 전화를 연결해 놓아서

교회로 오는 스팸이 모두 제게 걸려옵니다.

웬만해서는 낯선 전화를 받지 않고

광고 전화의 경우 곧바로 블록을 시켜 놓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전화가 걸려왔는데

발신지가 Des Moines, IW입니다.

(일단 영어로 쓴 것을 양해주세요)

이곳은 아이오와주의 수도입니다.

작년 아이오와 집회에 갔을 때

내렸던 공항이기도 한데

발음이 매우 어려운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행기를 타서 조종사의 방송을 듣기까지

당연히 “데스 모이네스”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나오는 도착지 정보가 영- 생소한 것입니다.

“데(‘더’가까움) 모-인”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 사람들이 세운 도시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지명이 생겼는데

“수도승들(the monks)”라는 뜻입니다.

프랑스어를 알면 몰라도

Des Moines를

“데 모인”으로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2.

미국에 살다 보면 영어가 큰 골치거리입니다.

살면 살수록 영어가 안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저도 10년 한인 목회하면서

영어를 쓸 기회가 없으니

영어가 눈에 띄게 퇴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괜찮습니다.

발음이 좋지 않아도

웬만큼 의사소통할 수 있으면 되고

모국어가 아니니 어려운 발음이나 표현이 나오면

그때그때 배워나가면 됩니다.

창피를 당할 때도 종종 있지만

현장을 떠나면서 “씨-익” 웃고 넘어가는 담대함도 필요합니다.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잘 메모해 두면 더 좋고요.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실제로 영어를 못해도

우리는 여전히 빛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발음 여부에 상관없이

주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십니다

(Christ will shine on you).

정말 중요한 것은

빛의 자녀로서

“선하게, 의롭게, 진실되게” 사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이지요.

행여나 오늘 지내면서

영어로 인해서

꼭 영어가 아니어도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으셨다면 툭툭 털고 일어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비추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미 빛의 자녀이십니다.

우리가 진짜로 부담을 느껴야 할 것은

빛의 자녀로 빛의 열매를 맺는 일입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우리를 비춰주시니

거뜬히 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5:8-9)

Now you are light in the Lord. Walk as children of light;

for the fruit of light is found in all that is good and right and true.(Eph 5:8-9)

하나님 아버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빛의 자녀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24 이-메일 목회서신)

배려

좋은 아침입니다.

1.

저는 운동경기를 좋아합니다.

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직접 제가 할 수 있는 운동은 줄어갑니다.

(이번 주일에 우리 교회와 스탠포드 연구원들팀과

축구경기가 있는데 잠깐이라도 뛸 수 있을 것 같아 가슴이 설레입니다)

요즘도 짬짬히 운동경기를 시청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들에게 관심을 갖게됩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야구선수들,

예전에 박찬호, 김병현

요즘은 류현진, 추신수, 강정호등이 엔돌핀을 돌게 하는 한국선수들입니다.

올 해는 피츠버그 강정호선수의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챙겨보곤 합니다.

저는 이 선수가 한국에서 얼마나 잘했는지 모르는데

피츠버그 팀에 와서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해서 신인상 후보까지 거론될 정도입니다.

미국에 진출한 첫 해에 강정호 선수가 운동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에 처음 와서 적응하던 생각도 나고

언어나 습관이 다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경험도 떠오르면서

응원을 넘어서 감정이입까지 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강선수가 무릎을 크게 다쳤습니다.

곧바로 수술을 했고 앞으로 6-8개월의 회복기간이 필요하답니다.

경기 중에 상대방 선수가

심한 태클을 하면서 무릎을 쳤고

그라운드에서 한참동안 일어나지 못하더니

시즌을 접는 큰 부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승부를 건 운동경기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배려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동업자 정신이라고 하지요.

2.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운동경기 만큼이나 거칠기 이를 데 없습니다.

때로는 인정사정을 보지 않는 심한 경쟁에 휩쌓이기도 합니다.

승자만이 살아남고 대우받는 사회풍토는 점점 더 경쟁을 부추깁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다보면

채이고, 속고, 손해보고

때로는 몸과 마음이 심하게 다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라면

신사적으로 살아야겠지요.

남을 배려하고, 규칙을 지키고

손해를 보더라도

더불어 함께 사는 상생(相生)을 꿈꿔야 할 겁니다.

지난 주일에 배웠듯이

선한 일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상처받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푸념이 나오고 털썩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일어나야지요.

멈추지 말고 경기장에 들어가야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선한 일을 하라고 세상에 보내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

이웃을 배려하면서 신사적으로 삽시다.

힘들고 지칠 때는

쿰(히브리어, arise)하고 일어나서

주님 주신 길을 걸어갑시다.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참빛 식구들을 위해서 새벽마다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For we are his workmanship, created in Christ Jesus for good works,

which God prepared beforehand, that we should walk in them. (Eph 2:10)

하나님 아버지,

세상 속에서 선한 일을 하면서

주님의 길을 걷는 참빛 식구들에게 힘을 주시고

언제나 함께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17 이-메일 목회서신)

지혜가 부른다

구약성경은 토라라고 불리는 모세오경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기록한 역사서, 지혜문학이라고 불리는 성문서와 예언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한가운데 성문서가 위치한 셈입니다. 욥기부터 시작해서 아가서로 끝나는 다섯 권의 성문서들은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욥기는 선한 사람도 고난 받을 수 있는 세상의 현실을 고발합니다. 시편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 즉 하나님 백성의 예배입니다. 전통적으로 솔로몬이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나머지 세 책은 하나님 백성들이 걸어가는 인생 여정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이 젊었을 때 기록했다는 아가서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 지 알려줍니다. 전도서는 노년의 솔로몬이 지나온 인생을 조망하면서 젊었을 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충고합니다. 아등바등 힘들게 살아봐야 인생사가 도찐개찐이고 헛될 뿐이니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을 누리면서 기쁘게 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내려다보면서 작은 것들에 연연하지 말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큰 걸음으로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가장 지혜로울 때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잠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구체적인 교훈입니다. 잠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크마’는 일반적인 의미의 지혜를 넘어서 삶 속에서 요청되는 재능 또는 기술까지 포함합니다. 잠언의 지혜가 매우 실용적임을 뜻합니다. 잠언 속에는 현실의 삶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씀들로 가득합니다. 손이 게으르면 가난이 밀려옵니다. 입술을 지키지 못하고 함부로 험담하거나 필요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속이는 저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지만 공정한 추는 기뻐하십니다. 이처럼 잠언은 구절마다 독립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한두 구절을 따로 떼어서 읽어도 말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원래 고대 근동의 잠언 또는 지혜 교육은 왕궁에서 이뤄졌습니다. 왕을 비롯해서 고관대작들의 자제들이 유명한 지혜 교사를 모셔서 과외를 받는 식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의 잠언은 교육의 자리를 가정으로 옮겨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잠언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때로는 사람처럼 의인화된 지혜가 서민들이 사는 시장통에서 그들을 부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잠언의 마지막 장은 현숙한 여인으로 끝이 납니다. 가부장적인 고대시대에 여인의 삶을 높이 평가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잠언속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잠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크마’도 여성명사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잠언은 특정 계층을 향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지혜로 초대합니다. 이것이 구약 성경 잠언의 묘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잠언 말씀은 통쾌합니다. 욥기를 읽으면서 가졌던 애매함이 잠언에 오면 모두 풀어집니다. 악인과 의인을 대조하면서 악인에게는 화가 임하고 의인에게는 복이 임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인과응보의 신앙입니다. 신앙의 길을 단순하게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현재는 복잡해 보여도 끝이 있다는 종말론적 의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잠언은 또한 세상의 삶을 긍정합니다. 재물을 갖고 친구를 사귀랍니다. 재물이 많으면 아무래도 세상에서 편하게 살 수 있고 그것 역시 복이라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지나친 부는 도리어 화가 됩니다. 말을 절제하고 좋은 사람을 사귀고, 부지런히 일하면 살맛 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라면 세상 속에서도 멋지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구약 성경 잠언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나 기도에 대한 교훈이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 장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빗장을 단단히 걸어놓고 시작합니다. 잠언말씀이 실제적이고 때로는 현세적으로 보여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백성들의 거룩한 삶입니다. 잠언의 지혜가 우리를 부릅니다. 올가을에는 잠언 말씀을 차근차근 묵상하면서 하늘의 지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5년 9월 24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무더위와 게으름

좋은 아침입니다.

1.

이번 주는 꽤 덥습니다.

샌프란도 90도를 넘어서고

제가 사는 지역이나 내륙은 세자리 숫자를 찍었습니다.

대개 9월에 인디안 썸머가 오곤 하는데

올해는 더위가 일찍 찾아 왔습니다.

이 더위가 비를 몰고 와서

가뭄이 해갈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2.

저는 날씨가 더운데다

최근에 찾아 온 어지러움증을 다스리느라

쉬었더니 무척 게을러졌습니다.

달리 치료책이 없으니

쉬면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고

가능한 외부활동을 자제했습니다.

어느 한 곳에 집중하면 어지러움증이 다시 찾아와서

일상적인 예배준비를 하는 것 외에 휴식을 취했습니다.

덕분에 이제 많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더위와

쉬면서 은근히 습관이 된 게으름이 겹쳐서

삶의 리듬이 깨졌습니다.

그러니

금방 몸과 마음이 둔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얼른 툭툭 털고 일어서야겠습니다.

3.

청년들이

미로슬라브 볼프가 쓴

<광장에 선 기독교>를 읽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기독교가 힘을 쓰지 못하고

신뢰를 잃어버린 시대에

기독교 신앙의 바른 모습을 제시해 주는 매우 좋은 책입니다.

책 첫 머리에

기독교 신앙을

“예언적인 신앙”과 “신비적 신앙”으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신비적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예언적 신앙은 세상에 참여하려는

이웃사랑을 강조하는 신앙입니다.

볼프 교수는 현재 기독교에

두 가지 신앙이 모두 고장이 났다고 진단하면서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대로/균형있게 실천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더위를 먹고 쩔쩔매고 있는 기독교 아니 교회가

다시 새롭게 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힘차게 일어나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이 아닌우리들 각자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앞장서서 실천해야 할 사항들입니다.

3.

이제 저도 어지러움증을 잘 조절하면서

다시 일어서야겠습니다.

아무리 무더워도

하나님 사랑 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신비로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이웃들에게 크고 작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맛나는 세상을 꿈꿔야겠습니다.

우리 참빛 교회와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한 7:37-38)

If anyone thirsts, let him come to me and drink.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Out of his heart wi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John 7:37)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세상이 가물고 무더위가 찾아와도

우리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10 이-메일 목회서신)

뿌리깊은 나무

좋은 아침입니다.

1.

캘리포니아에 가뭄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올겨울에 엘니뇨 현상으로 비가 많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이제 건기의 막바지에 다다르니

온 세상이 황금빛으로 변했습니다.

교회 앞 작은 화단에도

권사님께서 유도화 묘목을 열개 남짓 심으셨는데

한 개만 남고 여름 내내 모두 말라서 죽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물을 주건만 태부족입니다.

아침마다 꽃들과 나무들이

물을 달라고 고개를 쑥- 내밀고 있는 듯해서 미안하지만

얼른 우기가 돌아오길 바랄 뿐입니다.

2.

거의 반년 가까이 비가 오지 않는 것이

우리 지역의 특성인데

가만히 지켜보니

예쁜 꽃나무들이 가뭄에 가장 약합니다.

잡초들은 꿋꿋하게 견뎌냅니다.

예상외로 가뭄을 잘 견디는 것들은

길가의 큰 나무들입니다.

집채만 한 나무들이

파란 잎사귀를 그대로 간직한 채 위용을 자랑합니다.

높이 솟은 종려나무들도

꼭대기까지 어떻게 수분을 공급하는 지

기운은 없어 보여도 여름 내내 잘 견디고 있습니다.

아마도

뿌리를 깊이 내려서

땅 속 물기운을 빨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3.

가뭄을 견뎌내는 큰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과 삶을 생각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에서 배웠던

바울의 기도도 생각났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3:17)

so that Christ may dwell in your hearts through faith—that you, being rooted and grounded in love (Eph 3:17)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들이 꿋꿋하게 가뭄을 견디듯이

뿌리를 깊이 내린 신앙과 삶은 어떤 어려움도 잘 견뎌낼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뿌리를 깊이 내리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면

모든 것을 덮을 수 있고, 견딜 수 있고,

예수님과 더불어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사랑과 더불어

진리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굳게 잡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과 그 말씀이 진리입니다.

9월과 더불어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랑과 진리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남은 한 해를 은혜로 마무리하기 원합니다.

터를 넓게 그리고 깊이 잡고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는 신앙과 삶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요한2서 1장 3절)

Grace, mercy, and peace will be with us, from God the Father and from Jesus Christ the Father’s Son, in truth and love. (2John 1:3)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의 신앙과 삶이

넓게 터를 잡고 깊이 뿌리를 내려서

예수님을 닮기까지 높이 자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9.3 이-메일 목회서신)

에베소서 (12) : 최고의 선물 3

은혜로 삽니다” –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은 언제나 맞는 것 같습니다. 혼자서 무슨 일을 해 볼 수 있을지 싶으면 어디서 인지 불청객이 들이닥쳐서 애써 쌓아놓은 공든 탑을 무너뜨립니다. 그때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습니다.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고 있을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입니다.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아주 커다란 바위가 앞 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돌아가자니 해가 이미 저물고 바위를 지나쳐 가야 하는데 역부족입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은혜로 삽니다.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수요예배에서 함께 읽고 있는 잠언에서는 부지런함과 성실에 대해서 끊임없이 교훈합니다. 하나님 백성이라면 부지런히 그리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힘을 발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지만 은혜라는 하나님의 선물 꾸러미를 가슴에 품고 삽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생명줄과 같습니다. 은혜로 호흡하고, 은혜로 걷고 달려갑니다. 은혜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행복합니다. 평안합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생동감 넘치는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의 일을 예비하고 그 일을 하도록 인도하신다고 알려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한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선한 일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예배와 일을 같은 단어(“아보다”)로 표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삶을 통한 예배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기도할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해서 마음의 눈이 밝아지고 부르심의 목적을 발견하기를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삶 한가운데서 부르십니다. 직장은 물론,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 취미와 여가생활까지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이 하나님의 부르심이고 선한 일들입니다. 때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이 선해 보이지 않아서 속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우리를 죄로부터 부르셔서 의인으로 삼으셨습니다. 대단한 변화인데 그것을 구속(redemp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세상 일들을 선한 일로 구속(redemption)시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우리들이 세상 속에서 선하고 아름답고 참된 창조 사역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선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우리 안에 이미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걸작품으로 지으셨고 우리의 일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힘차게 주님의 일을 행할 뿐입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

“기도할게요”

우리들 삶은 물론 신앙생활에서 형식에 치우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신앙이 형식화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자랑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시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예로 드셨습니다.이들은 늘 따로 서서 기도했고 자신들이 행하는 신앙의 행위를 자랑했습니다.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했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기도 가운데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린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서 기도했으니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행위일 뿐입니다.

반면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도 들지 못한 채 가슴을 치면서 기도했습니다. 당시에 세리는 로마를 위해서 일하는 민족의 반역자로서 백성들로부터 눈총을 받던 계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했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적으로 뛰어났던 바리새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낙인찍혔던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의롭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신앙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무엇보다 신앙이 형식화되면 겉만 번드르할 뿐 핵심이 사라집니다. 위선적인 신앙은 겉과 속이 다르니 회칠한 무덤처럼 역겨움이 밀려옵니다. 동시에 신앙이 습관화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우리의 신앙은 무엇이든지 소중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지 진실성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대충 넘어가거나 겉으로만 잘하고 있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이처럼 신앙이 형식으로 흐르고 습관이 되는 예 가운데 하나가 기도해 준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이웃사랑입니다. 당사자의 입장 속으로 들어가서 같은 심정으로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수많은 훈련을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쉽게 기도해 주겠다는 말을 남발합니다. 아마 교회 안에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기도할게요”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의 얘기를 듣고 나서 마지막에는 기도해 주겠다고 마무리합니다. 메일을 쓰거나 메시지를 보낼 때도 기도한다는 말을 관용구처럼 사용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기도해 주고 있는 지는 하나님과 자신만이 알뿐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교회의 모임에서는 기도제목을 나누는 일이 일상입니다. 어떤 분들은 남들의 기도제목을 꼼꼼히 적습니다. 어떤 분들은 적당히 듣고 넘깁니다. 최악의 경우는 모임에서 나눈 기도제목을 갖고 뒷공론을 하거나 구설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럴 것이면 기도제목을 나누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실제로 모임에서 나눈 기도제목을 갖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주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기도제목을 나누는 것이 교회 모임의 한 순서로 전락해서 형식화되지 않았는지 한번쯤 돌아볼 일입니다.

제가 만난 어떤 집사님은 이웃을 위한 기도제목을 두꺼운 파일로 만들어서 늘 갖고 다니셨습니다. 새벽마다 또는 자신의 기도시간에 손수 적어 내려간 또는 부탁 받은 기도제목을 놓고 하나님 앞에서 실제로 기도하셨습니다. 이달 초 한 모임에서 강사로 나선 목사님께서는 백여 명의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되는지 간증하시면서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해서 실제로 기도할 수 있는 숫자가 곧 그가 섬길 수 있는 교회 숫자의 최대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만큼 이웃을 위한 기도가 고귀하고 “기도할게요”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가 크다는 것입니다.

“기도할게요”라고 말하고 실제로 기도하지 않는다면 이것도 커다란 위선입니다. 자신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함께 기도제목을 나눈 이웃을 무시하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차라리 그럴 것이면 기도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신앙이 형식화되고 상투적으로 변하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합니다. 신앙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무엇보다 “기도할게요”라는 말에 책임지는 우리가 되기 원합니다.(2015년 8월 27일 SF한국일보 종교칼럼)

에베소서 (11) : 최고의 선물 2

그리스도인들은 은혜 가운데 살아갑니다. 신앙은 넓고 깊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가사 대로 주님의 은혜는 바다보다 넓고 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얕은 물가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넓고 깊은 은혜 속에 잠기고 그 안에 거하기 원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은혜라는 말 자체에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이 들어있습니다.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는 방법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구세주)로 믿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을 생각할 때, 우리들에게 귀한 본을 보여주신 분들이 우리 교회에 계십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면서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실 조기순 전도사님과 임경희 권사님이십니다. 조전도사님은 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붙잡고 사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가시기 사흘 전까지 수요예배에 오실 만큼 특별한 믿음의 본을 후손들과 교회에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1주기 추모예배를 드리는 임경희 권사님의 믿음도 특별하셨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새벽마다 두 시간씩 기도하셨습니다. 임권사님의 기도 속에는 교회와 목사를 비롯한 임원들을 위한 중보 기도가 맨 앞에 있었고, 이어서 자녀들과 후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 몇 달은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못하셨지만 아들 내외께서 갖다 주시는 교회 주보와 수요예배 성경공부 자료를 꼼꼼하게 모두 읽으셨습니다. 심방 가면 교회 소식을 훤하게 알고 계셨고 교회에 오셔서 예배하실 수 있기를 소원하셨습니다. 지금은 함께 하실 수 없지만 우리 교회에 이처럼 귀한 신앙의 본을 보여주신 전도사님과 권사님이 계셨음이 감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지금도 박재순 권사님을 비롯한 교회의 어르신들께서 묵묵히 교회를 지키십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매 주일 자리를 지켜 주시고 말없이 교회를 섬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르신들의 신앙이 교회 안에 깊이 베여있고 젊은이들은 물론 어린 아이들에까지 자연스레 전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구원은 은혜 가운데 믿음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알려줍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에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있다면 행위나 업적이 아니라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믿음과 교회에 남겨진 신앙의 유산들 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속에 잠겨야 합니다.

행위는 물론 어떤 믿음도 은혜를 앞설 수 없습니다.우리는 은혜로 살아갑니다. 은혜 가운데 거합니다.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은혜가 과거의 죄책감, 수치, 실패, 좌절을 모두 녹입니다. 은혜로 현재 닥친 어려움을 헤쳐 나갑니다. 은혜 속에서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소망 가운데 미래를 맞습니다. 은혜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은혜로 살고 은혜로 예수님을 닮을 수 있기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

에베소서 (10) : 최고의 선물 1

작년 11월 부터 우리 교회에 한가지 특별한 프로그램이 생겼습니다. 바로 <참빛 보이스>입니다. 지난 두 번에 걸쳐서 참빛 보이스라는 그릇에 우리 교회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보았습니다. 첫 번째 참빛 보이스에서는 인간의 두뇌 기능에 대해서, 두 번째 보이스에서는 노화와 면역에 대한 과학자들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또한 앞에서 발표하는 우리 교우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축복했습니다. 어려운 과학의 세계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니 그 만큼 흥미진진한 질문들도 나왔습니다. 질문하고 답하면서 서로 배우고, 웃고, 교회가 그렇게 하나됨을 경험했습니다.


다음 주에 세 번째 참빛 보이스가 열립니다. 이번에는 지난 두 번의 과학에 대한 목소리 대신에 문화와 정치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배우는 시간으로 꾸몄습니다. 류호석 집사님께서 요즘 한창 인기있는 한류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셨습니다. 한류라는 말만 들었지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 채 지나쳤습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한류에 대해서 배우고 느끼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번 참빛 보이스의 두번째 목소리는 버클리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김재연 형제가 맡았습니다. 재연 형제는 한국의 기독교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토크 프로그램에 초청된 적도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들이 주인이 되고 누구나 공평하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훌륭한 정치제도이지만 그 안에도 공평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다양한 면을 배우게 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참빛 보이스에 모든 성도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9월 둘 째주에는 한국에서 활동하시는 강찬 찬양 사역자를 모시기로 했습니다. 강찬 전도사님은 은혜로운 찬양은 물론 친근하고 구수한 간증까지 우리 참빛 교회에 딱 맞는 분이십니다.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는 분이신데 우리 같은 조그만 이민 교회를 찾아 주시니 고마운 마음입니다. 참빛 성도님들은 물론 이웃들과 더불어 찬양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네 번째 참빛 보이스가 되길 바랍니다. 주일 오후 시간이어서 어려울 수 있지만 이웃들을 초청하셔서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일을 교회가 행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빛 보이스 주제가 신앙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 처럼 보여도 강의하시는 분들이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이십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 속에서 삶을 통한 예배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그런 점에서 참빛 보이스는 세상 속에서의 예배를 서로 나누는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을 향해서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거룩한 성도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최고의 선물을 받은 우리들이 나누는 목소리들이고, 신앙이고, 간증입니다.받은 선물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같은 구원의 기쁨을 나누는 참빛 식구들이 있어서 감사합니다.주일에 모여서 함께 예배하고 예배를 통해서 받은 힘으로 한 주간 세상에서 살아갈 때, 우리 안에 구원의 은혜와 간증이 날마다 넘치길 바랍니다.-

갱신(Renewal)

좋은 아침입니다.

1.

요즘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계약이나 약속을

갱신(renewal)해야 합니다.

그동안 해 왔던 것을

같은 조건으로

또는 조건을 변경해서 다시 계약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벽기도회에서

구약 요시야 왕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요시야는 여덟살에 왕이 되어서 31년 간 다스리다가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전사했습니다.

요시야는 다윗 이후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선하고

무엇보다 종교개혁을 단행한 멋진 임금이었습니다.

열왕기하 23장에서는

요시야가 모든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전을 고치다가 발견한 언약의 책(신명기 말씀으로 알려짐)에 있는 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스라엘에 만연해 있던 우상들과, 산당을 부수고 (실천적 회개)

사사기 이후 700여년 동안 잊고 살았던

유월절을 지킬 것을 선포했습니다 (예배의 회복).

2.

우리들 삶에도

갱신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적어도

6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면서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으로 나가길 원하십니다.

6년을 일하면

7년 째는 사람은 물론 토지까지 쉼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50년 째는 희년을 선포해서

모든 것을 새로 돌려 놓고(reset)

다시 시작하라고 명령하셨는데

기득권을 지키려는 권력자들과

욕심쟁이 인간들이 희년을 지킨 적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많이 어그러지고

다시 회복할 기회를 자꾸 놓치고 있습니다.

3.

매 주일 교회에 와서 예배하면서

요시야 왕처럼

실천적 회개와 예배의 회복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주일을 계기로 갱신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침 마다

하나님 앞에서 갱신(renewal)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매일 아침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서 새 날을 맞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700년 동안 제대로 지키지 않던 절기를 지켰듯이

우리들에게도 오래동안 지키지 않고 묻어 놓았던

각자의 결심, 신앙과 삶의 숙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지키기로 결심하고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속에서

근사하고 멋진 참빛 식구들 되시길

뒤에서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열왕기하 23:3)

And the king stood by the pillar and made a covenant before the Lord, to walk after the Lord and to keep his commandments and his testimonies and his statutes with all his heart and all his soul, to perform the words of this covenant that were written in this book. And all the people joined in the covenant. (2King 23:3)


하나님 아버지,

참빛 식구들이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갱신(renewal)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목사 드림

(2015.8.20 이-메일 목회서신)